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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앉은 세 할머니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10일 오전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 인근의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았다. 나고야로 떠나기 위해 9일 인천국제공항에 모인 양금덕, 이동연, 김성주 할머니(왼쪽부터)가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나란히 앉은 세 할머니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나고야를 방문하기 위해 2015년 10월 9일 인천국제공항에 모여 있다. 왼쪽부터 양금덕, 이동련, 김성주 할머니. 이동련 할머니는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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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나이에 일본 공장에 끌려간 소녀들이 92세 할머니가 돼서도 "사과를 받고 싶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복 후 7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눈물을 머금은 채 '저항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들의 모진 삶을 역사로 남기기 위한 움직임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진행된다.

아름다운재단과 근로정신대할머니를위한시민모임은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양금덕(호적상 1931년생이지만 실제론 1929년생)·김성주(1929년생)·김정주(1931년생)의 생애를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펀딩에 나섰다.

8월 11일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에서 시작된 펀딩은 10월 11일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된다. 사회적 기업인 '기억의 책 꿈틀'이 출판을 맡고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도 힘을 보태고 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신사참배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제작소로 끌려간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신사참배
▲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신사참배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제작소로 끌려간 조선여자근로정신대의 신사참배
ⓒ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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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할머니를 비롯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일제강점기 "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게 해준다"다는 말에 속아 일본의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양금덕·김성주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김정주 할머니는 후지코시강재공업회사에 끌려가 혹독한 강제노역, 배고픔과 향수, 도난카이 대지진 피해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광복 후에도 일본군 '위안부'에 다녀왔다고 잘못 알려져 가정이 깨지는 등 한 맺힌 삶을 살아왔다. 1999년 일본 사법부에 전범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고, 일본 정부가 99엔(1천 원)을 지급하겠다고 해 분통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 최근 한국 사법부가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절차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를위한시민모임 상임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간 중요한 외교적 현안이 되는 것에 비해 전시 여성 노동력 동원 피해자인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소설, 연극, 영화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일반인들에게 알려졌지만, 조선여자근로정신대 문제는 변변한 연구 서적이나 교양도서 한 권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하루하루 생을 등지는 이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며 급속도로 피해자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어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와 함께 2015년 나고야 피해 현장을 찾았던 이동련 할머니와 김중곤 할아버지(근로정신대 피해자 고 김순례의 오빠이자 고 김복례의 남편)도 지난 5월과 1월 세상을 등졌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의 '대일항쟁기 국외강제동원 피해자 의료지원금 연도별 지급 현황'을 보면 2014년 1만 1717명이었던 지급인원이 올해 3140명으로 줄었다. 세 할머니와 같은 여성 피해자의 경우 2016년 234명이었던 지급인원이 올해 149명으로 감소했다.

이 대표는 "지나간 세월이 그저 무상할 뿐이다. 시간과의 다툼을 하는 기분"이라며 "남아 계신 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남아 계신 분 중에서도 기억을 토로할 기력마저 없으신 분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어 "10대 때 끌려가 광복 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자식한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삶을 사셨던 분들"이라며 "뒤늦게 소송에 나섰지만 일본 법정에선 패소했고 한국 법정에선 승소했지만 일본 정부 때문에 판결이 이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단순 피해자가 아닌 그야말로 굽이굽이 몇 고개를 넘어온 역사의 피해자들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굴곡진 삶을 산 할머니를 위해 역사의 증인이 돼달라"라고 덧붙였다.

책은 총 두 권을 출판할 계획(양금덕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자매인 김성주·김정주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펀딩은 카카오같이가치 '그저 사죄를 받고 싶은 할머니들 이야기'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78679)에서 참여할 수 있다.
 
한 마음으로 가리키는 추도비 미쓰비시 중공업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10일 오전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 인근의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았다. 김성주, 이동연, 양금덕 할머니가 추도비에 적힌 도난카이 지진 조선인 피해자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 한 마음으로 가리키는 추도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2015년 10월 10일 오전 자신들이 강제징용에 시달렸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터 인근의 "도난카이 지진 피해자 추도 기념비"를 찾았다. 김성주, 이동련, 양금덕 할머니가 추도비에 적힌 도난카이 지진 조선인 피해자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이동련 할머니는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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