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7 13:02최종 업데이트 20.07.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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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 전 기자에 대해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직(한 검사장)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 역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 7월 25일 <조선일보> 秋가 밀어붙인 한동훈 수사, 수사심의위 "중단하라"

24일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검언유착' 사건에 대해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할 것을 권고했다. 결정 발표 다음 날 조선일보는 심의위 결정 소식을 전하며 지난 17일 채널A 기자의 구속 결정에 논란이 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궤변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권고의 효력밖에 없는 심의위 결정이 사법부가 내린 판결보다 더 무게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보수 언론 대부분 심의위 결정이 마치 대법원 최종심의 무죄 판결인 양 보도했다. 한동훈 검사장이 심의위에 출석해 위원들 앞에서 한 발언의 전문을 게재하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부당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며 법무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고 한 주장을 주요 뉴스로 다룬 언론사도 적지 않았다.
 
한동훈 검사장 "지금의 광풍, 억울하게 감옥 가도 이겨내겠다" - <조선일보>
한동훈 "추미애, 날 구속하려 할 것…감옥 가도 이겨내겠다" - <중앙일보> 

언론 보도만 본다면 한동훈 검사장은 정치권력의 희생양, 추미애 장관은 정권 수호에 혈안이 된 무법자와 다름없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2020.6.22 ⓒ 연합뉴스

 
사실 앞뒤와 무게가 뒤바뀐 언론의 보도 형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스스로 회피해야 할 측근의 검언유착 사건에 개입하는 행태에 제동을 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내용상으로나 형식상으로 특별한 문제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내 지시를 절반으로 잘라 먹었다'는 추 장관의 발언을 키워 법치 파괴 언행으로 규정하고, 야당 인사들의 SNS까지 인용하며 법무부 장관 성토에 나섰다.
 
대통령이 직접 쫓아내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그래서 법무장관이 대신 나서서 매일 모욕을 주는 방법으로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 6월 27일 <조선일보> [사설] 추 장관의 윤석열 모욕 주기 막말, 대통령 뜻 아닌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6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지휘랍시고', '잘라먹었다'는 천박한 표현은 북한에서나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입에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 6월 26일 <동아일보> 원희룡 "추미애 입에서…북한식 천박한 표현 나올줄이야"
 
지난 7월 3일 검찰총장이 소집한 검사장 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지휘 배제는 위법하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러나 대검찰청은 검사장 회의 결과와 무관하게 '채널 A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자체적으로 수사하게 됐다'며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를 수용해 갈등이 봉합 수순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수 언론은 '일선 검사장들이 용기를 내어 줬는데 실망이 크다', '갈등은 봉합되었지만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기사들을 내보냈다. 보수 언론에서 수사지휘를 수용해 다행이라는 논조는 찾기 어려웠다.
 
"방패막이 할 사람이 굽히다니…" 검사들 자괴감 - <조선일보>
추미애 뜻대로 봉합된 검찰-법무부 갈등, 나쁜 선례 되나 - <중앙일보>  
 
속 보이는 언론 

수사지휘권 행사는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형식상 법이 규정한 장관의 권한이다. 검찰총장이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측근의 비리 혐의에 대해 감싸기를 하지 말고 서울중앙지검에 독립된 수사를 보장하라는 지시는 이상할 것이 없다.


채널A 기자로부터 시작된 검언유착 사건은, 회자되고 있는 장관 아들의 휴가 미복귀 사건이나 검찰총장 장모 관련 의혹과는 다른 문제다. 장관이 아들 관련이나 검찰총장 장모 관련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에게 수사 중단을 지시하거나 수사를 종용했다면 수사지휘권 남용이라 볼 수 있지만, 총장 최측근이 관련된 수사에서 수사팀의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의 직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해 정식 의사결정 기구도 아닌 전국 검사장 회의에서 장관의 수사지휘권의 적절성을 논의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최강욱 의원은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방부 장관이 지시한 내용을 사단장들이 모여 참모총장에게 거부하기를 건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와 전국 검사장 회의 결과가 같은 무게일 수는 없다. 더구나 전국 검사장 회의 결과와는 다르게 수사지휘권을 수용한 윤 총장을 두고 '방패막이 할 사람이 굽히다니, 일선 검사 자괴감'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식의 보도는 인터뷰를 인용했다지만 법무부 장관을 공격하는 데 급급한 속 보이는 보도였다.

