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5 08:28최종 업데이트 20.08.2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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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이나 미투(me too) 고발을 다룬 기사나 칼럼을 읽다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해당 글들 밑에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댓글들이 달린다는 사실이다.

"당신같은 가짜 피해자들 때문에 진짜 피해자들이 고통 받는다고!", "이런 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이렇게 쓸데없는 사건에 신경쓸 시간에 장자연 사건이나 재수사해 주세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냐", "제가 <한공주>라는 영화를 정말이지 인상깊게 보았습니다만, 이런 가짜 미투들을 보니 화가 나는군요."


읽다보면 단어나 문장에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그 내용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피해자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것이다. 예외 없이 모든 성폭력 사건이 마찬가지이다. 약 한 달 전 사망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의혹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피해자를 '꽃뱀'으로 의심하며 정치적 '공작'이 얽히지 않았는지 의문을 품는 이들이 다수였다.

한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여성 지식인으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한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개중 조선시대의 여성 혁명가들을 다룬 소설을 쓴 한 작가는 피해자가 신변을 드러내지 않는 부분, 그리고 이전에 썼던 인수인계 보고서에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는 문장이 가득차 있는 지점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인수인계 보고서야말로 피해자의 '진심'이 아니겠냐는, 그러므로 아무래도 피해자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변호인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여성단체의 페미니즘이라고 하여 반드시 올바른 페미니즘이라 할 수는 없다'는 류의 주장을 펼쳤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황망해진다. 피해자가 신변을 드러낼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진정 예상하지 못한단 말인가. '직장'에서 '업무' 용도로 사용하는 인수인계 보고서가 어떤 식으로 작성되는지를 정말로 모른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가짜' 피해자와 '진짜' 피해자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 모르는지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무척 복잡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의 발언은 매우 모순적이다. 이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이나 고 장자연씨, 또는 <한공주> 등의 성폭력 관련한 영화를 예시로 들며 '진짜' 성폭력 사건이란 마땅히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으나 실제로 이들이 분노하고 핏대를 세우며 피해자를 의심하는 뭇 성폭력 사건 역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피해자가 하는 말이 100% 맞다는, 모든 성폭력 피해 호소가 무조건 진실이라는 뜻은 아니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그만큼 피해자들이 일방적으로 의심받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의심받는 피해자들
 

영화 <한공주>의 한 장면. ⓒ 무비꼴라쥬


참고로 영화 <한공주>는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꽃뱀' 등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점차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주인공 한공주는 성폭력 사건 이후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낯선 곳으로 전학을 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성을 의심받으며 점점 더 극단으로 몰린다. 단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만으로 공주의 삶은 산산히 부서진다.

그러니까 영화 <한공주>를 예시로 들며 박원순 전 시장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들은 겉으로는 '진정한' 성폭력 피해자라면 공감할 수 있으며, 지금 자신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해당 사건이 '가짜' 성폭력 사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진짜' 성폭력 사건 앞에서도 동일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동안 자신들이 분노하고 손가락질 했던 주인공 공주의 주변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고 장자연씨나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허위 고발이 아닌지의 여부를 평생동안 검증 당해야 했으며, 장자연씨 역시 살아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한 공감을 얻지 못하다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고 장자연씨나 위안부 피해자들 사건을 이제와서 박원순 전 시장 사건과 다르게 받아들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안타깝게도 장자연씨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결국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피해자는 오직 '죽은' 피해자 뿐이라는 이야기이며, 이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살이나 침묵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이 미결 성폭력 사건을 수사한 과정을 적은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에도 비슷한 일화가 등장한다. 캘리포니아주의 물리치료사인 데니스 허스킨즈는 2015년 집에서 실종됐다가 귀가 후 경찰에게 납치와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하나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나를 찾아줘>의 줄거리와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로 수사를 거부당한다. 그는 거짓말을 한다고 오히려 비난을 당했으나 다행히도 몇 달 후 허스킨즈의 이야기가 진실이었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허스킨즈를 납치한 범인은 검거된 후 40년 형을 선고 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허스킨즈는 끊임없이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에 시달렸는데 한 남자는 그녀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네가 내뱉은 허튼소리 때문에 넌 지옥에 갈 거야. 똥이나 먹어라 이 창녀야."(294쪽)

그리고 이에 대해 허스킨즈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살아남은 것뿐인데 나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294쪽)

허스킨즈 역시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이 밝혀진 이후에도 끊임없이 진실성을 의심받았던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완벽한' 피해자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악마'나 '괴물'과 같은 철저하게 악의로 똘똘 뭉친 '완벽한'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피해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피해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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