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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 오랜 친구에 대한 노골적인 뒷담화다. 이로 인해 그와의 소중한 인연이 끝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착잡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에 대해 험담하는 건 못돼먹은 습관임을 모르지 않지만, 도저히 가슴속에 담아두기 힘들어 그에게 무례를 범하려 한다.
 
확고한 기준

   
 나는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이라면 어김없이 따라 읽었고, 토론이라도 벌어질라치면 늘 그의 편에 섰다.
 나는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이라면 어김없이 따라 읽었고, 토론이라도 벌어질라치면 늘 그의 편에 섰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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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그와 통화를 했다. 광주 전남 지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뉴스에 안부를 묻는 전화였다. 집안의 대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의 생일까지 챙겨주는 참 자상하고 고마운 친구다. 친구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그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삶의 귀감이 되는 나의 스승이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만났으니, 그와의 인연이 자그마치 30년이다. 같은 동아리에 한날한시에 가입한 뒤, 둘 다 동아리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평소 빈민을 위한 연대 활동을 하고, 여름방학 때는 농번기를 맞은 농촌으로 보름간 봉사활동을 떠나는 등 나름 보람찬 대학 생활을 보냈다.

무엇보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워킹 딕셔너리(Walking Dictionary)'라고 불릴 만큼 모르는 게 없었다. 당시 박학다식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쓰였는데, 요즘 말로 치면 '잡학사전'쯤 되겠다. 문학과 역사, 음악과 미술, 심지어 스포츠 분야까지, 그와의 대화는 늘 그의 전공이 대체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마무리될 정도였다.

선배들조차 그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며, 술자리에서 대화가 막힐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를 쳐다보기 일쑤다. 그런 그가 부러웠고 마냥 닮고 싶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이라면 어김없이 따라 읽었고, 토론이라도 벌어질라치면 늘 그의 편에 섰다. 물론, 그때마다 그의 일목요연한 논리에 탄복하며 무릎을 쳤다.

맨 처음 그를 따라 읽은 책이 박세길 선생이 쓴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라는 교양서였다. 동아리방 벽에 게시된 필독서 중의 하나였는데, 당시만 해도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선후배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는 게 대학가의 보편적인 문화였다. 그는 한 달 분량의 책을 미리 반복해 읽을 만큼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출간된 지 30년도 더 지난 최근 개정판이 출간되기도 했는데, 다사다난했던 현대사의 흐름 속에 우리나라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목은 역사책인데, 내용은 통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해야 맞겠다. 이 책을 읽고 그와 토론하며 동아리방에서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 지금도 대학 시절 첫손에 꼽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는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를 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책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그는 이내 '투철한 운동권'이 됐다.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걸 목도했으면서도, 그는 철저히 '반자본주의적 삶'을 살았다. 콜라나 커피는 아예 마시지 않았고, 다국적 자본의 브랜드 상품은 쓰지도 입지도 않았다.

이듬해 독일 철학을 공부하는 학술 동아리까지 따로 가입하면서, 그만의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성채를 굳건히 쌓아갔다. 이후로도 동아리방에서 매일 만나다시피 했지만, 이물 없는 사이라 편하다가 조금 껄끄럽기도 했고, 그의 식견이 부럽다가도 한편으론 부담스럽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30개월 군 생활을 마치고도 그의 수도승 같은 삶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가방 속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 마오쩌둥의 <모순론>과 <실천론> 따위의 책이 들어 있었다. 과거 소련의 해체와 함께 붕괴되었던 공산주의는 '가짜'일 뿐, '진짜' 공산주의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그는 대학 시절 내내 품고 살았다.

사라진 신념
   
용산, 강남 개발호재 지역 주택거래 66건 자금출처 정밀조사 국토교통부는 서울 용산 정비창 정비 사업과 강남 잠실 MICE 개발 사업 인근 지역에 대한 부동산 실거래 기획조사를 벌인 결과 의심거래 66건을 추출해 정밀 조사에 착수한다고 15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지난 15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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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소신도 하릴없는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던 걸까. 선후배들에게조차 '혁명가'로 불리던 그가, 결혼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나브로 변해갔다.

마흔 살 즈음 미국계 회사로 이직한 뒤로는 미국 출장을 밥 먹듯 다니면서, '진짜' 공산주의의 도래를 확신하던 그의 신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불콰한 얼굴로,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며 베벌리힐스를 꿈꾸는 삶이 자신의 로망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 월스트리트와 베벌리힐스가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그의 '변절'을 나무라진 않았다. 흔히 '20대에 공산주의에 심취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여전히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다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는 말을 위안 삼으며 서로 씁쓸한 미소를 나눴을 뿐이다. 당혹스럽긴 해도, 그의 '시크한' 자본주의적 삶을 존중하고, 여전히 좋은 친구로서 아주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런 그와 전화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대판 싸운 거다. 그의 '변절'조차 다른 이들 앞에서 끝까지 두둔했던 나였는데,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화근은 부동산 문제였다. 그는 은근슬쩍 전세 끼고 은행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가 채 1년도 안 돼 2억 5천만 원이나 올랐다면서 한턱내야겠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중산층이다.

그냥 부럽다고 맞장구쳐주면 될 일이었는데, 그와의 대학 시절이 순간 떠올라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며 토를 달고 말았다. 사실 그가 쓴 방법은 범법 행위는 아닐지라도, 이른바 '갭투자'라 부르는 명백한 투기다. 부동산을 사고팔아 올리는 수익이 어차피 '제로섬(Zero Sum) 게임이라는 걸, 누구보다 영민한 그가 몰랐을 리 없다.

정부가 지난 6월 17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갭투자 비중은 1월 48.4%에서 5월 52.4%로 늘었다. 특히 강남은 1월 57.5%에서 5월 72.7%로, 15%p 이상 증가했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노려, 실제 거주할 목적이 아닌 아파트를 사고팔며 이익을 보는 건 불로소득일 뿐만 아니라, 대다수 돈 없고 집 없는 사람들의 꿈을 짓밟고 권리를 침해하는 파렴치한 짓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앞장서서 부르짖던 그가 부동산 투기의 대열에 나섰다는 게 참담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달뜬 목소리가 내내 어색하고 민망했다.

그리운 과거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르는 집값과 정작 규제로 인해 서민 실수요자도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됐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앞으로 추가적인 종합 부동산 대책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3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 상가 모습. 2020.7.3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오르는 집값과 정작 규제로 인해 서민 실수요자도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됐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앞으로 추가적인 종합 부동산 대책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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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 '노사모'였고, 문재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다. 부동산 투기 근절에 모든 정책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현 정부의 고충을 모르지 않을 텐데, 명색이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그가 오히려 정부의 정책을 비웃듯 투기의 대열에 나선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치인을 지지한다는 건, 그의 공약에 공감하며 공약 실천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뜻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정책 목표에 맞게 제도를 실효성 있게 설계해야 하는 책임은 정부와 정치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목돈을 쥐게 되었다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낯설고도 안타까웠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로 부자 된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는 그의 호탕한 웃음에 더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둘러 전화를 끊으며, 순간 로또는커녕 주식 한 번 사본 적 없는 내 삶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대학 시절 '자본주의자'로 살던 나와, '공산주의자'를 자임하던 그는, 나이가 50줄로 접어든 지금, 사뭇 상반된 삶을 살고 있다. 난 '진짜' 공산주의는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젊은 시절 그의 사자후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는 부 축적의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는 출중한 투자자가 되었다. 각자의 인생을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해박한 정치경제학 이론으로 무장한 '혁명가'였던 그의 대학 시절 모습이 오늘 유난히 그립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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