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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통장·이장·반장(아래 통리반장) 등에게 신문을 나눠주던 일명 '계도지'가 현재는 주민홍보지 등의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 경남에서 전국 최초로 구정홍보용신문구독예산, 일명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한 이후 전국에서 계도지 폐지 열풍이 불었지만 아직 서울 25개 자치구별로 계도지 예산이 집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는 1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은평구청은 서울에서도 가장 많은 계도지 예산, 6억 2382만원을 올해 책정했다. 

이에 <은평시민신문>은 계도지 예산을 개혁한 지역을 찾아 계도지 폐지의 필요성과 관언유착, 예산낭비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한다. 

기획취재 세 번째 방문지는 대전·충남지역이다. 충남에서는 2002년 부여군과 공주군을 마지막으로 충남 15개 시군 모두 계도지 예산이 폐지됐으며, 대전에서는 2008년 12월 서구의회에서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시키며 계도지 폐지의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계도지 폐지운동에 앞장섰던 우희창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과 이기동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대전충남민언련) 대표를 만나 과거 상황을 들어보고 지역 언론의 발전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기자 말

[관련기사]


서울 25개 자치구, 신문 뿌리는 데만 100억원 '훌쩍' http://omn.kr/1ny8z
"지역신문 아니면 지역문제 얘기할 곳 없어" http://omn.kr/1ny90
"슬그머니 살아난 '계도지'... 관언유착 뿌리 뽑아야" http://omn.kr/1o4rr
"관언유착 끊자"... '신문개혁 버스투어'를 아시나요? http://omn.kr/1o4ud

"지억 연론 개혁의 핵심은 제도 뒷받침"
 
현재 충남대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우희창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 2001년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계도지 폐지운동을 이끌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현재 충남대학교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우희창 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부위원장 . 2001년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계도지 폐지운동을 이끌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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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충남에서 계도지 폐지운동이 시작된 건 언제인지?
우희창 부위원장(이하 우 부위원장) : "2001년부터다. 대전충남민언련이 2000년에 출발했는데 그때부터 계도지를 개혁대상으로 봤다. 당시 언론에 기자실 문제, 촌지 문제, 계도지 문제 등이 있었는데, 그 중 계도지 문제가 제일 시급한 과제였다. 전국적으로 계도지는 철폐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고 전국적으로 민언련이 연대활동을 했다. 2001년 10월 대전의 5개 구청, 충남의 15개 시군에 공문을 보내고 계도지 예산 관련 정보공개청구도 하면서 폐지운동을 벌였다."

이기동 대표(이하 이 대표) : "당시 대전충남민언련이 파악한 2000년 대전시내 5개 구청의 계도지 예산은 4억 2천만 원 규모였고 2000년 9월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보니 대전시와 충남도 등 광역자치단체는 이미 계도지가 폐지된 상황이었고 2001년에 확인한 바로는 충남 15개 시군 중 이미 13개 시군에서 계도지가 없었다. 민언련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2002년 부여군과 공주군을 마지막으로 충남 15개 시군 모두에서 계도지가 사라졌다."

- 이미 계도지가 폐지된 곳이 있었다니 놀랍다. 
우 부위원장 : "1990년대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예산이 많지 않았던 충남 시도에서 예산절감차원에서 없애고 괜찮은 지역신문이 있는 곳에서는 계도지 문제제기를 하면서 없앤 걸로 추측된다."

이 대표 : "주간 지역신문이나 지역 단체들이 언론개혁차원에서 계도지 폐지 요구를 했던 거 같다." 

- 대전의 계도지 폐지운동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우 부위원장 : "대전에서 계도지 폐지운동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정보공개 청구하고 성명서 발표했다. 의원들 면담도 지속됐다. 그러다 2008년 12월 대전 서구의회가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저소득층 지원예산으로 편성했다. "

이 대표 : "2000년 기준으로 보면 대전 서구청이 연간 2억 3천만 원 규모로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은 중구, 동구, 대덕구, 유성구 순이었다."

