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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019년 5월 전북 군산시 흥남동 팔마산(43.7m) 비탈에 세워진 '기념비'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후 군산 둔율동성당(등록문화재 677호) 문화재위원회 홍성호 부위원장이 전화를 해왔다. 그를 만났고, 그가 제공해준 사진과 기록물을 통해 김용진의 다양한 활동상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 기사] 100년 전 빈촌에 야학 설립한 김용진씨 http://omn.kr/1javj 
 
 군산시 흥남동 팔마산 비탈에 서 있는 김용진 영년기념비
 군산시 흥남동 팔마산 비탈에 서 있는 김용진 영년기념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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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1925년 군산 외곽(팔마재 부근)에 일신야학교를 설립한 김용진 영년기념비 사진이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교직원을 채용하고 학예회를 개최하는 등 무산아동 교육 및 문맹 퇴치에 온 힘을 다하였다. 마을에서는 그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1935년 2월에는 주민 수백 명이 모여 영년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김용진(1869~?)은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출신이다. 그가 군산 빈민촌에 야학을 세우고 11년 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모두 2천여 명. 목포와 군산에서 포목도매점을 운영하는 등 객지에서 어렵게 모은 재산을 야학 운영비로 사용해온 그는 군산에 거주하는 동안 임옥소주국자제조 조합장(臨沃燒酒麴子製造 組合長), 조선주국자조합(朝鮮酒麴子組合) 이사, 시대일보 군산지국 고문, 민립대학 집행위원 등을 지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에서 천주교로 개종

옛날 신문에 따르면 1928년 2월 옥구군 대야면(군산시 대야면) 기차역 부근에 '임옥소주'가 합자회사 형식으로 설립된다. 설립 목적은 술 원료인 국자(麴子·누룩)와 각종 주류가 외지에서 다량으로 수입되는 것을 방지하고, 지역에서의 생산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임옥소주 조합은 지역 주류업자 9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초대 조합장으로 김용진이 선임된다.
 
  홍종식 가족사진(앞줄 우측에서 두 번째 홍종식, 네 번째가 둘째 딸)
  홍종식 가족사진(앞줄 우측에서 두 번째 홍종식, 네 번째가 둘째 딸)
ⓒ 홍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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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김용진은 군산부 영정(군산시 영동) 안선상점(安鮮商店) 주인 홍종식을 만난 후 종교를 바꾼다. 두 사람은 동향(同鄕) 출신으로 이웃 사이에서 사돈 관계로 발전하면서(홍종식 둘째 딸이 김용진 조카며느리 됨) 김용진이 천주교로 개종한 것. 당시 홍종식은 군산 공소 신도회장을 맡고 있었다. 아래는 홍성호씨(홍종식 증손) 전언이다.
  
"김용진 선생은 저와 먼 사돈지간인데요. 1897년 목포가 개항하니까 본가는 개성에 두고 목포로 이주합니다. 그곳에서 '개성상회'라는 포목도매점을 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전답도 많이 보유했던 선생은 1910년대 중반 군산 안선상점 인근으로 이사하죠. 군산에서도 포목도매점(개성상회)을 운영했는데, 누님인 김마리아(홍종식 둘째 딸 시어머니) 설득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것으로 보입니다."

홍씨는 "김용진 세례명은 '야고보'이고 대부는 제 증조부(홍종식)였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천주교 세례 대장을 찾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세례받을 때 주어지는 고유번호(세례 번호)가 없다는 것.

그는 "세례 대장은 두 권 만들어 한 권은 주교에게 보내고 한 권은 본당에서 보관하기 때문에 모두 없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지금도 익산 나바위성당 세례 대장을 뒤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군산 최초 천주교당 사목회장으로 봉사
  
군산 공소는 성당 건물을 신축하자는 의견이 모여 1929년 5월 '대건혈루회'가 창립된다. 그해 신도는 250여 명(일본인 포함)으로 임원진은 초대 사목회장에 김용진, 총무 양성준, 사교부장 강윤흠, 재무부장 한민수(김용진의 조카이자 홍종식의 사위) 등으로 구성된다. 이때 김용진은 130원, 양성준 50원, 홍종식 30원, 한민수 30원을 건축헌금으로 낸다.
 
