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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넘을 수 없는 분리 장벽, 흙 먼지 가득 날리는 황량함, 검은 복면을 쓰고 군인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 그리고 총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이런 몇 가지 모습으로 우리는 팔레스타인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2월 한 달 동안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3명이 팔레스타인으로 현지 활동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도 슬픔과 기쁨, 즐거움과 고통, 삶의 환희와 열정이 넘쳐났고, 때로는 마음에 담기 힘든 고통도 가득했습니다. 처음 가 본 그곳에서의 경험을 하나하나 풀어내겠습니다.[편집자말]
월드 오프 호텔의 박물관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황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 되어 있다. 바로 옆으로 거대한 분리 장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이 상황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 월드 오프 호텔 내의 박물관 월드 오프 호텔의 박물관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황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 되어 있다. 바로 옆으로 거대한 분리 장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이 상황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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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벨은 전화를 받을 때까지 계속 울린다. 그 소리가 너무 사나워 결국 전화를 받게 된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건조한 목소리.

"너희 집은 5분 내로 파괴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알린다. 너희 집은 5분 내로 파괴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파괴하는 방식 중 하나다. 어떤 이스라엘 사람은 '이렇게 미리 알려주니 얼마나 배려심 깊은 (가옥 파괴)행위냐!'라고 말한다.

미리 알려주건 그렇지 않건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멀쩡한 남의 집을 마구잡이로 부수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인간의 냄새도 맡을 수 없다. 그라피티 작가로 유명한 뱅크시가 베들레헴에 세운 월드 오프 호텔에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하고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설치물이 바로 이 전화기다.

나는 이 전화를 받자마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5분 안에 어떻게든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허둥지둥하다가 얼른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자 다시 집요하게 전화벨이 울리고 받으면 어김없이 5분 후에 집을 부순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 전시공간 앞에서 너무 머리가 아파 얼른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것은 뱅크시의 상상에 의한 전시가 아니라 실제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부서진 집 사이 흐드러지게 핀 아몬드나무꽃
 
리프타 마을은 땅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쫓겨난 마을에 아몬드 나무, 올리브 나무, 선인장 꽃들이 해마다 피고 진다.
▲ 사람들이 쫓겨난 동네에 아몬드 꽃만 피고 지다 리프타 마을은 땅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쫓겨난 마을에 아몬드 나무, 올리브 나무, 선인장 꽃들이 해마다 피고 진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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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흔적이 끊긴 리프타 마을에는 이제 우거진 풀과 나무들 사이에서 간신히 예전의 집들이 겨우겨우 서있다.
▲ 70년 동안 강제로 사람의 흔적이 끊긴 리프타 마을 사람의 흔적이 끊긴 리프타 마을에는 이제 우거진 풀과 나무들 사이에서 간신히 예전의 집들이 겨우겨우 서있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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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팔레스타인은 바람이 차갑지 않고 선선하게 느껴진다. 눈을 가만히 감으면 아몬드 꽃향기와 계곡물 흐르는 소리,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소리, 양떼들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사람과 동물의 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무와 풀들만 남아 각자의 향기를 내고 있다.
   
2월 3일 늦은 오후. 예루살렘에 있는 리프타 마을에 갔다. 한눈에도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마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엔 단 한 명의 사람도 살지 않고 아니, 살지 못하고 부서진 집들만 꽃잎이 흐드러진 아몬드 나무 사이사이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나크바(아래 용어 설명 참조) 이전 이곳에는 약 25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큰 마을이었다. 1947년 12월 리프타의 커피 하우스에 유대인 테러 조직 스테른 갱이 총기를 난사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이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결국엔 텅 빈 마을이 되고 말았다. 그후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은 떠났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금지했고, 다시는 이 마을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어떤 삶의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매년 아몬드와 올리브 나무, 선인장과 풀들만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리프타 마을은 그나마 마을과 집의 형체가 남아 있는 아주 특수한 경우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여러 방법 중 하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마구 부수어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2월 4일에는 예루살렘의 와디 알 홈무스 마을로 향했다. 표지판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물어물어 찾아간 와디 알 홈무스 마을 회관에서 마을 대표분께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가옥 파괴(건물 철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회관에는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와 있었고, 돌아가며 쭉 인사를 했다. 커피를 마시고 설명을 듣고, 참당한 상황에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식어버린 커피를 두고 모하메드의 차를 얻어 타고 강제로 철거된 집을 보러 갔다.
 
