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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급매물이 18억~19억이다. 2020.5.24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급매물이 18억~19억이다. 2020.5.2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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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아파트를 팔기 위해 2018년 4월 13일 부동산에 내놨다. 처음에는 무척 망설여지기도 했다. 집을 내놓자마자 덜컥 팔려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집이 금세 팔려버리면 당장 옮겨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남편은 가끔 속 모르는 소리를 하곤 했다. 아파트가 두 채는 되어야 집값이 오를 때 사는 집 외 나머지 한 채를 가지고 재테크를 할 수 있다고. 집이라곤 달랑 사는 아파트가 전부이니 살림살이 늘 수 없다고 고단해 하기도 했다.

돈이 될만한 자리에 유명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면 모델하우스 앞은 오픈하기 전부터 장사진을 이루었고, 경매를 배운 이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고가의 아파트들을 많게는 몇십 채씩 어렵지 않게 제 것으로 만들었다. 정권이 바뀌면 끊임없이 부동산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능력자들은 부자가 됐다. 일련의 일들이 내겐 언제나 강 건너 불구경 남의 일이기만 했다.

대출을 끼고 아파트 몇 채씩을 장만하는 선배 언니를 보면 부러움에 벌어진 입을 쉬이 다물지 못하였지만 나에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용기는 없었다. 경매로 얼마를 벌었다 자랑하는 친구의 능력에 기가 죽기도 하였지만 번번이 여파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다시 나는 일터로 돌아갔고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 아파트 대출금을 갚았다. 그리고 2017년 4월 8년 만에 오롯이 우리 집을 갖게 됐다.

이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늘푼수('늘품'의 방언)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러 가야 하는 살림살이만 아니면 되는 줄 알았다.

식구의 생계가 아파트 한 채에 매달려

남편의 정년퇴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4년제 지방대를 졸업한 딸은 어떻게든 인서울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이 아닌 서둘러 입대를 한 아들은 전역 후 자신의 꿈을 향해 독립할지도 모른다. 따박따박 받는 월급만을 가지고 생활이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무엇보다 남편 정년퇴직 후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야채 장사라도 하려면 1톤 화물차라도 있어야 했다. 조그만 가게라도 딸린 낡은 주택이라도 있어야 뭔가 밥벌이라도 할 수 있을 듯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집이라도 내다 팔 수밖에. 이제 겨우 대출을 다 갚고 우리 집이 된 아파트 한 채에 여섯 식구 생계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되었다.

금세라도 팔리면 당장 갈 곳이 없는데 어떡하지 세상 물정 모르는 혼자 고민에 빠져 집을 내놓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무심히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부동산 정책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LTV, DTI, DSR 모르는 전문용어들이 마구 출몰했다.

일시적 2주택자라 하더라도 기존 주택을 3년 안에 팔 수 있다면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는데 이미 아파트를 내놓은 지는 일 년이 지나가고 있었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라고는 다섯 손가락이 남을 정도였다. 조정지역 규제대상인 줄도 몰랐는데, 2019년 11월 부산지역 몇몇 구가 조정지역에서 해제된다는 보도가 났다.

"사모님 댁은 저층인 데다 오래된 아파트고 리모델링도 안 돼있어 팔 생각이 있다면 가격을 한참 낮춰 내놓아야 해요. 사모님 내놓은 가격 내가 이틀 전 요 앞 동 12층 계약했어요. 1층 아파트는 그 가격으로는 못 팔아요."

아파트 내놓은 지가 언제인데 볼멘소리라도 할 요량으로 부동산 사무실에 연락해 본 날, 사모님 소리가 무색하리만큼 공인중개사 말 마디마디가 뼈를 후려쳤다. 요즘 대출이 막혀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나마 팔 생각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격을 한껏 낮추라는 조언이었다. 그 말에 나는 기가 죽었다.

아파트가 우리 가계부에 보탬이 되어 줄 것이라 계산하지 못하고 지난 세월을 안일하게 산 나의 탓을 누구에게 할까 싶어 일부 금액 조정을 다시 하여 부동산에 내놓았다.

그리고 2020년 5월 말 시중 거래되고 있는 금액보다 6000만 원을 싸게 십 년 산 우리 집이 팔렸다. 2년을 넘는 시간 동안 집만 팔리면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 준비하고 조사해놓은 가게 딸린 낡은 주택으로도 갈 수 없게 됐다. 처음 가늠했던 금액에서 6000만 원이 빠지게 되니, 낡은 아파트 한 채 팔아 쥔 돈으로 도대체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주류가 되어 보지 못한 건 남의 탓이 아니다. 내 탓이다. 그저 무사태평하기만을 바랐다. 가족의 건강과 가족의 무탈함만을 기도하며 여기에 이르렀고 감사했다. 살아오면서 돈이 항상 뒷전이었던 값을 이렇게 치르는구나. 

매월 90만 원 원리금 납부, 30년 상환계획 주택담보 대출신청서를 작성하는 날, 차라리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를 비주류로 늘 하던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게 해주지 싶었다. 집으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집은 그저 내 아이와 내 부모를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나의 가족이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면 족했다.

집을 두고 애써 돈을 벌어보지 않은 진짜 서민들은 집을 팔고 사는 일에서도 좀 한갓지면 안 되는 일인가. 적어도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이토록 제약이 따르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거금 6000만 원을 잃고 30년 짜리 빚 계약서를 쓰고 그저 작은 방들이 딸린 가게를 사 이사 들어가던 날 나는 한층 삐뚤어지고 싶었다. 미련한 나만큼이나 국가도 미웠다.

근면성실함만은 분명 죄다. 윤리 도덕에 준한 착한 삶은 액자에 걸어두고 지나치면 그만인 말씀일 뿐이다. 어쩌자고, 자꾸 삐뚤어지고만 싶다. 나 하나쯤 삐뚤어진다고 누구 하나 눈도 깜짝이지 않겠지만 돈 육천을 잃고 다주택자도 아닌 내가, 부동산을 가지고 뭣 하나 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부동산 규제 세상 한복판에 서고 보니 그냥 마구 삐뚤어지고 싶다.

주민세라도 안 내어볼까? 돈 잃고 마음 좋을 사람은 없나 보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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