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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을 배경으로 18일(현지시간) 촬영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의 표지.
 미국 백악관을 배경으로 18일(현지시간) 촬영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의 표지.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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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서 여러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해 준다.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요구한 것은 "미군이 주둔하는 동맹국은 미군 소요비용에 50%를 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Cost plus 50)"는 트럼프 생각에 따른 것이었음을 확인해준다. 또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도 확인해준다. 그런데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가장 주목할 지점은 다음 볼턴의 진술이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한국(또 일본, 그보다는 덜하지만, 유럽의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괴롭힌 한 가지 문제는 주둔국이 미군기지 비용의 어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사실상 미국은 어디에나 기지가 있었고, 주둔국은 일정 비용을 지불했으나 그 지불 금액과 지불 방식은 다양했고, 실제의 (미군주둔)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실재하는 (미국과 주둔국간) 합의는 없었다"라고 주장하면서 "미 국방부의 창의적인 회계 기법(Defense Department's creative accounting techniques)에 따라, 거의 어떤 '(미군주둔)비용(cost)'수치건, 그것이 높든 낮든 정당화될 수 있었다"라고 썼다(회고록 336쪽 발췌).

여기서 '실제의 (미군주둔)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실재하는 합의는 없었다'에서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주한미군 경비가 얼마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을 산정하는 기준'(한국이 주한미군 주둔경비 중 어떤 범위와 한도에서 분담할 것인가를 정한 기준)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의 경비(예산) 그 자체는 미 국방부가 편성해서 미 의회의 의결로 결정되는 것으로 미국이 한국과 협상해서 정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볼턴 말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기는 한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을 산정하는 기준에 대한 한미간 합의가 없다. 미국은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으므로 아무리 많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도 그것은 정당하다'고 말하는 셈이다. 

오만한 사고다. 이런 볼턴 주장은 단순히 볼턴 개인 생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11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협상에 임하는 미국 대표의 시각이기도 하다. 이에 볼턴이 이런 오만한 주장을 펴는 이유와 그 불법부당성, 나아가 방위비 분담 폐지 필요성을 살펴본다.

방위비 분담금 산정 기준에 대한 한미 합의가 없다고? 볼턴 주장은 '거짓'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을 냈다. 사진은 2018년 5월 17일(현지시간) 당시 볼턴 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모습.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을 냈다. 사진은 2018년 5월 17일(현지시간) 당시 볼턴 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는 모습.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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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미군주둔) 비용이 얼마인지에 대한 실재하는 합의는 없었다"라는 볼턴의 주장은, 한미가 1991년 방위비 분담 시작단계에서부터 방위비 분담금 산정의 기준에 대해 합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방위비 분담은 1991년 처음 시작된다. 그해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는 "한국 정부가 1995년도까지 주한미군 현지발생비용(Won-based Costs)의 1/3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증액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2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1993년 11월 체결) 제3조는 '원화지출경비'에 대해 "미군 현역 및 군속에 대한 급여와 기타 인건비를 제외한 주한미군 유지를 위한 현지발생경비로 정의"했다. 방위비 분담이란 한국이 '주한미군의 원화지출경비' 중에서 그 일부를 분담하는 것이지,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의·산정하는 주한미군 경비에 대해서 분담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가 1994년 펴낸 <주한미군을 위한 한국 정부의 방위비 분담> 책자를 보면 미국은 1991년 주한미군의 총주둔비는 26.2억 달러로, 미군 및 군속인건비는 17.8억 달러로, 원화지출경비는 8.4억 달러로 각각 산정하고 있다. 이 경우 원화지출경비 8.4억 달러가 방위비 분담금 액수를 정하기 위해 한미가 협상하는 대상이 되는 부분(영역)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국이 원화지출경비를 다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 일부만을 부담하게 돼 있다. 1991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1.5억 달러(1073억 원)였다. 

만약 미국이 원화지출경비가 아닌, 가령 미군 가족동반비용(이는 미군 인건비에 포함)이나 미 전략자산 전개비용(미 전략자산은 주한미군 장비가 아님), 호르무즈해협·남중국해에서의 미군작전비용 등 부담을 한국에 요구한다면 이는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에 위배된다.

2차 특별협정 이후 몇 차례 더 협정이 체결되면서 원화지출경비는 주한미군 고용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와 군사 건설비, 군수지원비 세 항목으로 세분화됐다. 한국과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총액에 대한 협상을 벌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군 및 군속 인건비를 제외한 현지 발생경비 범위 내 협상이며 총액이 합의되면 이는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와 군사 건설비, 군수지원비로 나눠 배정된다.

