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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과 '봉북'의 경계선, 봉선로 사진 왼편이 '봉남'이고, 오른편이 '봉북'이다. 도로변은 죄다 학원 건물로 들어차 있다.
▲ "봉남"과 "봉북"의 경계선, 봉선로 사진 왼편이 "봉남"이고, 오른편이 "봉북"이다. 도로변은 죄다 학원 건물로 들어차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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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어딜 가나 '강남'은 있다. 비유적인 표현일지언정,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곳을 일컬어 '강남'이라 부른다. 그곳은 하나같이 지역 내 최고의 학군으로 손꼽힌다. 전국의 '강남'에는 고가의 아파트와 학원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대개 사립 명문고가 여럿 자리한다.

40년 전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인 이곳 광주에도 '강남'이 있다. 광주가 어떤 곳인가. 불의한 신군부의 폭력에 맞서 열흘간 항쟁으로 맞선 민주화의 성지이자,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나눔과 연대의 절대 공동체로서, 대한민국 현대사에 우뚝한 곳 아닌가. 적어도 광주와 '강남'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아무튼 광주의 '강남'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이다. 작은 대치동, 사교육의 성지, 광주의 8학군 등 별명도 여럿이다. 관할 기관인 남구청조차 '문화 교육 특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을 만큼 이곳의 교육열은 서울 강남 못지않고, 부동산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광주의 강남, 봉선동

참고로 남구의 '문화 교육 특구' 사업은 공공도서관 확충과 작은 도서관 활성화, 방과 후 독서 스쿨 등 학교 밖 공교육 지원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명실공히 '명품 교육 도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이다. 올 초 중소벤처기업부의 사업 연장 승인도 난 터다.

봉선동은 광주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고, 수능 점수와 명문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인근에 자리한 일반고의 성적이 다른 지역의 특목고나 자사고 부럽지 않을 만큼 높다. 하긴, 부모의 재력과 자녀의 성적이 정비례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새삼스러울 건 없다.

굳이 따로 세금을 들이지 않아도 이곳의 교육 환경은 '완벽하다'. 학교급과 교과목을 막론하고 각종 학원의 밀집도는 서울 강남 대치동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정부가 나서서 공교육을 지원한다고 해도, 대학 입시에 특화된 사교육의 위세에 눌려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이곳에선 아무리 둘러봐도 유흥가는커녕 그 흔한 맥줏집 하나 찾기 어렵다. 주택가 근처 대로변 목 좋은 곳이라면 으레 자리하기 마련인 음식점도 드물다. 우리나라에선 열 걸음에 하나꼴이라는 카페조차도 건물 벽을 도배하다시피 한 학원 간판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도로변 상가 건물 중엔 오로지 학원만 입주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1층에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주전부리할 수 있는 분식집과 휴게실처럼 꾸며진 스마트폰 영업점이 자리하고 있다. 예체능 학원까지 있는 걸 보면 공부와 식사, 휴식 등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공간이다.

교육의 주도권이 사교육에 넘어간 지 이미 오래지만, 이곳은 특히 유별나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일과 시간을 배분하는 공생 관계로, 이곳의 학원은 사교육 기관이라기보다 차라리 '제2의 학교'다. 교문이 곧장 학원으로 연결되는 곳도 많아, 마치 학교가 학원에 포위된 형국이다.

학원 입구에서 만난 한 아이는 학교와 학원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는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산출하는 곳이고, 학원을 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는 곳이라고. 또, 학교는 과제를 내주고 학원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곳이라며, 학원 없이는 학교생활이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봉남'의 아이들과 '봉북'의 아이들
 
 건물의 외벽은 물론, 내부 벽면에도 학원 홍보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건물의 외벽은 물론, 내부 벽면에도 학원 홍보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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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봉남'에 산다고 했다. '봉남'은 봉선동의 남쪽을 가리키는 말로, '봉북'의 상대 개념이다. 봉선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4차선 봉선로를 경계로, '봉남'과 '봉북'으로 나뉜다고 한다. 이 해괴한 용어를 봉선동 주민은 물론이고 광주에 사는 이들이라면 대개 들어 알고 있다.

정확히는 봉선2동을 남북으로 가르는 개념이다. 행정구역상 봉선동은 1동과 2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도심과 인접한 봉선1동은 아예 광주의 '강남'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선지 봉선1동 주민들은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는 외지인들에게 봉선동에 산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봉선1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봉북' 주민들의 위화감도 만만치 않다. 도로 하나를 사이로 아파트값이 천양지차인 까닭이다.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예전 같으면 봉선동에 산다고 했겠지만, 몇 해 전부터 '봉남'과 '봉북'을 따지다가, 요즘엔 아예 아파트 브랜드로 답한다고 한다.

