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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故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한 시민이 운구차량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2020.7.13/뉴스1
 1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故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한 시민이 운구차량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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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저녁, 엄마의 생일 촛불을 켠다며 한바탕 야단법석을 부리고, 자리를 정리하던 참이었다. 영상통화로 함께 축하하던 남편이 불쑥 서울시장 박원순이 실종되었다고 했다. 그는 거물급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 참여를 하는 등, 한국사회의 시민운동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왔다. 그런 그에게 나도 호감을 느껴왔다. 가족들이 돌아가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인터넷 창을 열었다.

각 언론사는 실종 중인 박 시장의 신병을 추측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그가 추구해온 많은 가치들을 조용히 지지해왔던 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이유가 거론됐다. 기묘한 실종이었다. 부디 해프닝으로 끝나길, 그가 돌아와 진실 앞에 서길 바라며 착찹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황망함과 동시에 극심한 혼돈에 휩싸였다.

애정했던 정치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처음 겪은 것은 아니었다. 새파랗던 청춘 시절, 나 같은 소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희망을 주었던 첫 대통령도 황망하게 세상을 등졌다. 노회찬 의원의 서거 소식이 들렸을 때도 한참 속이 좋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자꾸만 사라지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지금은 또 달랐다. 박원순 시장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무거운 숙제를 남겨둔 채 죽음을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비겁하다'는 이야기가, 또 한쪽에서는 '지나친 책임감 때문'이라는 주장이 들려왔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감정이 치솟았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배신감과 인간적인 안타까움 사이를 조울증처럼 오갔다. 매주 하던 그림책 이야기도 쓸 마음이 사라졌다. 사건을 둘러싸고 인터넷 세상이 양분됐다. 양측은 서로를 향해 날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리에게 남은 숙제

불거진 의혹에 대한 법적인 사실관계를 알 방법은 사라졌다. 공소권이 없어져 제대로 된 수사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나올 피해자의 발표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살아서 피해자를 대면해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졌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가족까지 버린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책임을 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이 피해자가 원한 방식이 아니었다는 깊은 아쉬움과 사회적 숙제를 남겼지만...

사람 위에 군림하며 초심을 잃어버린 남성중심적 권력을 생각한다.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에게 깊은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급작스러운 사태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녀의 입장을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남성적 권력 질서 속에서 여성이란 너무도 취약하고 작은 존재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언론에 따르면 경찰에 고소장이 접수되고 청와대에 보고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 이후 어떤 경로로 피고소인(박원순 시장)이 고소 사실을 알게 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지도 꼭 밝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쏟아지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느꼈다. 겉으로는 피해자를 위하는 척하면서도 내심 '좋으니까 참았겠지. 왜 지금에 와서야?', '큰일 하는 남자는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지'라는 식의 사고를 드러내는 이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그가 성희롱이라는 용어도 생소한 시절에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 변호를 맡아 주목받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시장이 된 후에도 성평등을 강조하며 여러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번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여겨져야 한다.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모습이 남긴 충격 때문에 하루 종일 우울감에 빠졌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가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스무 살 무렵 만난 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일본이 외면한 역사적 윤리 의식 등을 다뤘다.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장편 소설 쓰기와 같이 자신의 무언가를 쏟아 넣는 작업을 오랜 시간 하다 보면, 그것이 우리 자신을 갉아먹고 파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소모되지 않도록 꾸준하게 달리고 일정 시간에 글을 쓴다고 했다. 책 속의 '나'는 세상의 끝에서 매일 태엽을 감는다. 하루키의 이같은 생각을 소설적으로 표현한 설정이 아닌가 짐작한다.

자신의 내면과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나름의 방식으로 유지할 때, 나를 지키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일그러진 영웅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태엽을 감는 일을 놓쳐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도 사회비평가도 아닌 일개 소시민인 내가 박원순 시장의 죽음 앞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어떤 괴리감에 관한 것이다. 일말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속죄하기 위해 가장 무거운 책임감의 표현으로 죽음을 택한 것인지, 평생을 쌓아온 거대한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스스로 문제를 직면하고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기를 바랐으나, 그는 모호한 유언 한 장을 남긴 채 떠나버렸다.

그는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과거 그를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선택에 깊은 아쉬움을 느낀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그가 받아야 할 비난까지 다 떠안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피해자를 생각한다. 많은 것이 불확실성에 가려 있어 속단하기 어렵지만, 두 가지는 분명하다. 아직 대한민국에선 권력자에 대항해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설사 용기를 내더라도 피해자의 작은 바람조차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미래에 대해 회의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가 자신의 태엽을 감으며,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박원순 시장은 떠났지만 그가 한국 사회에 던지고 간 숙제를 찬찬히 풀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https://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태그:#박원순, #2차가해에대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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