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곡관
▲ 문경새재 2 관문 조곡관
ⓒ 장순심

관련사진보기

문경새재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10여 분 전부터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걷는 것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차 안에서 입구만 보고 차를 돌렸다. 다음날, 날이 맑았다. 전날 내린 비로 수량도 풍부해 1관문을 거쳐 2관문까지 오르는 계곡엔 힘찬 물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시골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에 올랐다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그 고개는 지금은 산책길처럼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곳에서는 문제없어 보였다. 우리 앞으로는 먼 간격을 두고 저만치 앞서가는 등산객 둘이 있을 뿐. 가벼운 차림에 물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배낭에 메고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걸었다.  

임진란을 겪고 난 후 성을 쌓고 관문을 만들었다는 이곳은 지금은 1관문 주흘관, 2관문 조곡관, 3관문 조령관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둘레길이 단장되어 있었다. 다양한 곳을 거치는 여러 개의 둘레길에 대해 거리와 시간까지 안내돼 있다. 관광지이기도 했지만 걷기 코스로 적합해 보였다.

2관문까지만 걷기로 했다. 입구에서 시작하면 3km가 조금 넘는 거리. 평지라면 사오십 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2 관문까지는 굴곡이 없는 낮은 경사의 오르막길이었다. 넓은 길 양쪽으로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늘어서 있었다. 바람은 잠잠했지만 청량한 느낌의 날씨였다.

1관문 근처에 세족하는 곳과 보관함이 있었는데, 오르는 길에 부드러운 흙이 깔려 있어 맨발로 오르는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맨발로 오르는 사람을 오가는 길에 만나기도 했다. 내려오면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씻은 후 보관함에서 신발을 꺼내 신고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온몸의 기운이 모아 있다는 발을 맨땅에 디디고 골고루 지압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름난 고개이다 보니 길 양쪽에 다양한 역사적 흔적들이 많았다. 그것들을 보며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도 들으며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걸으면 되는 길이었다. 좌측은 계곡이 이어지고 있었고, 우측에는 아기자기한 작은 폭포들이 만들어져 있어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바람과 만나 자연의 선풍기가 되어 주었다.

오르는 길의 바위에는 인근 지역의 지방관들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 적은 비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벽을 깎아내고 망치로 두드려서 새겨진 시비는 세월의 풍상에 흔적만 간신히 남아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는 같아 보였다.

이 외에도 임금님의 명을 받아 출장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는 터가 복원되어 있었다. 중앙과 지방을 잇는 관문의 역할을 하던 곳이어서 오가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나랏일을 보기 위해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숙소는 이곳 말고도 두 곳이 더 있다고 했다.
 
문경새재를 넘기 전 선비들이 묵었다는 숙소 자리
▲ 주막터 문경새재를 넘기 전 선비들이 묵었다는 숙소 자리
ⓒ 장순심

관련사진보기

이전 감사와 새로 부임해 내려오는 감사가 이, 취임식을 하던 정자도 있었다. 아무래도 풍광이 좋으니 자연과 벗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을 것이고, 그러한 곳에서 높은 관직의 관리를 보내고 맞는 행사를 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문경새재는 산이 아기자기하다기보다는 크고 깊어 보였다. 걸어 올라가며 길이 깔끔하게 단장된 넓은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중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곳이기에 그 옛날, 산속 깊은 곳에서는 사나운 짐승들은 물론이고 도적들도 출몰했을 것이다. 때문에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여럿이 모여 함께 산을 넘었다고 했다.

이러니 사람들도 쉬어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묵었던 주막터도 복원되어 있었다. 선비들이 묵었다는 주막터 앞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약용, 김시습, 이이 등 많은 선비들의 시비가 근처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먼 길을 가며 여독을 달래고 높은 고개를 넘는 소회, 시험을 앞둔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감회를 적은 것도 있었다. 수많은 인물들의 시비를 통해서도 특별한 장소와 그곳의 이야기들을 통해서도 문경새재의 지리적 중요성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았다.

길 양쪽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기대어 생각을 내려놓고 걸어도 좋지만, 주변의 다양한 볼 것들을 두루 새기며 걸어도 충분한 휴식이 되는 곳 같았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 주는 다양한 자취를 만나보는 것을 권하고 싶었다.

요즘엔 어느 곳을 가도 우리의 남은 시간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될까를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걷는 걸음이 이곳에서는 마지막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 보는 것이 이곳을 보는 마지막 풍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보면,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 있게 다가오곤 했다.

문경을 이전에도 한 번 왔었지만 이번처럼 문경새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 처음이었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는 겉핥기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빚어내는 멋진 풍경까지.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기는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가치 있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2관문에 도착해서 여러 장 사진을 찍었다. 햇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돌아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의 그 길이지만 다르 느낌으로 새로웠다. 올라오며 경사를 느낄 수 없는 길이었음에도 내려오는 길은 뒤에서 누군가 가볍게 밀어주는 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입구에는 옛길박물관과 오픈세트장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여행객들이 걷기를 대신해서 즐기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 옛길박물관에서 문경새재 옛길에 대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것까지 살펴도 좋을 듯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는 세트장까지 오가는 전동차를 잠깐이지만 타 보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기쁨이 될 것 같았고. 오픈세트장은 최근 사극을 촬영하기도 해서 어쩌면 드라마에서 보았던 눈에 익은 길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맑은 물이 넓은 바위에 잔잔히 흐르는 계곡
▲ 용추계곡 맑은 물이 넓은 바위에 잔잔히 흐르는 계곡
ⓒ 장순심

관련사진보기

점심을 먹고 문경새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용추계곡으로 향했다. 여러 곳에 같은 이름의 용추계곡이 있지만, 내게는 단연 문경의 용추계곡이 최고였다. 용추에서 계곡을 옆에 끼고 오솔길을 따라 1.2km 구간, 20분가량 오르면 월영대가 나왔다. 휘영청 밝은 달이 뜨는 밤, 바위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에 달빛이 아름답게 드리운다는 곳. 과연 바위도 널찍했고, 넓은 바위 위로 옅게 흐르는 계곡물이 달빛이 흐르는 밤에는 더 일품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을 끼고 걷는 길에 다람쥐도 만나고 가족들이 놀러 와서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크고 넓은 바위와 그것들을 끼고 흐르는 계곡물은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 딱 좋아 보였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올여름의 더위를 이길 만큼 충분히 즐겼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태그:#문경새재, #용추계곡, #주흘관, #조곡관, #오픈세트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