하루 아침에 집을 잃어버린 모하메드가 잔해 가득한 자신의 집 앞에서 그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도 우리도 자주 목이 메이고 가슴이 먹먹하였다. 그때마다 잠시 쉬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 파괴된 자신의 집 앞에 선 모하메드 하루 아침에 집을 잃어버린 모하메드가 잔해 가득한 자신의 집 앞에서 그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도 우리도 자주 목이 메이고 가슴이 먹먹하였다. 그때마다 잠시 쉬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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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은 황량하고, 군데군데 무너진 집들이 보이고, 모하메드는 뜨문뜨문 영어로 말을 해야 하고, 내가 점점 더 안절부절못하게 된 까닭은 지금 보러 가는 집이 바로 모하메드의 집이기 때문이었다. 정식 허가를 받은 집이고 가족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집을 하루아침에 잃게 된 모하메드의 마음을 생각하니 '도대체 이 집을 보러 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서진 집의 잔해 앞에서 내 집이 이렇게 부서졌다고 알려야 하는 마음. 자신의 뭉개진 집을 찾아 가서 다른 사람에게 무너진 삶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마음. 어렵게 좁은 공간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제로 철거한 집의 철거 비용까지 내야 하는 이중고를 온몸으로 알려내고 있는 그, 팔레스타인 사람. 무엇을 더 묻는다는 것도 사진 촬영을 한다는 것도 아프게만 다가왔다.

그날따라 하늘은 왜 그렇게 푸른지. 그 푸른 하늘에 구름조차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눈 앞에서 모든 게 산산조각 나는 경험
 
와디 왈 홈무스 마을에는 모하메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또는 새로 짓고 있는 집을 철거 당했다. 그들은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처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 파괴 된 자신의 집에 대해 가슴으로 설명하는 사람들 와디 왈 홈무스 마을에는 모하메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또는 새로 짓고 있는 집을 철거 당했다. 그들은 입이 아니라 온몸으로 처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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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의 집 근처에는 마찬가지로 파괴된 집과 건물들이 여럿 있었다. 이 마을은 100여 채의 집이 철거 명령을 받았다. 이곳은 예루살렘의 외곽 지역으로 예루살렘에 속해 있지만, 행정상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관할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이곳이 보안상 위협이 된다며 철거 명령을 내렸다.   

그날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여러 대의 굴삭기를 끌고 왔을 것이다. 집을 부수기만 할 뿐 정리할 생각은 애초에 없으니 잔해를 치울 트럭 같은 것은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작은 저항이라도 있을까 싶어 총을 메고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도 몇 명은 왔을 것이다.

그리고 모하메드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족 중 몇은 그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다른 곳으로 피해 있었을 것이고, 몇몇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자신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을 것이다. 살림살이는 대충 챙겼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가족이 함께했던 추억들은 아마도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차를 마신 마당과 가족이 새로 태어나고 자란 집 그리고 아몬드 나무며 올리브 나무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모하메드는 뙤약볕 아래서 우리를 안내했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우리를 예루살렘 숙소 앞에까지 태워줬다. 차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흘렀고, 창 밖은 세상에나 싶게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동예루살렘 올드시티 근처에는 팔레스타인 여기저기로 떠나는 시외버스 정류장, 시장, 팔라펠 가게에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들은 또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록 집은 파괴됐어도 어떻게든 삶은 이어가야 하니까.

세월에 피고 지는 리프타 마을의 아몬드 나무와 와디 알 홈무스 마을의 분리 장벽 철조망 울타리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왼쪽은 베들레헴, 오른쪽은 예루살렘이다. 이 경계는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고 그들은 두 마을 사이에 끝없는 철조망을 처놓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속해 있는 와디 알 홈무스 마을만 집들이 부서져있다. 하늘은 무심히 푸르다.
▲ 푸른 하늘과 철조망 분리 장벽 왼쪽은 베들레헴, 오른쪽은 예루살렘이다. 이 경계는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고 그들은 두 마을 사이에 끝없는 철조망을 처놓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속해 있는 와디 알 홈무스 마을만 집들이 부서져있다. 하늘은 무심히 푸르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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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및 용어 설명]

*월드 오프 호텔(The Walled Off Hotel): 유명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가 기획해 2017년 5월 베들레헴에 문을 연 호텔. 거대한 분리 장벽과 불과 4m 거리에 위치한다.

*뱅크시(Banksy): 영국의 미술가 겸 그라피티 아티스트. 기발한 유머 감각과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나크바(النكبة‎, 알 나크바(Al Nakba)): 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이며,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자기 땅에서 추방당한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스테른 갱(Stern Gang): 1940년 아브라함 스테른(Avraham Stern)이 팔레스타인에 세운 시온주의자 테러 조직이다.

*리프타(Lifta)에 대한 정보: 일란 파페, 유강은, 팔레스타인 비극사, 열린책들, 2017.

*와디 알 홈무스(Wadi Al Hummus)에 대한 정보: 철거 명령 떨어진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마을 '와디 알 홈무스', 참세상, 2019.7.17.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4210

*모하메드(Mohammed): 나는 아쉽게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여 팔레스타인 남성의 가장 흔한 이름인 모하메드로 대신하였다. 팔레스타인의 많은 모하메드들이 와디 알 홈무스 마을의 모하메드와 비슷한 일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태그:#팔레스타인, #가옥 파괴, #나크바, #바티르, #와디 알 홈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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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없이 세상의 길을 헤매는 것이 즐겁습니다. 작고 소박하면서 거친 저의 길 위에서 두 눈을 감고 작은 바람 한 조각을 온몸으로 느끼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경이로운 춤을 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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