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섶다리나 외나무다리는 목교(木橋)다. 이 다리들은 산야에 있는 나무를 재료로 하였으되, 자연 상태의 것을 최소한으로 가공해 만들었다. 또한 구조와 생애주기 면에서, 다소 짧은 기간 동안을 사용하기 위한 임시 구조물에 가까운 시설이다.

재료 속성에 맞게, 영구시설물로써 다리를 축조하진 않았다는 의미다. 낡거나 부서져 유실되면 언제든 손쉽게 수리하거나 재설치 할 수 있도록 고안된 다리다. 널다리도 나무를 재료로 했기에 목교이긴 하나, 구조 형식이 다르고 생애주기가 이들 다리보다 훨씬 긴 시설물이다.

기술이 발달하자, 인간은 자연에서 구한 재료를 다듬고 가공하기 시작한다. 이는 철기문명이 발달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돌보다 훨씬 강한 쇠가 연장으로 사용되면서, 가장 먼저 무른 나무를 다듬고 가공해 건축에 적용한 것이다.

목조의 단점, 석조의 등장
 
돌기단과 돌난간, 하부구조를 이루는 잘 짜여진 멋들어진 돌기둥, 건물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수수한 돌벽. 그 위에 화려한 다포를 짜 넣어 조화로운 목조건축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한껏 뽐내고 있는 불국사 범영루.
▲ 불국사 범영루 돌기단과 돌난간, 하부구조를 이루는 잘 짜여진 멋들어진 돌기둥, 건물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수수한 돌벽. 그 위에 화려한 다포를 짜 넣어 조화로운 목조건축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한껏 뽐내고 있는 불국사 범영루.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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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양식의 굵직한 기둥이 만들어진다. 보와 창방(목조건물 기둥 위에 건너질러 장여나 소로, 화반 등을 받는 가로재), 대들보,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가로재)와 서까래가 만들어진다. 다포식 구조와 더불어 문틀과 창문, 널문이 유려한 모양으로 가공되어 멋을 더한다. 이러한 가공기술은 목조건축의 엄청난 발달로 이어진다.

자유자재로 유려한 멋을 부린 건축물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높은 궁궐과 고대광실 휘황한 집들이 뒤이어 생겨난다. 나무와 나무를 짜 맞춰(結構) 단단하게 지탱할 수 있는 일체화된 구조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건축은 송진을 품고 있는 소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이렇게 짜여 진 잘 마른 소나무는, 오랜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목조는 화재에 취약했고, 햇볕과 비에 노출된 부분이 썩어들어 갔다.
 
돌을 자유자재로 다룬 훌륭한 기술 흔적이 역력한 다보탑 모습.
▲ 불국사 다보탑 돌을 자유자재로 다룬 훌륭한 기술 흔적이 역력한 다보탑 모습.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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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자, 돌을 만지기 시작한다. 나무 가공에서 익히고 연마한 기술을 돌에 적용시킨다. 훨씬 많은 공력이 들어간다. 나무와 마찬가지로, 돌도 저마다 성질이 다르다. 단단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공이 쉬운 암석을 찾기 시작한다. 색깔도 밝고 예뻐야 했다. 우리의 경우 대표적으로 화강암이 여기에 부합하는 돌이었다.

나무에서 익힌 가공기술이 돌에 그대로 적용되기 시작한다. 정교한 대장장이들이 탄생한다. 정과 망치로, 나무에서 배운 기술과 예술 감각, 그리고 경험이 덧입혀진다. 대표적인 시설물이 석탑이다. 석조기술의 뛰어난 발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석조건축이 크게 융성하지 못한 점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사찰이나 궁궐건축에서 기단이나 계단, 난간, 축대 등에 뛰어난 석조기술이 반영된 것에 비추어, 매우 아쉬운 부분이기까지 하다.  

목교로 분류되는 널다리
 
우물마루와 계자난간, 배흘림기둥 위로 창방과 보, 도리와 서까래가 단정한 빛깔로 단청되어 있다. 기둥사이 칸으로 나뉜 풍경과 그 앞에 곧게 뻗은 널다리가 운치를 더한다.
▲ 궁남지 포룡정 우물마루와 계자난간, 배흘림기둥 위로 창방과 보, 도리와 서까래가 단정한 빛깔로 단청되어 있다. 기둥사이 칸으로 나뉜 풍경과 그 앞에 곧게 뻗은 널다리가 운치를 더한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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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다리는 나무와 돌을 다루는 이러한 기술 발달에서 말미암았다.

널다리는 목교다. 목교로 구분 짓는 이유는, 부재 중 교각(전체 혹은 일부)과 상판을 나무를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널다리나 널돌다리(板形石橋) 하부구조는 재료 차이만 있을 뿐, 각 부재를 결구(結構)시켜 만든다는 점에서는 거의 흡사하다.

먼저 지반을 적심 등으로 단단하게 다져 안정화 시킨다. 그 위에 지대석(址臺石)을 놓거나, 바닥 기초 역할을 하는 길고 네모진 돌을 강바닥에 눕힌다. 지반반력(상부 구조물로부터 바닥면에 작용하는 누르는 힘에 대한 반력. 지반에서 구조물을 향해 작용한다고 가정한 힘)으로 지지력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이들 모두를 지대석으로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청계천 복원공사 중 발굴된 수표교 지대석. 땅 바닥에 넓적한 돌을 빽빽히 깔아, 교각을 튼튼히 지탱시키고 물살을 제어하려는 장치다.
▲ 수표교 지대석 청계천 복원공사 중 발굴된 수표교 지대석. 땅 바닥에 넓적한 돌을 빽빽히 깔아, 교각을 튼튼히 지탱시키고 물살을 제어하려는 장치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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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석 위에 잘 다듬은 나무나 돌로 교각을 세운다. 교각을 이루는 나무나 돌기둥을 연결하는, 보 역할을 하는 '멍에목(돌)(개개 교각을 구성하는 기둥을 가로질러 결구시키는 부재)'을 가로질러 결구시킨다. 멍에목(돌) 길이의 합이 다리 너비가 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널다리와 널돌다리 하부구조다.

