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국내 극장가가 침체한 가운데 주요 영화제들 역시 올해 고심하며 행사를 치르고 있다. 국내 3대 영화제인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영화제가 이미 행사를 치르거나 진행 중이고, 오는 10월 열릴 예정인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코로나19 확산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행사를 준비 중이다.

아직까지 행사를 치르는 영화제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소식이나 감염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없다는 건 고무적이지만, 동시에 불안감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와 인류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는 가운데 영화제들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뉴노멀'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올해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행사를 치른 전주국제영화제.

올해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행사를 치른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직전까지 고심했던 전주, 비대면 상영 및 장기상영회

코로나19 확산세에 한 차례 연기 고지를 했던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결국 온라인 상영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으로 행사를 치르고 있다. 5월 28일부터 6월 6일 심사 상영(전주 내 무관객 극장 상영) 및 온라인 상영을 진행하며 일부 온라인 관객과의 대화 등을 진행했던 전주국제영화제는 현재 서울과 전주에서 장기상영회를 열고 있다. 온라인 상영은 국내 OTT 업체인 웨이브(wavve)와 협업해, 해당 플랫폼에서 진행됐다.

올해 총 초청작은 38개국 180편. 20회를 맞았던 지난해 52개국 262편에 비해 약 40% 정도 작품 수가 감소했는데 평소 200편 내외 작품을 상영했던 것에 비추면 규모가 크게 위축됐다고 보긴 힘들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이충직 집행위원장 체제에서 이준동 집행위원장 체제로 바뀌었고, 프로그래머 역시 모두 새로운 인원으로 채워졌기에 내부 시스템 정립과 외부 코로나19 악재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는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1번 타자로 행사를 치르다 보니 고민이 많았고, 전주시와 영화제의 입장 조율과 혼란 속에서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변수에서 최선의 방책을 꼽은 게 무관객 영화제였다. 지금 하고 있는 장기상영 또한 하나의 묘수라고 생각한다"고 올해 행사를 자평했다.

"영화제는 비정상적으로 치르게 됐지만 서울에서도 감사하게 상영할 수 있게 돼서 그나마 의미는 찾은 것 같다. 사람이 모이지 못한다는 게 영화제의 정체성과 상반되잖나. 일정한 공간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뿜어내는 열기가 중요한데 그게 불가능해지니 이런 상황을 처음 겪으면서 머리 아픈 경험을 했다. 

아쉬움도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경쟁작을 보는데 여러 감회들이 있더라. 온라인 상영은 관객의 직접적 반응을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타격이었다. 창작자들은 관객의 특별한 반응과 열기로 영화의 존재감을 파악하는데 그런 리액션이 없으니 답답하셨을 것이다." 


이어 문석 프로그래머는 웨이브와 협업에 대해 "일반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다면 온라인 상영이 대안이 될 수 있는 것 같다"며 "OTT와 협업이 처음이었는데 영화제 주도로 잘 진행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정작 중 웨이브를 통해 만날 수 있던 작품은 180편 중 96편(장편 57편·단편 39편)이었다. 저작권 미해결 및 불법 복제 우려 등으로 창작자들이 소극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문 프로그래머는 "OTT 상영료(장편, 단편 묶음 7000원, 해외 단편 2000원)가 너무 비싼 게 아니었는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며 "OTT와 협업이 일종의 적과의 동침일 수도 있는데 플랫폼 대권을 그들이 쥘 거라고 예상한다면 미리 결합해서 그들의 복안을 파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년엔 더욱 그런 면도 신경 써서 협업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올해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진행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현장 사진.

올해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진행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현장 사진.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하이브리드 방식, 반 박자 빨랐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지난 7월 9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제24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방식을 함께 적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행사를 치렀다. 한국 작품에 한해 방역지침을 강화해서 극장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고, 나머지 작품은 국내 OTT 업체인 왓챠를 통해 온라인 상영을 열었다. 

