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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형 공연 <서치라이트_시계골목 예지동편>의 한 장면
 이동형 공연 <서치라이트_시계골목 예지동편>의 한 장면
ⓒ 땡땡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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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시계상들이 즐비한 골목에 붉은 코트를 입은 시계 토끼가 나타났다. 거리 상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계 토끼와 그 옆 동행에게 향했다. 동행은 낯선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시계를 보던 토끼가 동행의 손목을 끌고 골목으로 사라지자, 시계 골목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봄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 골목에서 진행한 공연의 모습이다.

'서치라이트_시계골목 예지동편'이라는 제목의 이 공연은 서울형 도시재생 '다시세운프로젝트'의 문화예술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도시재생 대상지인 세운상가군과 을지로, 청계천 일대를 시민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기획자인 황유택씨는 공연 기획을 위해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예지동의 주민들을 인터뷰했고, 그 내용은 시계 토끼가 안내하는 예지동 골목골목에서 재현되었다.

청계천 을지로의 본색을 만나다

현장을 이동하면서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른바 '장소 특정적 공연 Site-Specific Theater'은 시민을 객석의 관찰자에서 기억을 공유한 현장의 일원으로 불러낸다.

이번 공연으로 시계 골목을 처음 방문한 '동행' 역의 시민들에게 예지동은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였다. 셔터를 내리고 재개발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아들인 점포들 앞에서, 거리 상인들은 70년의 명맥을 붙들고 있었다. 판타지로 외피 두른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멸을 앞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은 정감 어린 '예지동 시계골목'이 되었다.

청계천 을지로의 본색을 시민들이 만나도록 하는 이번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위의 '서치라이트_시계골목 예지동편'을 포함해 전시와 공연, 워크숍 등 8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색을 갖춰 '세운개장'의 이름으로 지난 4월에 진행되었다.

8가지 색 세운의 문을 엽니다

또 다른 장소 특정적 공연인 '서치라이트_미래도시 입정동편'(기획 황유택)은 시간여행 중 우주선이 입정동에 불시착했다는 설정으로, 현재 재개발과 철거가 진행 중인 입정동 일대를 시민들과 함께 다니며 이곳의 역사와 현재를 전했다.

입정동과 산림동 금속 가공 공장의 몽타주 사진전 '시간의 지층'(기획 김현아)은 산업화 시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쌓아온 이곳의 산업문화유산들을 재구성해 이곳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모색했다.

'입정동, 모으고 담다'(기획 최서경)와 '세운 소풍'(기획 전미성)은 시민들과 함께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를 기록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심 제조업이 낯선 시민들을 초대해, 글과 그림, 사진과 소리 등 '입정동다움'을 모았고, 이 과정을 통해 2020년 봄 입정동에 이들의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세운상가 일대의 기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장인과 크로스'(기획 최서경)는 입정동에서 간단한 소품을 만들면서 제작 공정을 경험했고, '아크릴과 전자 부품을 이용한 굿즈 개발 워크숍'(기획 구혜인)은 세운상가의 기술 장인을 강사로 모시고, 간단한 전자 제품을 만들면서 청계천 을지로에서 시제품 만드는 과정을 나누었다.

'세운은 놀이터'(기획 박한솔)는 추억의 공간인 옛 다방을 게임존으로 바꾸었다. 기획자인 박한솔씨는 자신이 세운상가의 '보물'이라고 꼽은 것들을 게임을 통해 시민들과 나누고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가 꼽은 세운상가의 보물은 '세운은 놀이터' 진행 과정을 담은 영상 기록(아래 링크 참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 '세운개장'의 이름으로 진행된 다른 7개의 프로그램도 기획 과정과 프로그램 진행 모습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입정동, 모으고 담다>의 진행 모습
 <입정동, 모으고 담다>의 진행 모습
ⓒ 땡땡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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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의 마감재 이상의 문화예술

올해로 6년 차에 접어들기까지 '다시세운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재생 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간 문화예술을 '도시재생의 마감재'로 사용한 혐의가 짙다. 도시재생 현장에서 문화예술 작품은 종종 도시재생의 결과물 혹은 부산물, 심지어 장식물로 여겨졌다.

도시재생 초기 홍보 역할에 충실한 탓이겠으나, 이때 작품을 접하는 시민들은 도시재생에 참여한 예술가의 해석을 경험하는 데 그치고 만다. '세운개장'은 시민들이 직접 이곳을 경험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하려고 했다. "이곳이 배움과 문화의 공간, 역사를 이어가는 전승의 공간으로 다채롭게 경험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세운개장'을 기획한 세운협업지원센터의 황예지, 강부경씨의 얘기다.

길을 내는 문화예술을 기대하며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규모를 줄이고 8개 작품만 소개하게 됐지만 작지만 잦은 발걸음이 이곳 산림동, 입정동, 예지동, 장사동의 골목을 냈듯이 이런 작업이 거듭되어 또 다른 길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도 세운협업지원센터는 이곳의 산업과 문화를 시민들이 직접 경험케 하는 경로들을 만들어 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지속하고자 한다. 어느새 을지로와 청계천에 매료된 시민들의 모습은 아래 영상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서치라이트_시계골목 예지동편> 
<서치라이트_미래도시 입정동편>
<시간의 지층>
<입정동, 모으고 담다>
<세운소풍>
<장인과 크로스>
<아크릴과 전자부품을 이용한 굿즈 개발 워크숍>
<세운은 놀이터>

태그:#다시세운프로젝트, #세운개장, #도시재생,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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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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