구속된 채널A 기자 측이 한동훈 검사장과 나눈 대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압박의 수단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으니 공모로 볼 수 없다며, 오히려 한동훈 검사장에게 칼을 겨눈 의도가 윤석열 죽이기라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명시적으로 한 검사장이 채널A 기자에게 범행을 지시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범죄의 모의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검찰 고위 간부와 출입기자 사이에 그런 주제가 아무렇지 않게 오갈 수 있느냐다.
 
이동재 : 사실 저희가 요즘 P○○(후배 기자)를 특히 시키는 게…성공률이 낮긴 하지만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신라젠 수사는 수사대로 따라가되 너는 유시민만 좀 찾아라,
후배 기자 : 시민 수사를 위해서 (겹쳐서 잘 안 들림)

이동재 : 이철 (전 VIK 대표) 아파트 찾아다니고 그러는데.
한동훈 : 그건 해 볼 만 하지. 어차피 유시민도 지가 불었잖아. 나올 것 같으니까. 먼저 지가 불기 시작하잖아.

이동재 : 이철, Q○○, R○○. 제가 사실 교도소에 편지도 썼거든요. 당신 어차피 쟤네들이 너 다 버릴 것이고
한동훈 :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변호인 측이 21일  공개한 녹취록 중에서

채널A 기자가 유시민 이사장의 뒤를 캐고 이철 대표에게 편지를 썼다는 내용을 언급하자 한 검사장이 '그런 거 하다가 한 건 걸리면 되지'라고 말한 부분을 두고 격려성 발언이라고 하지만, 취재 사실을 보고하듯 이야기하고 흡족한 듯 호응하는 검사와 기자의 대화 내용이 과연 정상일까.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한동훈 검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리는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심의위가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검언유착 사건 수사를 중단하고 불기소할 것을 의결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언론은 이 결정을 두고 채널A 기자 구속이 적절했는가를 물었지만, 그보다는 수사지휘권 논란으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심의위 결정이 적정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을 불기소해야 된다고 권고했던 심의위. 이러다가 검찰권 오남용을 막겠다는 설립 취지와는 달리 권력층의 면죄 수단쯤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 사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검찰 고위 간부와 기자가 짜고 총선을 뒤흔들 사건을 기획 했느냐의 문제다. 수사팀의 독립성만 보장된다면 정치적 논란이 일어날 일도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독립된 수사를 방해하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총장의 개입을 차단하려 하는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권이 이를 부풀리며 진영 싸움으로 변질된 것이다.

본질은 윤석열 죽이기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기획한 검언유착 사건이 아니라,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의 시급성과 정당성을 다시 각인시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한판 크게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히 추미애랑 이성윤, 최강욱-황의석-조국은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수사와 기소를 강행하라고 할 테니까요. 여러분들도 같이 싸워주셔야 합니다. 

24일 심의위 결정 후 진중권씨가 SNS에 남긴 글이다. 그러나 심의위 권고를 받아들일지는 추미애 장관, 조국 전 장관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판단할 일이다. 이를 두고 진씨의 말처럼 한판 크게 싸워야 할 일이라면, 그의 반대편에 서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광풍의 2020년 7월을, 나중에 되돌아 볼 때, 적어도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중 한곳만은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서 있었다는 선명한 기록을 역사 속에 남겨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한동훈 검사장이 심의위에서 한 말의 일부다. 광풍의 2020년 7월. 정의는 진중권씨가 서 있는 곳도, 보수 언론이 가리키는 곳도 아닐 수 있다. 그들의 반대편에 선다고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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