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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낸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가 2쇄를 찍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아서 자주 들르는 인터넷 서재에 글을 남겼다. 책을 내 본 사람은 안다. 재판을 찍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감격스러운 일인지 말이다. 저자로서는 책을 내준 출판사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를 하게 되는데 일단 재판을 찍게 되면 작가로서 최소한의 할 도리는 했다는 안도를 하게 된다. 

책을 낼 때마다 2011년에 낸 나의 첫 책 <오래된 새 책>이 떠오른다. 책을 여러 권 내더라도, 더 많이 팔리는 책이 있더라도, 나에게는 첫 책이 가장 애착이 가고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책이 성공하거나 실패할 때, 즉 어떤 경우라도 첫 자식에 대한 기억은 항상 떠오른다. 

그 댓글을 본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래된 새 책> 표지 <오래된 새 책>
▲ <오래된 새 책> 표지 <오래된 새 책>
ⓒ 바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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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을 내고 이런저런 이유로 전전긍긍하다가 감회가 새로워서 <오래된 새 책>이야기도 인터넷 서점 서재에 간단하게 적었었다. 글을 올리고 몇 시간 뒤 대구에서 볼일을 보다가 내가 올린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대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왜 그렇게 긴 것일까. 한 회원이 남긴 댓글은 이랬다.
 
"내가 몇 년 전에 <오래된 새 책>을 읽고,  불났을 때 꼭 한 권만 챙겨 나와야 할 책이 있다면  <숨어사는 외톨박이>라는 책이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어라~ 이 책 낯이 익은데 싶어서 찾아보니 우리 집 책장에 있더라고요.ㅎ ㅎ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전집의 부록으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른 책에 그토록 귀중한 책이라고 소개된 것을 보고 이 책이 그렇게 중요한 책이구나 싶어서 흐뭇했었죠. 이걸 딸내미한테 자랑했더니  어느새 집어갔더군요. 딸도 글 쓰는 직업이라 이 책을 보고 한창기님에 대한 글을 한 편 썼더군요. 님이 쓴 책이 어느 곳에서 어떤 상황을 낳는지 짐작도 못 하셨죠?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2쇄 축하드립니다."

댓글을 쓰신 분도 댓글에 등장하는 딸도 누군지 알겠다.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지난 2017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 딸아이가 <안녕, 돈키호테>라는 책을 사 왔을 때의 일이다.
 
<안녕, 돈키호테> 표지 표지
▲ <안녕, 돈키호테> 표지 표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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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부에 정신이 없는 아이가 서점에서 읽고 싶은 단행본을 사오는 경우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 눈여겨보았다. 그 책은 광고인들이 모여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담았다. 

딸아이는 중학교 시절부터 광고인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책을 골랐으리라. 딸아이가 읽고 싶어서 고른 책인데 아버지로서 당연히 관심이 갔다. 책에 관해서는 부모 자식 간도 없는 모양이다.

내가 더 빨리 읽고 싶어서 딸아이 방에서 그 책을 서재로 가져와서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깜짝 놀랐다. 김하나 선생이 쓴 첫 꼭지의 제목이 '이상한 책 이상한 잡지 이상한 사람'인데, 거기에 내가 낸 첫 책 <오래된 새 책>이 등장했다.

'본가에 갔더니 엄마가 박균호라는 사람이 쓴 <오래된 새 책>을 읽어 보니까 그 양반이 집에서 불이 난다면 꼭 챙겨오고 싶은 책이 <숨어사는 외톨박이>라더라'는 내용이었다. 김하나 선생이 집에 있는 그 책을 냉큼 가져와 읽어 봤는데 과연 참 신기한 책이고 그 책을 펴낸 한창기 선생님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썼다.

그가 말한 '이상한 책'은 <오래된 새 책>에서 내가 극찬한 <숨어사는 외톨박이>였고, '이상한 잡지'는 <뿌리 깊은 나무>였으며, '이상한 사람'은 한창기 선생이었다. 선생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용감하고 무모하게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지사를 세웠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현대적인 세일즈 방식을 도입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가장 많이 판매한 사람이 되었다. 마침내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앞세운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1976년 3월에 창간했다. 서양인들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팔아 우리 문화를 지키고 소외받는 이웃을 조명하는 잡지를 펴내기 시작한 것이다.

