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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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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서울로 이사를 왔다. 4명이 한 방을 쓰는 서울의 한 대학 기숙사가 시작이었다. 그 후로 해마다 방을 옮겼다. 기숙사부터 시작해서 대학 근처 하숙집, 대학 근처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겨 다녔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회사 근처 오피스텔까지 끊임없이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생활했다. 

좁은 공간에서 또 다른 좁은 공간으로 계속 이사했으므로 당장, 그것도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잘 사지 않는 습관도 생겼다. '이사할 때 어차피 짐 될 거니까'라면서 사려다가도 내려놓았다. 포장이사가 아닌 다음에야 무게가 늘어날 때마다 몇 년 뒤 이사가 고단해진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부모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본가에 있는 피아노를 이제는 버려야겠다면서, 내게 양해를 구했다. 나도 안다. 집에는 나 말고 피아노를 칠 사람이 없고 어느새 커다란 피아노는 짐이 됐다는 걸. 그러면서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피아노는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우리 집으로 왔다. 전화를 받고 난 며칠 뒤 피아노는 결국 5만 원에 팔렸다. 고작 5만 원이라니! 추억을 파는 비용치고는 저렴하다는 생각에 탄식했다. 하지만 피아노는 그마저도 팔리지 않았으면 처리 비용을 내고 버려질 운명이었다. 

스물한 살 이후 계속 이사했지만 그 거처들을 제대로 된 '집'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내게 '집'은 부모님이 있는 본가였고, 나머지 공간은 그저 '자취방'에 불과했다. 자취방에는 내 물건을 모두 둘 공간도 확보되지 않았다.

짐은 대체로 본가에 있었고 자취방에는 겨우 계절을 날 정도의 물건만 있었다. 무엇보다 자취방에는 피아노를 둘 공간이 없다. 정확히는 침대와 책상을 제외한 여유 공간이라는 게 없다. 피아노가 버려지면서 문득 나도 이제는 '집'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들었다.

코로나19는 '집'을 열망하게 했다

바람을 부채질한 건 코로나19였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방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누군가 한 말을 떠올렸다. 카페는 사실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대여업'을 하는 거라고. 코로나19로 카페조차 가기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쉬려고 좁은 방 대신 넓은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서는 잠만 자면 됐으므로 집이 답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하루는 열이 높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집에서 격리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초조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보낼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 : "그거 아프지 않나요?" 코로나19 검사 직접 받아보니 http://omn.kr/1mqs6

나는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집을 구할 수 있는 앱을 모두 설치해서 밤낮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휴가를 내서 매물을 보러 다니는 열과 성을 보였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실망감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마음에 드는 곳은 월세가 지나치게 높았고 저렴한 곳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지상정이었다. 

한 번은 마포구 망원동 근처에 1억 내외에 괜찮은 신축 전세 빌라 매물이 나와서 헐레벌떡 달려갔는데, 놀랍게도 지금 내가 사는 방보다 작은 방이 튀어나왔다. 나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중개사를 바라보았다. 중개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체 방금 내가 본 매물 사진은 다 뭐란 말인가. 황당한 나머지 앱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특수한 카메라로 촬영했는지 집 내부가 원래보다 훨씬 넓어 보이도록 찍혀 있었다. 앱으로만 보면 족히 30평은 돼 보였다.

나는 마포구로 한정하지 않고 서울로 범위를 넓혀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예 휴가를 잡고 매물을 몰아서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고 집에 오면 지쳐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여기만큼 좋은 곳은 못 구하실 걸요"라고 장담하는 중개사 앞에서 차마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일 수가 없어 "집이 참 좋네요"라고 말하곤 했다.

영등포구 근처에 방이 2개나 있다는 오피스텔에도 찾아가 봤지만, 그저 조금 큰 원룸에 벽을 두 개 세운 것 같은 매물이 나왔다. 집에서 바로 나오기가 민망해 괜히 변기 물 한 번 내리고, 싱크대 물 한 번 틀어보고, 벽 한 번 두드려보고 나왔다. 물론 베테랑인 그들은 이미 내 표정을 다 읽었겠지만 말이다. 

한 재개발지구에 있는 부동산 중개사는 내게 빌라 매매를 권했다. 근처에 곧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니 10년 정도만 이 빌라에 살면 재개발로 청약 권한을 얻을 수 있다고 나를 부추겼다. 요새 아파트 청약 당첨이란 곧 당첨될 1등 로또 번호와도 같은 것이라는 걸 잘 안다. 중개사는 그것이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서울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재개발 지역에 빌라를 사서 그 빌라가 아파트로 재개발이 될 때까지 참고 버티는 거 말이다. 하긴 평생 노동을 한다고 해도 10억이 넘는 서울 아파트를 내가 무슨 수로 사겠는가. 그 재개발 열풍에 나도 한 번 뛰어들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면, 그 이후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현행 4%인 월차임(전월세) 전환율을 2.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에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현행 4%인 월차임(전월세) 전환율을 2.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마포구에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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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 구하기 늪에 빠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도 본척만척하고 집 구하기 앱에만 빠져 살았다. 서울 지리를 구석구석 외우면서 반년이 지났고 나를 안쓰럽게 여긴 친구들이나 회사 선배는 가끔 내게 괜찮아 보이는 매물을 링크로 보내주었다. 시간을 오래 끌게 되자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한 집은 안 나온다"라는 충고도 들었다. 

7월 마지막 날이었다. 자주 매물을 보내주던 친구가 "여기는 어떠니"라면서 사진을 한 장 보내주었다. 부동산에는 아직 채 올라오지 않고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전세 매물이었다. 그 매물은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원룸이 아닌 거실을 가진 투룸이었고, 다니는 회사와도 멀지 않았다. 무엇보다 월세가 아닌 전세였고 대출도 가능한 집이었다. 가격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느냐"라는 나의 감탄 섞인 말에 친구는 비법을 소개해주었다. 

알고 보니 그는 본인이 평소 즐겨 찾는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전세'라는 키워드를 넣은 게시물이 올라오면 핸드폰으로 알람이 오도록 설정해놨던 것이다. 내게 더 맞을 것 같다면서 소개해준 것이다. 퀭한 눈으로 온갖 부동산 앱만 들여다보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그래, 적어도 이 정도의 집요함은 있었어야지. 

보자마자 바로 전화해서 매물을 보러 가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집에 간 그날, 바로 여기를 계약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보러 갔다 온 당일, 나는 계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놀라웠다. 내게 이런 결단력이 있었던가. 

집으로 돌아와 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해당 집의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았다. 등기부 등본에 이상이 있다면 계약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바로 내가 사는 오피스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집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미 오피스텔 계약 기간이 한참 지난 이후였기에 바로 내놓을 수 있었다. 

계약하기 전까지 시간이 있었으므로 전세 5% 이하의 금액을 가계약금으로 걸어두었다. 며칠 전, 나는 이사를 하려는 집주인을 부동산에서 만났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 전세금의 10%를 그 자리에서 지불했다. 그리고 바로 해당 지역 동사무소에 가서 '전세 확정일자'를 받았다. 

그다음에는 바로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은행으로 바로 향했다. 이사를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았다. 

그래서, 나는 곧 이사를 간다. 새집에서의 생활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평생 이렇게 큰 결정을 내려본 일도 없다. 막상 이사하고 나서는 후회할지도 모른다. 전세 계약을 하면서 큰돈을 다루어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손이 벌벌 떨렸다. 그래도 전세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지난 반년의 과정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집구하기, #부동산, #계약, #등기부등본,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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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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