- 계도지는 왜 문제라고 봤는지?
우 부위원장 : "박정희 시절에 정부 시책을 국민들에게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당시 국가소유신문인 서울신문을 통리반장에게 나눠주던 게 바로 계도지다. 주민을 계도해 정부 시책에 호응하도록 정부가 돈으로 신문을 사서 나눠줬다. 그런데 이 시대에 무슨 계도를 하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수많은 미디어가 있는데 굳이 신문을 구입해서 통리반장 등에게 나눠줘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국민을 계도하겠다는 말 속에 담긴 건 '언론사와 관이 잘 지내보자', '비판하지 말고 좋은 얘기 써달라'는 거다. 2020년이 된 이 시점에도 여전히 계도지 문제가 있다는 게 놀랍다."

- 계도지 폐지에 대해 언론사의 항의는 없었나?
우 부위원장 : "그렇진 않았다. 계도지는 당위성이나 정당성을 얘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언론사들은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 여론화 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오로지 구청과 의회만 상대하겠다는 모습이었다. 반면 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은 계도지 폐지운동에 대해서는 은근 기대했다. 계도지 예산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뜻 나서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 : "2006년에는 충청투데이가, 2008년에는 중도일보가 계도지를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되면서 생긴 변화다."

우 부위원장 : "충청투데이와 중도일보가 계도지를 안 받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바로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기대했던 개혁효과구나 했다. 지역 언론 개혁이 시민운동만으로는 어렵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구나 깨달았다."

"여전한 권언유착... 신문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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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도지 폐지 이후 지역의 변화가 있었는지?
우 부위원장 : "일단 계도지를 없앴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예전엔 언론의 권력이 컸지만 지금은 지자체의 힘이 세다. 이에 반해 언론사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자꾸 자치단체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데, 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언론을 홍보수단 또는 나쁜 기사를 써주지 않는 수단으로 생각해서 여전히 홍보비, 광고비, 온갖 협찬 등 권언유착이 존재한다."

이 대표 : "충남은 계도지가 폐지됐지만 농업신문, 어업신문 등 특수지 형태로 구독하는 게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도 완전히 계도지가 없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예전에 홍보실, 공보실에서 편성하던 예산을 다 쪼개서 실과로 넘겨버리거나 예산항목을 바꿔서 이런 예산을 숨겨 놓는다. 이제는 단순히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알기 어렵다.

실국별로 신문 구독예산이 있다. 실제 지역주민이 구독하는 건 아닌데, 기관 등에서 구독해주고 그 예산이 유가부수로 잡히고 있다. 지역 언론이 지역주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저널리즘 기능을 하기보다는 돈이 나오는 관계만 보는 문제가 있다. 광고나 기사도 관공서 중심으로 나온다."

- 계도지 폐지 운동 과정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우 부위원장 : "대전충남민언련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기자들이 안 와서 기자없는 기자회견을 많이 했다. 이 문제에 관심 주지 않으려는 언론사들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도 마찬가지로 같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외에는 계도지 폐지 활동을 보도해주는 곳이 없었다."
 
대전충남민언련 이기동 대표 (사진 : 정민구 기자)
 대전충남민언련 이기동 대표 (사진 :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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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계도지라는 말 대신 주민홍보용 구독신문이라고 부른다. 
이 대표 : "과거에는 언론사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고 주민들도 미디어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권언유착이든 시민홍보 등 과거에 진행됐다 하더라도 지금의 미디어 환경과는 맞지 않다. 지금은 수용자나 독자 중심으로 본인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주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그걸 주민들 의사도 묻지 않고 지자체가 강제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는 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다. 

계도지는 신문사의 중요한 수익수단이 되는데 이건 결국 시장을 왜곡한다. 우리나라 언론 미디어 환경에서 시장 논리가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시장원리가 작용하지 않는 게 언론시장이다. 독자로부터 외면받고 선택받지 못하는 신뢰를 잃은 신문이 혈세로 유지되고 있다."

우 부위원장 : "구정을 홍보하려고 신문을 주민들에게 나눠준다는 건데, 그게 타당성을 가지려면 구정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미디어 소외계층에게 줘야 한다. 자치구는 구정소식지, 방송국, SNS 등 자신을 홍보할 수단이 많다. 지역신문은 구정을 홍보하기도 하지만 구정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걸 홍보수단으로만 좁혀 생각하니까 궁극적으로 계도지 대상 신문들은 자치구 홍보를 해야 한다. 신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돼 있다."

이 대표 : "사실 별 홍보효과도 없다."

