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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기 전 텃밭의 모습
▲ 아파트 옆 텃밭 사라지기 전 텃밭의 모습
ⓒ 전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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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집은 조금씩 커졌고 포장이사가 없던 시절 부모님의 주름살은 한 줄 한 줄 늘어갔다. 자주 이사 다니다 보니 친구 집에서 놀다가 해지기 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의식중에 발걸음이 옛집을 가고 있어 정신을 차린 후 한참을 되돌아갔던 황당한 기억도 있다.

결혼하고 전세와 월세를 몇 년 살다가 집 장만을 위해 모델하우스를 찾아다녔다. 2000년,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아파트는 3순위에 마감되었고 청약 1순위로 1층에 당첨되는 비운을 맞은 나는 분양권 전매를 통해 같은 아파트에 웃돈을 주고 원하는 층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청약 자격 1순위가 3순위 당첨자에게 프리미엄을 얹어 매수한 웃지 못할 나의 부동산 첫 거래였다.

내가 사는 이곳은 소쩍새가 가끔 울어주고 아이들은 개천에서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가재를 잡기도 하였다. 아파트 할아버지들은 텃밭을 열심히 일구셨고, 나는 가끔 물을 나르며 잡일을 도와드려 밭에서 나오는 채소를 먹을 수 있는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동네는 발전이랍시고 텃밭이 아스팔트 길로 바뀌니 소쩍새는 사라지고 냇가에서 가재 잡는 아이들과 농사짓는 그분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나의 아파트 가격은 이사 온 이후 상당히 오르다가 세계금융위기로 주저앉았고 다른 곳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즈음 이곳의 시세는 오히려 하락을 맛보다, 부동산 폭등으로 온 나라가 난리인 현재에도 큰 변화 없는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텃밭의 모습
▲ 아파트 텃밭이였던 곳 아스팔트로 포장된 텃밭의 모습
ⓒ 전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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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결정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집으로 돈을 못 벌었다는 아쉬운 감도 있지만, 내 집을 남의 기준이 아닌 내 사용 목적에 따라 우리 가족 인생의 중요했던 순간순간들을 이곳에서 편하게 잘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남들의 눈에는 한심한 변두리 투자자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집은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가족의 주거공간이라는 것을 본보기로 실천한 것이다.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가 부실하고 위험해져서 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괴상한 경축 플래카드, 대형 백화점 입점은 환영하면서 교통체증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은 절대 반대라는 현수막, 한강 변의 마천루가 아파트 브랜드 전시장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
이 모두 아파트 투기 공화국의 한심한 자화상들이다. 인생의 목표가 잘 나가는 아파트 사는 것?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인가. 살 생각보다 팔 생각 먼저하고 들어가는 집, 그것은 집이라기보다는 숙박업소다.

정치, 경제,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현 정부 여당의 지지층조차 자기 이익에 반한다고 부동산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거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눈앞의
수익만 추구하고 부동산개혁을 거부할 때 자신들의 아들딸들이 집 장만에 나설 때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정부·여당은 현재의 지지도가 흔들린다고 부동산 정책을 후퇴하지 말기를 강력히
당부한다. 집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와 정부의 부동산 안정을 향한 강력한 개혁이 이루어질 때 대다수 국민의 행복도와 삶의 질은 상상 이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일상 대화가 아파트 시세나 따지는 주제에서 벗어나 좀 더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가?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느 시인의
글이 마음에 새겨지며 무한 공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때문에 생긴일 공모


태그:#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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