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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교리수업.
 마지막 교리수업.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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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1일 오후 2시 34분]

나눔과 연대의 원리


세례는 이미 받았지만 교리서의 4개 장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2주 동안 보충수업을 하기로 했지요. 어제(7월 19일)가 그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란 단편소설의 제목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아주 오래 전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나 봅니다. 소설 속 마지막 수업은 자못 엄숙하고 비장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우리는, 우리 부활반 학생들은 아니었습니다. 늘 그렇듯 다들 무덤덤했습니다. 그냥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마지막 수업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있는 지를 성찰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교리서엔 모든 형태의 차별 금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 존중을 통한 사회 정의 실현, 공동선 실현에 이바지하는 정치공동체 지향, 그 모든 것에 기반 한 인류 평화에 기여 등 저 같은 범인(凡人)에겐 조금 거창하고 무거워 뵈는 말씀들이 가득했습니다.

교리 선생님도 비슷한 생각이셨는지 주제의 폭을 대폭 줄여 '우리의 이웃'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나눔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선 당신이 직접 겪으신 일이라면서 '그건 있는 자, 풍요한 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 부족한 사람들이 더 적극적'이라 하셨습니다. 행상 할머니께서 어렵사리 모은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류의 소식이 계속 이어지는 걸로 봐선 맞는 말씀 같았습니다. 숨어서 할진 몰라도 부자들이 그런 선행을 베풀었다는 이야긴 별로 없는 게 사실이지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슬쩍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저도 몇 번 그런 나눔을 한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정말 진심이었는지,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랬는지, 혹시 연말정산 혜택 따위를 기대하고 그러진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마지막 같은 탐심이 1도 없다고는 할 수 없더군요. 나도 누군가를 돕는다, 우쭐함마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정말 제가 싫었습니다. 전 그냥 시늉만 한 거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천사들

곧이어 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우리 교리반엔 미국에서 막 돌아오신 분이 두 분이 계셨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미국에서 막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겨울이었어요. 우린 겨울옷이 하나도 없었지요. 식구들 겨울옷이며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홈쇼핑으로 샀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주문을 해대니 택배 아저씨들이 얼마나 고생하셨겠어요. 정말 고마우면서도 죄송하기가 짝이 없었어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몇 시쯤 아저씨가 오신다고 하면 택배함에 음료수나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놓아두곤 했습니다."

그 택배 아저씬 또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특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린 그분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정말 사투나 다름없지요. 그분들도 인간인데 전염병이 피해 가겠어요? 그런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오직 택배만을 목 놓아 기다리는 우리를 위해 과감하게 길을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대접 받을만 하시죠.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또 다른 분께선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얼핏 유아교육기관의 원장님이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부모님들께 '사회적 부모'의 개념을 강조해 말씀드립니다. 그저 내 자식, 내 아이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아이가 놀고 있을 땐 부모가 된 입장에서 그 놀이터의 모든 아이들을 보살피는 식이죠. 부모들이 너무 내 것만 챙기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니까요."

아, 요즘도 저런 분이 계시구나, 싶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까지 제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그게 아이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양하는 철없는 부모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칸가? 그런 속담이 있다죠.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그분이 말씀하신 사회적 부모와 같은 맥락인 거죠. 이 세상 부모라면 새겨들을만한, 응당 그래야 할 참 멋진 말씀이었습니다.

재난지원금에 대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오셨다는 또 다른 한 분이었습니다.

"저는 정부가 왜 이런 돈을 주는지 참 의아했어요. 미국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저와 생각과 처지가 비슷한 친구가 먼저 제게 말해줬어요. 도저히 자기를 위해 쓸 수 없을 것 같다고요. 우리 부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당장 우리가 어려운 형편도 아니고 일을 해서 번 돈도 아니니까 누군가를 위해 쓰인다면 서로 좋은 일 아닐까 했습니다."

오, 이런. 나올 게 나온 거였습니다. 제대로 한방 먹었습니다. 저는 그게 입금됐다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이게 웬 떡이냐며 며칠 사이에 탕진해 버렸거든요.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흥청망청. 그런데 저보다 한참 어리신 젊은 부부는 기부를 했는지 아닌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지만 저리 신중하고 사려 깊게 생각하셨다는 겁니다. 물론 저는 그들이 기부하셨다고 믿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이야기해야 할 차례가 됐지만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선교의 참 의미는?

우린 지난 10개월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긴 교리수업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우린 서로를 잘 모릅니다. 사적인 얘기는 한 적이 없으니까요. 밥도 딱 한 번 함께 먹었는데 그때도 몇몇만 참석했었습니다. 단톡방은 있지만 쓸데없는 말씀들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만 괜히 철딱서니 없이 이러니저러니 떠들곤 했지요. 그런데 어제 하시는 말씀들 들어보니 모든 분들이 한결 같이 정말 속이 깊고 진중하며 아름다운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 앞에서 나대면 안 되는 참 경박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모든 분들이 하신 말씀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세상에 저런 분들만 산다면? 저렇게 선한 분들만 산다면 어떨까 말이지요. 시기, 질투, 증오, 악행, 범죄, 갈등, 분열, 전쟁. 그런 단어들이 아예 사전에서 사라지겠지요. 아 참, 법도 없어질 겁니다.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대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위하며, 아끼고 배려하며, 사랑하고 희생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그건 전 인류의 꿈 아닐까요. 아,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야 세상 무슨 걱정 있겠어요. 생각이 그에 미치자 저는 무릎을 탁 치며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끝까지 남아있던 단 한 가지 의문이 풀렸습니다.

미사가 끝날 즈음엔 신부님은 늘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파합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제 우리가 함께 읽은 교리서의 마지막에도 "그리스도인은 문화의 복음에 힘써야 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물론 많은 분들이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저는 외람되게도 '종교가 그렇게 좋으면 스스로 찾아올 텐데 왜 굳이 믿으라고 권하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길거리나 지하철 안 같은 곳에서 강권하듯, 협박하듯 선교하시는 분들의 영향이 컸지요.

아, 근데 그게 그거였어요. 선교는 종교 자체보다 주님의 좋은 말씀, 엄격한 약속, 사랑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라는, 그래서 마치 우리 교리반 학생들처럼 선량하고 진실 되며 누구보다 착한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라는 명령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종교의 세를 불리고, 힘을 얻자는 그런 세속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거지요. 아마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일 테죠. 석가모니님, 마호메트님, 공자님 모두 우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선한 세상을 만들자는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니까요.

물론 이건 초보 신자의 주제 넘는 객기일 수도 있습니다. 신부님들께 혼날지도 모를 일이지요. 하지만 언젠가 교리라는 것은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이 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라도 마지막 의문을 마지막 교리수업에서 풀었으니 정답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너무 개운합니다. 이 모두 우리 부활반 선생님 이하 모든 동기분들 덕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태그:#마지막 수업, #선교, #나눔, #재난지원금, #착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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