널다리 상판 작업은 멍에목(돌) 위에 먼저 '귀틀목(교대와 교각, 교각과 교각 사이에 걸어 결구하는 부재. 상판을 떠받치는 부재)'을 교각 종렬 간격에 맞춰 결구시킨다. 귀틀목 길이가 다리 경간을 결정한다. 귀틀목 횡 간격은, 교각 횡렬 간격에 맞춰 결구시킨다. 귀틀목에 홈을 파 잘 마른 두꺼운 나무 널빤지(청판목)를 깔면 상판이 완성된다.

이런 모양을 '우물마루(마룻귀틀을 짜서 가로·세로로 길고 짧은 널을 깔아 만든 井자형 마루)'라 한다. 우물마루는 한옥이나 누정, 초가집 마루 등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물마루가 아니라면, 통 널빤지를 홑겹으로 길게 깔아 상판을 만들기도 한다.
 
교각을 돌기둥으로 만들고, 그 위에 멍에목과 귀틀목을 걸어 널다리를 완성하였다. 짧은 동자기둥에 긴 난대와 꽃문양의 하엽판을 달아 난간을 덧붙였다. 밤엔 불을 밝히려는지, 전기등을 달아 놓았다.
▲ 궁남지 널다리 교각을 돌기둥으로 만들고, 그 위에 멍에목과 귀틀목을 걸어 널다리를 완성하였다. 짧은 동자기둥에 긴 난대와 꽃문양의 하엽판을 달아 난간을 덧붙였다. 밤엔 불을 밝히려는지, 전기등을 달아 놓았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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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양쪽 가장자리에 긴 난간을 만들어 멋을 부리기도 한다. 가장자리에 놓인 귀틀목 위에 '동자기둥(난간동자기둥, 난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칸막이한 짧은 기둥)'을 세운다. 동자기둥에는 '난대(난간두겁대로 난간동자 위에 가로로 대는 나무)'를 끼울 수 있게 구멍을 판다.

동자기둥 사이에는 연꽃잎을 닮은 '하엽(하엽동자, 두겁대를 받치는 연잎 모양의 동자기둥)'이라 부르는 나무판을 덧세워 멋을 부린다. 난대와 하엽을 결구시키고 이를 동자기둥에 끼워 넣으면, 멋들어진 난간이 만들어진다.

널다리는 한반도 곳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각도 모두 나무로 만들었을 확률이 높다. 우리 옛말과 지명으로만 남아있는 '너더리'라 부르던 곳엔, 대부분 널다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한자로는 '판교(板橋)'란 지명을 가진 곳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널다리는 모두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나무라는 재료 한계로 사라지거나 '돌다리'로 바뀌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땅에 오래된 이름만 새겨두었을 뿐이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백성들을 보는 기분이다. 그나마 현존하는 널다리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로, 주로 궁궐 등에 남아 있는 것들뿐이다. 널다리에도 이처럼 극명하게 차별되는 계급이 있을 줄이야...

널다리는 순한 백성을 닮았다
 
홑겹의 긴 통 널빤지로 상판을 마무리한 궁남지 널다리. 둥근 섬 안으로 서동이 태어났다는 전설을 품은 포룡정이 보인다.
▲ 궁남지 널다리와 포룡정 홑겹의 긴 통 널빤지로 상판을 마무리한 궁남지 널다리. 둥근 섬 안으로 서동이 태어났다는 전설을 품은 포룡정이 보인다.
ⓒ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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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궁궐 네모진 연못 안에, 신선이 노닌다는 둥근 섬을 만든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전통 세계관을 형상화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섬 위엔 멋진 정자를 세운다. 섬과 바깥을 잇는 멋들어진 널다리를 놓는다. 단정하게 옷을 입고, 고르고 가지런한 우물마루에 양팔을 들어 난간을 세운 널다리는, 단아한 자태를 한껏 뽐낸다.

은은한 달빛이 연못에 깃털처럼 살포시 내려앉는다. 물은 잔잔하다. 고귀한 지존께서 한적하게 다리 위를 거닌다. 교각이 다리를 튼실하게 받치고 있어,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상판 위를 걸으면, 부드럽고 따뜻한 나무 촉감이 발끝에 전해져 온다.

발자국 소리마저 유연하게 안으로 흡수해 준다. 돌에 부딪혀 둔탁하게 반발하며 튀어 오르는 소리가 아니다. 결코 거역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순응하며 안겨 온다. 조용히 산보하려는 고귀한 지존의 번잡한 마음까지 다스려 준다. 발아래 저 낮은 곳에서 오로지 순종만 하는 가여운 백성을 보는듯하다. 널다리는 순한 백성들을 닮았다.

하지만 모든 게 궁금해진다. 다리를 거닐던 지존은, 격에 어울리는 품위와 멋, 정신과 철학을 갖고 있었을까? 혹여 성정이 난잡하지는 않았을까?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넜을까?

태그:#널다리, #석조기술_석조건축, #목조기술_목조건축, #너더리_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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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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