미국이 말하는 '창의적 회계기법'의 정체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대표. 사진은 2019년 11월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취재진 질문 받는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 대표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대표. 사진은 2019년 11월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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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왜 볼턴은 마치 방위비 분담금 산정 기준에 대한 한미간 합의 자체가 없는 듯이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미군 및 군속 인건비를 제외한 주한미군의 현지발생비용이라는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상의 주한미군 경비 (분담) 개념에 구속돼서는 방위비 분담금의 더 이상의 대폭 인상이 어렵고, 나아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 수행 비용도 한국에 부담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11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협상에 임해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새 시각과 계산법'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과 계산법이란, 다음에 살펴보는 것처럼 사실은 볼턴이 말한 '미 국방부의 창의적 회계기법'과 같은 말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제임스 드하트(James Dehart) 미국 방위비 분담 협상 대표는 2019년 11월 7일 당시 국방위 민주당 간사인 민홍철 의원과 한 면담에서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시각과 계산법, 그리고 창의적인 해법'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서 "미군은 호르무즈해협부터 말라카해협까지 광범위한 활동을 하는데 그것이 다 한국의 이익에 부합된다"(UPI, 2019년 11월 21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드하트 대표는 "역외 미군 활동비, 한반도 주변의 전략자산 전개비, 사드(THAAD) 등 미사일방어망,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 한국군이 보유하지 못한 미국의 정보‧감시‧정찰자산 등을 지칭함) 제공 비용, 미군 가족들 수반 비용 등을 거론"(UPI 위 기사)하며 한국에 47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한다.

드하트가 전한 '새 시각'이란 호르무즈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의 미군 작전(역외 미군작전), 미 전략자산 전개, 보완전력, 미사일방어망, 주한미군의 가족동반 등이 다 한국의 이익이 된다는 시각이다. '새 계산법'이란 앞에서 거론된 역외작전이나 전략자산 전개, 보완전력, 미사일방어망 등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계산에 넣자는 것을 뜻한다. 결국 새로운 계산법은 주한미군 유지를 위한 현지발생비용에 속하지 않는 미군 및 군속 인건비까지를 포함해서 총 주둔비용을 다 뽑아내겠다는 것이자, 역외 작전비용까지를 추가로 한국에 부담 지우려는 것이다.

'창의적 해법'이란 뭘까. 이는 방위비 분담의 새로운 구성항목으로 '준비태세'를 신설해 현행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상으로 불법인(한국의 분담 대상이 되지 않는) 각종 경비(미 전략자산전개, 미군 한국순환배치, 미사일방어망, 남중국해 등 역외작전, 미 군속 및 가족지원 등)를 여기에다 몽땅 다 넣자는 것을 말한다.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의 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창의적 해법인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계산법(창의적 회계기법), 창의적 해법은 다 원화지출경비라는 한미가 합의한 기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및 한미소파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한국 입장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또 새 시각과 새 계산법, 창의적 해법은 그것이 한국에 의해 받아들여질 경우 방위비 분담금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국민 입장에서도 결코 허용될 수 없다.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측면에서도 새 시각과 창의적 회계기법, 창의적 해법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의 미군 작전은 한국방어에 기여한다는 미국 말과 달리 미국 세계패권전략, 미국 대중국견제전략의 일환으로 한국 방어와 무관하다. 마찬가지로 미 전략자산 전개나 보완전력, 미사일방어망도 그 목적이 대중국 견제이거나 대북 선제공격전략 수행을 위한 것이지 한국 방어가 목적이 아니다.

미국의 끝없는 탐욕·횡포... 한국은 '방위비 분담 폐지'로 맞서야   
 
청와대는 1일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과 관련해 협상상황에 진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계속 협상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1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2020.4.1
▲ 한미 방위비 협상 속 캠프 험프리스 청와대는 1일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과 관련해 협상상황에 진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계속 협상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1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2020.4.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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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원래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에 지불해야 할 의무가 없다. 한미소파 제5조는 주한미군의 모든 유지비는 미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을 1991년 시작한 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위협하며 한국을 압박한 데 따른 결과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3~4배에 달하는 직간접적인 주한미군 경비 지원(토지임대료, 카투사, 평택미군기지이전 등 2015년 기준 5.5조 원)을 하고 있다. 법적인 측면이나 한국의 실제적 부담 측면에서 봐도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이 미국에 베푸는 은전이고 특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주한미군의 총주둔비(2019년 35억 달러)를 몽땅 한국에 부담시키고 나아가서는 세계패권전략 수행비용까지 한국에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원화지출경비(미군 및 군속 인건비를 제외한 주한미군 유지를 위한 현지발생경비) 범위 안에서 주한미군 경비를 한국이 분담한다는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규정'도 미국은 무시한 채, 원화지출경비와 무관한 각종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계산에 포함시키고 이를 버젓이 '창의적 회계기법'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오만함과 뻔뻔함을 볼턴 회고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볼턴 회고록은 트럼프가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한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는 사실도 확인해준다. 이는 방위비 분담이 주한미군 안정적 주둔 여건을 보장하기 위한 것(2018 국방백서)이라는 한국 정부 당국의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또 북한 미사일 발사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이는 돈을 달라고 할 적기"라고 트럼프가 말했다는 볼턴의 진술은,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한반도에서 의도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볼턴 회고록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주한미군 고용 한국인 노동자 4000여 명을 '무급 휴직'시키는 사상 초유의 횡포와 불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방위비 분담은 평등한 한미관계 수립에도,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와 안정 등에도 도움이 안 되며 주권을 침해하고 귀중한 국민세금을 낭비할 뿐이다. 이제 한국정부는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에 전전긍긍하면서 미국 요구를 완화하기 위해 미국무기 구입 약속,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한국군 파병 요구 수용,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에 대한 미국의 책임 면제와 같은 자충수를 둘 때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진행되는 방위비 분담 협상을 과감히 중단하고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자체를 끝내야 한다. 그럴 때야 비로소 미국은 한국 주권을 존중하고, 평등한 한미관계 수립과 자주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바라는 한국의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이다.

태그:#방위비분담금, #볼턴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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