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7 07:59최종 업데이트 20.08.2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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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온나라가, 아니 전 세계가 난리다. 한국은 그나마 진정되는가 싶더니 최근 다시 심각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다들 조심하고, 슬기롭게 해결해나갈 지혜가 필요하다지만, 대자연의 재해 앞에선 인간도 별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그동안 법정과 사무실을 수시로 소독하고 출입자들을 철저히 점검했던 법원도 코로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1일 전주지방법원 소속 부장판사가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재판이 모두 취소되고 긴급방역 작업이 진행되었다. 며칠 뒤엔 수도권 소속 직원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이 직원의 밀접접촉자들이 자가격리 조치되었다. 게다가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가족이 확진판정을 받아 대법원까지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 사태로 법원도 재판 연기 수도권의 어느 법원 출입구에 코로나 19 확산방지를 위해 경매기일을 연기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법원은 일선 법원에 구속사건 등 긴급을 요하는 사건을 제외한 재판을 8월 24일부터 2주간 연기하도록 권고했다. ⓒ 김용국

             
대법원은 구속사건 등 긴급을 요하는 사건을 제외한 재판을 8월 24일부터 2주간 연기하도록 일선 법원에 공지했다. 또한 법원 내 시설의 운영 중단, 외부인 개방 중단과 함께 법원의 밀집도 완화를 위해 판사와 직원들에게 시차출근제와 공가 활용을 적극 권고했다. 아무리 조심했어도 법원 역시 코로나19를 피해가지 못했다.

인간에게 재앙과도 같은 바이러스를 보면서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코로나는 공평하다. 빈부와 성별, 지위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상황이 되면 누구나 감염이 되고 누구나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

코로나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나는 법원에서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법원 욕을 20년 넘게 들어왔다. 인터넷을 보라. 법원, 검찰 기사만 나오면 모두들 비판, 비난 일색이다. 그 중 법원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불만은 도대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불신이다.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이 오해든 진실이든 사법불신 현상 자체는 팩트다.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불공평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법률과 재판이 '가진 자'나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다거나 청탁, 압력과 같은 외부 요소가 작용해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본다면, 코로나가 적어도 판사보다는 공평하다. 이 문장은 판사, 아니 법원에 대한 모독일까. 비슷한 생각을 한 판사가 있었다. 박주영 판사는 자신의 저서 <어떤 양형이유>에서 미세먼지를 보면서 판사의 불공정함을 이렇게 꼬집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돌아가야 할 온정과 관용이라는 차별이 어떻게 재벌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 부자도, 빈자도, 권력자도, 노숙인도, 남성도 여성도,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미세먼지가 대한민국 판사보다 훨씬 더 공평해 보인다. 각성하고 경계해야 한다."

판사들은 각성하고 경계하고 있을까. 이 연재글(법원에서 생긴 일)이 포털사이트에 올라가면 어김없이 많은 비난 댓글이 달렸다. 모독과 욕설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 개중에는 법원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의중을 가늠할 수 있는 있는, 판사들도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은 댓글들도 있다. 가령 이런 댓글이다.

"판검사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그들만의 세계 속에서 그들만의 생각으로 살아가면서 넓고 복잡한 세상을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법조와 민간세상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벽은 판검사들이 그들만의 엘리트의식과 권력욕으로 쌓아올린 것이구요. 그 벽은 변호사와 돈 많은 자와 권력자들만이 수월하게 넘나들고 있지요. 그 벽을 허물자는 작금의 개혁에 똘똘 뭉쳐 물불 안 가리고 결사항전하고 있지요."


판사들로서는 오해와 과장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판사와 일반인 사이의 간극이 이토록 넓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법불신의 원인 중 하나는 전관예우다. 판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자행된 '사법농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법원이 부적절한 '재판거래'를 한 것은 물론, 판사들을 광범위하게 '뒷조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심지어는 판사들끼리 자율적으로 만든 익명게시판까지 들여다봤다. 대법원은 <인터넷상 법관 익명게시판 관련 검토>라는 문건에서 판사들의 게시물을 분석한 뒤 "법원 내부의 내밀한 정서나 인식을 언급하는 내용이 많아 유출, 공개 시 위험성 큼"이라고 우려했다. 얼마나 걱정이 컸으면 판사 중에서도 엘리트인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을 시켜서 뒷조사를 했을까.

"그래도 전관인데...면 좀 세워줘야" 충격 받은 판사

양승태 대법원이 우려한 '법원 내부의 내밀한 정서나 인식' 중 전관예우와 관련된 내용만 몇 가지 살펴보자. 이 익명게시판의 댓글에서 전관예우를 바라보는 판사들의 속내와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가감없이 몇 개만 소개한다.
 