'봉남'에 산다는 그는 초등학교도 그곳에서 나왔다고 했다. 봉선2동 관내에는 초등학교가 세 곳인데, 공교롭게도 한 곳은 '봉남'에, 다른 한 곳은 '봉북'에, 나머지 한 곳은 절묘하게 학군이 양쪽에 걸쳐 있다. 그런 까닭에 '봉남'과 '봉북' 대신, 학교 이름으로 구분 짓기도 한다.

'봉남'의 아이들과 '봉북'의 아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 초등학생조차 그들 사이의 '태생적' 격차를 이미 알고 있으며, 서로 '신분'이 다르다는 걸 선선히 받아들인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이곳 광주에서 '세습 자본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봉선동이다.

'봉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직업군을 헤아려보는 데는 다섯 손가락이면 족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사, 법조인, 교수, 기업인 등이 아니면 '봉남'에 거주하거나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웬만한 중산층이라도 그곳의 집값은커녕 전셋값조차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평수라도 5~6억 원은 기본이고, 조금 괜찮다 싶은 아파트는 10억 원을 호가한다. 지금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와 견준다면, 집값도 전셋값도 3배 가까이 차이가 나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아예 다른 지역 사람들은 감히 넘보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듯하다.

학군이 겹친 초등학교에서는 빈부 차로 인한 갈등이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한다. '봉남'과 '봉북'끼리의 학교라고 이러저러한 갈등이 왜 없을까마는, 적어도 거주하는 아파트에 따라 반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봉남'의 학교로 전학을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몇 해 전 어느 지역에서 분양 아파트 주민들이 펜스를 세워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통학로를 막은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가난한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를 나 몰라라 하는 작태라며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펜스는 밖이 아닌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봉남'에서 줄곧 살아온 그에게 '봉북'에 사는 친구는 없다고 했다. 기꺼이 손을 내밀기도 쉽지 않지만, 내밀어도 이내 뿌리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학원엘 다녀도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이유를 그는, 주저 없이 '봉북' 아이들의 자격지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곳 광주에선 봉선동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벼슬'이 된다. 봉선로를 걷노라니, 과거 TV의 한 아파트 광고에서 나왔던,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 준다'는 카피가 떠올랐다. 도로 위에는 이곳이 광주의 '강남'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값비싼 외제 차가 즐비하다.

해당 광고가 처음 등장했을 땐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며 너도나도 손가락질해댔지만, 도리어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조차 장래 희망을 건물주라고 적는 훨씬 더 천박한 세상이 됐다. 부동산 투기의 광풍은 멈출 줄 모르고, 청년들은 '이생망'을 외치며 로또에 한 가닥 희망을 건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가르침은 어디로
 
귀일원 전경 귀일원은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이 해방 후 고아와 걸인들을 거두기 위해 설립한 공동체다.
▲ 귀일원 전경 귀일원은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이 해방 후 고아와 걸인들을 거두기 위해 설립한 공동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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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을 가르는 봉선로가 시작되는 곳에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있다. 귀일원(歸一院). 맨발의 성자, 대한민국의 성 프란치스코라고 불리는 이현필 선생이 해방 후 극심한 좌우 대립과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수많은 고아들과 걸인들을 거두기 위해 설립한 공동체다.

그는 겨울에도 맨발로 다녔으며, 온돌방을 거부하는 철저한 극기와 금욕의 수도 생활을 실천했다.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뜻으로 '1일 1식'과 '십시일반' 운동을 전개했으며, 전국에 수많은 나눔과 연대의 공동체를 꾸렸다. 그 태자리가 바로 이곳 봉선동이다.

지금 봉선동에서 선생이 평생 실천했던 극기와 금욕, 나눔과 연대의 가치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강남'을 자처하며 '명문'과 '명품 교육'을 부르대는 그곳에서 선생의 가르침은 이미 존재감을 잃었고, 귀일원은 고급 아파트로 에워싸인 외로운 섬이 됐다. 현재 200여 명의 장애인이 생활하는 이곳이 '강남'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이 뭐길래
 

사족 하나. 공모에 참여하고자 지난 목요일(7월 23일) 오후 퇴근하자마자 50리 길을 달려 광주의 '강남'을 찾았다. 학원가를 기웃거리며 제 몸 만한 가방을 멘 아이들을 보았고, 쉬는 시간 프랜차이즈 분식집에 들어가는 고등학생 두 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로라는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온갖 사교육이 부나방처럼 모여든 것인지, 아니면 학원이 밀집한 곳이라 부동산 가격이 뛰어 자연스럽게 부촌이 형성된 것인지 확언할 수 없다. 어떻든 지금 그 둘은 분리할 수 없는 '샴 쌍둥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부동산 때문에 애꿎은 동네가 갈기갈기 찢겼고, 아이들은 서로 소 닭 보듯 서먹한 사이가 됐다는 점이다. 사는 곳이 '신분'을 규정하는 마당에, 지방정부는 생뚱맞게 '명품 교육 도시'임을 뽐내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내게' 생긴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긴 일이라 말하고 싶어서 덧붙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 때문에 생긴일 공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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