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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은 지난 4월 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형산교차로에서 포항 남구·울릉 선거구에서 김병욱 후보가 아침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은 지난 4월 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형산교차로에서 포항 남구·울릉 선거구에서 김병욱 후보가 아침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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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님(경북 포항시남구울릉군), 저는 서울에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양육자입니다. 국가교육의 발전을 위해 힘써주시느라 노고가 많으십니다.

의원님께서 지난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성가족부가 일부 초등학교에 배포한 초등 성교육 관련 서적에 대해 '초등학생 성관계를 장려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문제를 제기하셨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성관계 장려'라니. 양육자로서도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어 의원님께서 언급하신 "그림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돼 있는" 책의 제목과 내용을 황급히 살펴봤습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였습니다. 벌거벗은 엄마·아빠가 성교를 통해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간결한 그림으로 22페이지에 걸쳐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이는 1971년에 출판된 책으로 덴마크의 심리치료사 및 성 연구가인 페르 홀름 크누센이 썼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번역돼 출판되고 있기도 하고요.

모자이크 처리했더군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페르 홀름 크누센, 1971) 책 중 한 장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페르 홀름 크누센, 1971) 책 중 한 장면.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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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의원님, 엄마아빠의 벗은 몸과 성기가 나오니 얼마나 충격이 크셨습니까. 아기의 탄생을 벌과 꽃들의 사랑 이야기로 비유하거나, 아니면 아빠 아기씨가 엄마 아기씨를 만나러 여행을 간다며 화살표로 처리를 했어야 했는데, 참으로 문란한 책입니다.
 
더군다나 교육위 이후 이 사안을 보도한 언론은 의원실 자료 중 엄마 아빠의 성기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그 결과,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그저 신체의 일부일 뿐인 성기가 불경함·불온함의 의미로 확대·재생산됐으니 의원님처럼 '아이들이 보는 책이 어찌 이래서야...'라며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교육에서 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주제들과 똑같이 다뤄져서는 안 되는 금기이니, 이를 보도한 언론들처럼 모자이크 처리하고 감추고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성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건전한 사회인으로 커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의원님, 분노를 금치 못할 끔찍한 아동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 어쩌면 바로 이런 공교육 현장에서 자라나고 있지 않을지 한번 생각해보셨는지요. 금기는 욕망을 키워내 더 몰입하게 되는 법입니다. 아이들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묻는데, 화들짝 놀라 '지금 성관계를 장려하느냐'라고 되묻는 것은 오히려 엄숙주의를 가장한 음란함의 고백이요, 대답을 속시원히 듣지 못한 아이들 성욕을 비대화시킬 뿐입니다.


성에 대해 올바르게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은 그 호기심을 인터넷상의 성 착취물 등을 통해 습득하게 되고, 왜곡된 성 인식과 성적 독립성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합니다.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어 유포한 'n번방'의 가해자들의 평균 나이는 21.3세이고, 자신의 억제된 성적 욕망을 가장 약한 아동에게 푸는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물 사이트의 운영자는 한국인이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데엔 여러 사회적 요인이 얽혀 있겠습니다만, 이는 엄연한 공교육의 실패이며 제대로 알려주는 성교육의 부재가 그 토양을 키웠다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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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운 '도덕적 엄숙주의'... 여가부의 책 회수도 안타까워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 선정된 도서에는 이 마크가 붙는다.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에 선정된 도서에는 이 마크가 붙는다.
ⓒ 나다움어린이책 페이스북 갈무리
  
공교육 속 성교육은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화를 바꾸기 위해 달라져야만 합니다.

여성가족부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함께하는 초등학생 대상 성인지 감수성 교육 책 배포사업 '나다움 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은, 두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 입장에서 볼 때 아이들에게 위해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걱정하는 김병욱 의원님의 '도덕적 엄숙주의'가 더 해로워 보입니다.

참, 교육위 전체회의에 참석하신 유은혜 교육부장관님께서 '해당 책은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비치돼 있는 게 아니라 교사나 사서가 별도 관리하도록 돼 있다고 한다'며 '학교와 책의 비치현황 파악 및 신속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셨던데요.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비치돼 있지 않으면 대체 누가 본단 말입니까!

언젠가 교육부장관을 만나게 된다면 김병욱 의원님께 '그 해명, 안한 것만도 못한 해명이었다'고 전해주시기를 부탁드리려 했으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논란이 불거진 지 단 하루 만인 26일 오후, 여성가족부에서 "일부 도서의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이 일고 있음을 감안해 해당 기업과 협의해 도서를 회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니까요. 여가부의 이런 신속한 조치는 공교육 현장의 성평등한 성교육 패러다임 후퇴를 자인한 꼴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김병욱 의원님, 이만 글을 마칩니다. 차후에 성평등 성교육에 대한 양육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면 제가 활동하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홈페이지)'을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정치하는엄마들'은 대한민국에서 엄마로서 겪는 사회적 불합리와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고자 2017년 창립된 비영리단체입니다. 기사를 쓴 강미정씨는 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병욱, #정치하는엄마들, #여가부, #성평등교육,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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