또 판소리와 민요를 재발견해서 민중들에게 알리고 전통사회에서 소외받고 천대 받았던 백정, 기생, 땅꾼, 내시를 찾아 생생한 르포 기사를 발표했다. 이 르포 기사를 모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 <숨어 사는 외톨박이>다. 뿐만 아니라 팔도를 돌아다니며 평생 고달프고 한 많은 삶을 살았던 평범한 민중들의 구술을 담은 20권 전집의 <민중 자서전>도 펴냈다. 이런 모든 시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였다. 유명인사가 아니고 평범한 민중들을 주인공으로 모신 잡지였다.

이런 행보가 군사정권에는 눈에 가시로 보였다. 사회 불안을 만든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에 의해서 폐간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선생은 '혀끝과 붓끝은 같아야 하는데 왜 독재자를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냐'며 굴복을 하지 않았다. 김하나 선생은 <오래된 새 책>에 등장하는 <숨어 사는 외톨박이>로 시작해서, 그 책을 펴낸 한창기 선생을 만났으며 결국 한창기 선생을 자신의 영웅으로 삼았다.

<안녕, 돈키호테>의 대문을 장식한 김하나 선생의 글을 읽고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당장 딸아이에게 자랑했더랬다. '봐라, 아빠가 쓴 책이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쓴 책에 나와'라고 말이다. 김하나 선생에게 연락을 해서 내 책에 대해서 말씀해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알 수가 없었다. 나처럼 <숨어 사는 외톨박이>를 좋아하신다는 그 엄마는 그냥 미지의 세계에 사는 먼 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책 하나로 이어진 김하나 작가와의 인연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내가 참새가 방앗간 들르는 것처럼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 서재에서 그저 미지의 세계에 사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 엄마를 만난 거다. '딸에게 <숨어사는 외톨박이> 이야기를 했다가 그 책을 딸에게 빼앗긴'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내 글에 댓글을 남긴 분은 김하나 선생의 모친이다. 물론 엄마의 자랑을 듣고 슬며시 <숨어사는 외톨박이>를 데리고 온 딸이 김하나 선생이다.

그 사이에 김하나 선생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와 <말하기를 말하기>를 비롯한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가 되어 있었다. 김하나 선생이 공저한 <안녕, 돈키호테>를 읽으며 광고인을 꿈꾼 내 딸아이는 소원대로 전공을 잘 찾아가 대학교 2학년이 되었다.

김하나 선생의 어머니는 내가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딸'이 누구인지 내가 모른다고 생각을 하셨지만,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나는 김하나 선생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당신의 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고, 어머니 또한 반갑고 신기해 하셨다. 급기야 어머니는 김하나 작가에게 우리의 재회(?)를 들려주셨다. 김하나 작가 또한 어머니 못지않은 열렬한 반응이었다.

김하나 선생은 후배 광고인이 될지도 모르는 내 딸아이에게 저서를 보내주었고 나 또한 내 딸아이의 멘토가 되어준 김하나 선생에게 내가 쓴 책을 선물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인연을 신기하고 좋은 것으로 여겼고 기뻐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딸아이는 이미 2015년에 나온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부터 충실한 김하나 작가의 팬이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2학년이던 딸아이가 광고인이 되고 싶다고 선언을 한 것이 그때쯤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딸아이가 '공부라는 것을 해봐야겠다'고 작정했던 때라고 술회한 것도 중학교 2학년쯤이었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본인도 인식 못 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을 딸아이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책은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책으로 안내해주고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준다. 세상에 좋은 인연이 많지만 책으로 맺어진 인연만큼 다정하고 귀한 인연도 드물다.

김하나 선생에게 한창기 선생이 영웅이듯이, 내 딸아이에게 김하나 선생이 영웅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은이), 바이북스(2011)


안녕 돈키호테 - 박웅현과 TBWA 0팀이 찾은 창의력 열한 조각

박웅현, 김재호, 김민철, 서준혁, 이태호, 고연희, 김하나, 서민, 성지환, 유지원, 이진숙, 임경선, 장사익, 장세이 (지은이), 민음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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