"시민에게 도움되는 언론지원책 고민해야"

- 은평구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정보제공 차원에서 통·반장에게 신문을 줄 수 있다'는 문구를 근거로 6억 이상의 돈을 쓰고 있다. 
우 부위원장 : "통·반장들이 그 신문으로 얼마나 정보제공을 받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사업처럼 정보 접근이 어려운 이들에게 지원을 하면 그나마 타당성이 좀 있을 텐데 지금 통·반장들이 정보접근권이 없어서 정보제공을 받아야만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정보편의가 필요한 계층은 따로 있다. 통·반장이 아니라 정말로 정보접근이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이 대표 : "통반장들이 신문을 읽을까?"

우 부위원장 : "프랑스 사례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지역신문이 어려운 상황이라 지역신문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여론의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신문을 안 읽으면 민주주의가 죽는다고 보고 있더라. 그리고 미래세대가 신문을 읽어야 민주주의도 살고 신문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청년들이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구독지원을 하려면 이런 계층에 지원해야 한다."

- 지역신문 지원을 통해 옥석이 구분되고 시민에게 보급하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왜 보급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 부위원장 : "지역신문을 지원할 방안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신문은 시장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 프랑스는 영업이 어려워서 신문이 없어진다는데 우리는 왜 많을까? 과잉 상태다. 먹고 살 구석이 있으니 하는 것 아닌가? 그 중 하나가 계도지고 그게 신문을 망치고 있다.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신문은 살아남아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감시·견제·비판 기능을 충실히 해야 한다. 

자치단체 홍보를 해주는 신문을 구독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되는 걸 기억해야 한다. 비판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비판하고 견제하고 개선해나가면서 좋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을 홍보수단으로 여기는 건 사라져야 하고 언론의 역할을 하는 신문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대표 :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행정에서 쓰는 예산은 시민에게 가야 한다. 언론지원도 마찬가지다.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지원하는 게 아니라 언론지원이라 하더라도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 은평구의 계도지 예산이 6억이 넘는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 대표 : "대전시 5개 구 계도지 예산을 다 합치면 4억 대였는데 한 자치구 계도지 예산이 6억이라니 놀랍다. 지역에 기반한 마을 미디어나 지역 언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매년 투자한다고 하면 지역 내 미디어 환경이 바뀔 수 있고 사업 자체도 내실 있게 바꿀 수 있다. 

미디어는 공적책임을 갖고 있다. 사기업 영역이라 하더라도 공공성이나 사회적 책임과 책무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함께 가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디어 교육을 공동으로 진행해 지역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주민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 부위원장 :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계도지 논쟁은 끝났고 홍보비 등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여전히 계도지를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 후진성이 크다. 이미 유물로 사라져야 하는데 21세기 서울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된다. 

서울에서도 어느 한 자치구에서 계도지가 없어지기 시작하면 파급효과로 다른 곳도 없어질 거다. 은평구가 계도지가 가장 많고 은평시민신문에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시민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계도지를 은평에서부터 없애도록 은평의 주민들이 다 같이 연대해서 행정과 의회를 압박해야 한다."
 
대전·충남의 계도지 예산 삭감운동 소개 

2000년 당시 대전시 5개 구청별 계도지 예산은 4억2천여만 원 정도였다. 액수로는 대한매일이 2억4166만8천 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전일보가 7987만2천 원으로 다음을 차지했다. 특히 서구청이 대한매일에 1억8백만 원을 주고 1천 부를 구입하고 있어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시민단체들의 계도지 폐지 요구에도 2003년 기준 대덕구청 3.7%, 서구청 28.9% 예산을 삭감한 반면 동구청 13.5%, 중구청 30%, 유성구청 140% 인상 등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단체의 계도지 폐지운동에 언론사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지역정치권은 2002년 말 서구청과 대덕구청의 예산 삭감을 통해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서구 의회는 계도지 폐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벌였다. 예산 삭감과 부활을 반복하다 2008년 드디어 4116만원의 계도지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이를 저소득층 지원 예산으로 편성했다. 서구의회는 계도지 폐지 노력의 공로로 2009년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계도지 폐지운동은 2004년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2006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 대상사로 선정된 충청투데이와 2008년 선정된 중도일보가 계도지 수혜 거부를 선언하며 예산 폐지를 주장했다. 

- <대전·충남 언론 100년>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계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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