 종탑 강복식 기념사진(종 뒤편으로 김용진, 홍종식 모습도 보인다)
 종탑 강복식 기념사진(종 뒤편으로 김용진, 홍종식 모습도 보인다)
ⓒ 홍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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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은 군산에 최초로 설립된 천주교당(둔율동성당 전신)의 초대 사목회장을 맡아 수년간 봉사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래는 1935년 10월 천주교에서 발행한 <경향잡지>(단행본 815호) 기사 한 대목이다. (제목: '군산 초유의 종탑 강복식')

"9월 22일 추석의 가절도 지난 지 이미 십 여일! 추색을 재촉하고 만산홍엽을 맞아들일 맑은 하늘의 가을 일기로는 분수에 지나치게 따끈히 개인 그날이었다. 사만여의 부민을 포옹하는 군산 일우 둔율리 천주당에서는 전주 감목대리 김 신부주의 주례 아래 장엄한 종탑 강복식이 있었다 한다. (줄임)

이른바 이번 종탑의 특별한 은인이요, 강복식에 종대부까지 서게 된 김용진(金鎔鎭) 씨는 근본 개성(송도) 태생으로 군산 체재 이십여 년 동안 교회와 다못사회 전반에 몸을 바쳐 교회 발전과 빈민 옹호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빈민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기념 비석이 은인의 위업을 말하여줌을 군산서 전주를 통하는 대한길 팔마재를 넘어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뜻있게 듣지 아니하지 못할 영원의 기념탑이다. (일부 현대어로 수정)"


기사는 "김용진씨는 불원간 자기 위업의 활동 무대인 군산을 떠나 고향인 개성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바 사업가이면서 공로자인 씨를 알고 있는 군산 사회는 물론이고 둔율리 천주교회에서는 여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아니하는바 은인을 잃고 지도자를 여의게 되는 교회 각 단체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송별 준비에 바쁘다"라고 밝혔다.
  
홍성호씨는 "가족사와 신문 기사 등 여러 정황으로 미뤄 김용진 선생은 1917년 12월경 천주교에 입교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해 신도는 60여 명으로 12월 24일 군산 공소를 사목 방문한 베르모렐 신부가 주교에게 보낸 보고서에 '새로 입교한 신자들은 무척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기록했는데, 김용진씨도 새 신자들 속에 포함되지 않았나 싶다는 것.

이어 "제 증조부(홍종식)는 모태신앙으로 개성에서 손꼽히는 부호 아들이었다고 한다. 1913년경 군산에 정착하여 지금의 구시장 옹기전에 만동토점(옹기점)을 열어 재미를 보다가 영동(영정)에 안선상점(양복점)을 내면서 신도회장을 맡아봤는데 사회활동 영역이 넓고, 재력도 훨씬 풍부한 김용진에게 회장직을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100년 전 '팔마산리' 모습, 일부 확인
 
 마을 사람들이 세운 기념비 옆에서 포즈 취한 김용진
 마을 사람들이 세운 기념비 옆에서 포즈 취한 김용진
ⓒ 동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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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은 자신이 운영하던 영정의 개성상회를 넷째 딸(김은복)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영정에서 포목상(개성상점)을 운영하던 한민수는 1938년 10월 조선인 포목상조합이 결성될 때 이사로 피선된다. 그는 점포를 확장하면서 다양한 성금 모금에 동참하는 등 사회활동도 활발히 펼친 것으로 나타난다.

<경향잡지> 기사는 1908년 일제가 호남평야 쌀 수탈을 위해 전국 최초로 개설한 신작로(전군도로)를 '대한길'로 표기하고 있다. 특히 '팔마재를 넘어가는 사람이면...' 대목이 눈길을 끈다. 당시엔 사람들이 고개를 넘어 다녔고, 기념비도 '고개(峙)' 입구에 세워져 있음을 암시하고 있어서다. 옛 지도를 보면 팔마산은 경포천까지 뻗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미군이 옥구선(군산-옥구) 개설하면서 상당 부분 잘려 나간다.
  
중절모에 두루마기 차림의 김용진 사진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군산선(군산-이리) 철길과 올막졸막 붙어 있는 오두막들을 통해 처음 세워질 때 기념비 위치가 철둑 아래 평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옥구선 철도공사 때 잘려 나간 팔마산 등성이와 100년 전 팔마산리(산 아랫마을) 모습을 일부 확인할 수 있어 흥미를 더하였다.

배움에 굶주린 조선인 아동 교육을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김용진씨. 그가 설립한 일신야학교 역시 마을 주민들이 세운 영년기념비에서 멀지 않은 위치, 즉 지금의 팔마광장 근처에 있었지 않았겠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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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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