폐막 후 2주가 지난 시점까지 확진자 사례나 감염자 사례가 나오지 않았고 부천국제영화제 측은 지난 7월 31일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렀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해 부천국제영화제는 42개국 194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지난해 49개국, 284편에 비해 작품 수가 약 30% 정도 감소했다.

김영덕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안전하게 영화제를 잘 치렀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지난해의 10분의 1정도로 좌석 수를 줄였고, 게스트와 관객분들 역시 최대한 협조해주셔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코로나19 상황과는 별개로 OTT 업체 등과 올해 초부터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었다"며 "조금 빠르게 대처한 게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과 OTT 내부 콘텐츠와 겹치는 게 많기에 OTT 플랫폼 관객과 우리 영화제 관객을 어떻게 이어 나갈까를 고민했다. 칸영화제나 베를린은 OTT가 점찍은 영화는 틀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잖나. 우리 입장에선 관객을 OTT에 뺏기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같이 협력할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우선 한국영화는 한 편도 온라인에서 상영하지 않았다.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가 대부분인데 처음 관객에게 보이는 영화를 온라인으로 하는 건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거라 판단했다. 전주영화제와 달리 우린 부천시에서 크게 간섭을 안 했으니 가능했지. 물론 쿠팡 사건 등으로 시청 광장 등을 쓸 수는 없었지만 CGV를 섭외해서 한국영화 창작자들 및 관객의 기대와 갈망을 충족시켜드리고 싶었다."


김 프로그래머는 "한 번쯤 잠시 멈춰서 왜 우리가 20년 넘게 영화제를 해왔는지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며 "절대적인 관객 수 자체는 줄었지만, 극장 자리를 채운 관객(좌석점유율)은 오히려 역대 최고(92%)였다. 그만큼 영화제에 대한 갈증을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주와 부천영화제는 OTT 활용법의 차이점이 있었다. 왓챠에서 별도의 엔진을 만들어 영화 건별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왓챠 주 고객층이 젊은 세대고 그것이 부천영화제 주 관객층과도 맞물린다고 생각했다"며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온라인 상영관을 왓챠에서 따로 마련한 덕에 관객분들의 피드백 역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사실 모바일에서도 서비스가 됐으면 좋은데 보안 및 화질 문제로 왓챠는 PC에서만 상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별개로 중국영화의 경우엔 스마트시네마라는 중국업체와 협업해 모바일로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절대 복제가 불가한 원천기술이 있다더라. 이 부분은 아직 실험 단계다. 또 해외 OTT 업체도 접촉했으나 자막 등 우리가 제공해야 할 소스가 너무 많아져서 협업이 이뤄지진 않았다.

여기에 더해 유튜브 채널도 적극 운영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우리와 협업했을 유튜버들 있었는데 진행하진 못했다. 이런 식으로 관객과 더 넓게 소통할 방법을 찾고 있다. 언제부턴가 영화제가 소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더라. 지금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활용해 반응을 볼 수 있잖나. 그런 반응을 보며 소통해 나가려 한다."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온라인으로 시간 제약 없이 영화를 볼 수 있기에 영화광들 입장에선 훨씬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내년엔 온라인 상영 역시 더욱 재밌게 진행할 생각이다. 상상력이 관건인데 어쨌든 더 '판타스틱'하게 해볼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대안 상영관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대안 상영관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다. ⓒ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코로나 19' 속 영화제들 저마다의 고민

이 밖에도 행사를 이미 치렀거나 치를 예정인 영화제들은 저마다 고민한 결과를 실행 중이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처음으로 전면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6월 18 ~ 6월 23일)는 관객 밀집의 극장이 아닌 트인 야외 상영관 등의 대안 상영관을 마련해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8월 13일 개막한 제16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OTT 업체 웨이브와 네이버 V라이브 등을 활용한 비대면 영화제를 공식 선언했다. 

국내 최고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현재까지 전면 오프라인 행사를 예고했다. 부산영화제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올해는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OTT 업체와도 협업을 논의했으나 현재까진 (온라인 상영)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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