""그래도 ○○○(전직 판사 이름을 지칭하는 단어: 기자 주)인데 면 좀 세워줘야 하지 않겠어요. 조금만 (1심 형량) 낮출 수 없을까요" 어떤 형사 항소부장님의 솔직하신 토로가 배석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죠. 법원의 염결성을 믿고 싶어했던 그 당시 순진한 저로서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A 판사)

"저는 (전관예우를) 많이 느꼈습니다. (전관에게) 야박하게 굴 수 없다며 (부장판사가 피고인을) 풀어주는 상황에서 나중에 자신이 나갔을 때를 생각하는 것이 매우 느껴지던데요." (B 판사)

"나와 내 주위(특히 배석판사)가 그렇다고 해서(전관예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자 주) 다른 분들도 그렇다고 했던 건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부장(판사)님을 비롯해서 단독판사들도 몇 번 경험했습니다. 부장님들이 대놓고 봐줘야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C 판사)

"예전에 한번 고등부장 출신 변호사님이 소정외변론(법정 외에서 판사와 따로 만나서 변호사가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하는 일: 기자 주)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 부장님이 안 된다고 매몰차게 했다가 나중에 그분이 누군지 알게 된 후 '우리랑 같이 계셨던 분인데' 하시며 허용하시더라구요. 그게, 법원에 남은 사람에게는 평판의 문제로 압박 내지 작용하는 측면이 없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만요." (D 판사)
 
"전관예우 직시 안 하면 사법신뢰는 공염불" 
 

서울 강남구 역삼동 대한변호사협회 회관에서 최고위직 법관, 검사 등의 변호사 개업 제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19.4.30 ⓒ 연합뉴스

 
여기서 속내를 털어놨던 판사들은 그나마 사법불신을 해소하려고, 판사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판사들을 싸잡아서 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게시판에서 어느 판사는 "법원이 전관예우의 문제를 직시하고 직면하지 않는 이상 신뢰는 공염불"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정곡을 찌른 한 마디다.

지난 글(현직 판사의 한탄 "전관은 왜 돈을 많이 벌까요?" http://omn.kr/1olg1)에서 대법원의 전관예우 설문결과를 소개했다. 법조인 절반 이상이 '전관예우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설문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불행히도 '달라졌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제도를 만들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고, 오히려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방법을 동원한다면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눈독을 들이는 전관들의 몸값은 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판사나 검사들은 퇴직 후 기대감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크고 작은 '유혹'에 흔들릴 수도 있다.

판사나 검사가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되면 '전관'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일반 변호사와 몸값을 비교하는 건 물으나마나 한 소리다. 퇴직 전 직급이 높을수록, '좋은 자리'에 많이 간 경력이 있을수록 그에 비례해 몸값은 올라간다. 물론 실력도 없는데 단지 판검사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느 판사는 "판사 시절 다양한 분야의 재판경험과 기록과 쟁점 파악 능력, 판결문 작성 능력 등을 높게 사는 것이지 단순히 전관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관들이) 좋은 조건을 제시받지는 않는다"는 항변을 한 적이 있었다. 일리는 있다.

전관변호사에게 '능력'이란 무엇일까? 
  
하지만, 변호사의 능력이란 서면 작성이나 법정 변론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법원이나 검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은 어떤 능력보다 강력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 솔직해지자. 만일 당신이 구속될 처지에 몰려 있고, 금전적 여유가 충분하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떤 변호사를 구할 것인가. 변론능력이 뛰어난 변호사나, 최신 판례와 법리에 해박한 변호사? 아니면 재판부 판사와 함께 일했거나 친분이 있는 변호사?

아마도 후자 쪽일 것이다. 하다 못해 변호사가 담당판사와 동창이거나 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어떤 연이라도 닿는다면 다른 변호사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리라. 만일 변호사가 "판사와 절친한 사이"라는 한 마디만 하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웃돈까지 쥐어줄 수도 있다. 하물며 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지낸 베테랑 변호사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런 상황을 아프게 토로한 판사가 있었다.
 
"형사사건 피고인과 그 가족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이고, 그래서 판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판사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사실 비난하기 어려운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그러한 기대는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지 않은 채 그러한 기대에 기대어 사건을 수임하는 전관변호사들이겠죠." (E 판사)
 
실제로 전관변호사가 아무런 청탁을 하지 않고도, 법원이 양형기준에 따라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하여 의뢰인이 구속을 면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의뢰인은 "역시 전관이 최고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변호사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고, 변호사는 마치 자신의 노력인 듯 으쓱해할지도 모른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각종 연줄로 촘촘하게 이어진 한국사회가 빚어낸 비극이다. 이젠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라도 더 투명한 법원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쪽 같던 판사, 변호사 개업 앞두더니 
 

전관예우 ⓒ 유창재

 
법정에서 변호사와 당사자들에게 똑같이 대쪽같이 대하던 판사가 있었다. 그는 재판에서 원칙과 어긋난 요구를 할 때는 변호사든 피고인이든 그 누구에게라도 추상같이 호통을 쳤다. 반대로, 동료 판사와 직원들에겐 깍듯한 예의를 갖추고 빈틈없이 일처리를 해서 다들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부턴가 평소와 달리 법정에서 변호사들에게 눈에 띄게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재판순서와 재판날짜를 배려해주고, 증인신청도 다 받아주었다. 의아해하던 내게 어느 직원은 "소문 못 들었어? 그 판사님 개업준비 중이라는데"라고 귀띔해주었다. 몇 달 뒤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변신했다.

일상에선 판사와 직원들에 겸손하고, 업무는 꼼꼼하고, 법정에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던 판사가 변호사가 된 뒤 돈과 권력의 유혹에 빠져서 180도 달라지는 모습도 종종 본다. 안타깝고 씁쓸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최유정 전 부장판사이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 <생활법률상식사전>(위즈덤하우스), <판결 vs 판결>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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