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 <소년시절의 너>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지난해 초 JTBC에서 방영된 금토 드라마 < SKY캐슬 >이 센세이셔널한 열풍을 몰고 온 것을 대중은 기억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상류층 가정의 대학 입시를 스릴러적인 요소와 접목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만약 < SKY캐슬 >을 시청하지 않았다면 대학 입시와 스릴러라는 장르가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업 스트레스, 또는 수능 결과에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우리 사회를 인지한다면, 스릴러와 엮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미디어 매체에서 조명해온 청소년의 모습은 대체로 한결같다. 꿈에 대한 열망이 있으나 현실에 가로막힌 양상, 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방황, 그 속에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 정도로 개성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청소년의 삶은 비극적이다. 학교 폭력의 수위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학업 강요의 세기 또한 상승할 따름이다. 청소년 범죄는 때마다 대중을 경악시키는데, 이는 인기를 얻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인간수업>이 우리에게 꽤나 그럴듯하게 수긍 되는 이유로 작용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국에서는 성년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청소년을 어찌 조명할까? 우리는 교복 입은 일본 학생의 풋풋하고도 가슴 한쪽이 쓰라려지는 멜로 영화와, 서양의 틴에이저 드라마 등에 꽤나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증국상 감독의 <소년시절의 너>는 가깝지만 제법 먼, 중국의 청소년을 조명하는 영화다.
 
입시에 성공하면 도대체 무엇이 바뀌기에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도입부, 첸니엔(주동우)은 서먹해보이는 급우와 우유 바구니를 들고 걷는다. 급우는 홀로 빨대 꽂힌 우유를 들이키고, 거듭 빨대를 씹는다. 그런 급우를 첸니엔은 예사롭지 않게 힐끔거린다. 마치 급우가 당장 몇 분 뒤 투신자살할 것을 아는 것처럼.

학교 폭력으로 인해 투신자살을 택한 첸니엔의 급우로 인해, 첸니엔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는 동시에 괴롭힘의 표적이 된다. 그런 첸니엔에겐 집 또한 온전한 안식처가 아니다. 첸니엔의 엄마는 가짜 마스크팩을 파는 사기꾼에, 빌린 돈을 갚지 않는 빚쟁이기도 했다. 첸니엔의 집 밖은 모친의 사기 행각을 알리는 전단지로 도배되어 있고, 학교에도 소문이 퍼져 괴롭힘은 더욱 심해지기만 한다.

그런 첸니엔에게 의지할 곳은 없다. 현재 의지할 곳이 없기에 미래에 의지한다. 밤마다 집 문을 두드려대며 엄마를 찾는 이웃들, 몹쓸 방식으로 괴롭히는 학우들 사이에서도 첸니엔은 그저 공부할 따름이다. 대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성공적으로 대입 시험을 치른 뒤 베이징 대학에 입학하면 학교 앞에서 엄마가 음식점을 하고 함께 오순도순 살 수 있지 않을까 꿈꿀 뿐이었다.

그런 첸니엔은 우연히 베이(이양천새)와 알게 된다. 베이는 첸니엔과 비슷한 또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고 불법적인 일을 하며 사는 소년이다. 첸니엔은 그런 베이에게 대입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부탁할 뿐, 어떤 물질적 보상도 약속할 수 없다는 첸니엔에게 베이는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진지할 것 없이, 소원이나 하나 들어달라고.
 
너는 공부만 해
 
학생이 흔히 학부모, 또는 선생으로부터 듣는 말은 "너는 공부만 하면 돼"가 아닐까. 부모는 학비를 부담하고 선생은 지식을 내미니, 학생은 그저 공부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 폭력 피해자는 결코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 동시에 가난하다면 더욱 그럴 수 없다. 천니엔은 영화 속에서 어른이 흔히 요구하는 학생의 본분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에 속해있다.

대입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 천니엔에게 가해지는 학교 폭력이 극에 다다른다. 마침 천니엔을 호위하던 베이가 강간 용의자로 의심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받던 참이었다. 뒤늦게 돌아온 베이는 머리카락이 잘리고 교복이 찢긴 채 조각난 교재를 테이프로 붙이고 있는 천니엔을 보고 분노한다. 베이는 천니엔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주고, 본인 머리 또한 짧게 깎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한편 폭력 행위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경찰도, 베이도 아닌 CCTV였다. 천니엔을 괴롭히던 무리의 우두머리가 CCTV에 모든 것이 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사과해온 것이다. 동영상과 사진을 지우고, 금전적인 보상 또한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천니엔은 그저 계단을 오른다. 혹시 모르니 되도록 같은 학교엔 진학하지 말자는 주동자의 말, 본인은 베이징 대학을 지망한다는 주동자의 말과 혹시 같은 학교에 간다면 다 잊고 잘 지내자는 말 따위를 듣던 천니엔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누가 절 도와주는데요?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소년시절의 너> 스틸컷 ⓒ (주)영화특별시SMC

 
영화는 그때부터 급속히 장르적 변화를 도모한다. 대입 시험 당일 폭우가 도시를 감싸고, 무너진 토사에서 천니엔을 괴롭혔던 주동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천니엔을 의심하는데, 청소년들의 삶을 묵묵히 조명하던 영화는 이 순간을 기점으로 보다 내밀한 질문을 건넨다. 

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출산율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이 고조 되고 있다. 출산율이 줄어드는 까닭은 소득의 문제도 있겠지만, 현대 사회가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을 만한 곳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년시절의 너>에서 묘사된 학교 폭력의 양상, 입시 위주의 교육은 소름 끼칠 정도로 한국을 닮았다. 우리는 모든 청소년에게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변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리하여 좋은 대학에 입학할 청소년들도, 그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기뻐할 어른들도 이 세상 무엇 하나도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을 것이다.

꿈을 가지고 청소년기에 노력하는 학생은 이제 TV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희소해졌고, 그런 TV에 나오는 학생을 본받을 것을 자녀에게 권유하는 어른도 특별한 꿈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이 일반적인 사회. 어른은 학생에게 그저 공부할 것을 바라고, 그렇기에 학교 폭력을 당하면서도 끝내 공부할 수밖에 없는 천니엔 같은 인물이 탄생하는 것 아닐까.

그런 천니엔을 지킬 수 있을 만한 인물은 사실 경찰도 아니고 선생도 아니고, 급우 또한 아닌 학교조차 제대로 못 다닌 '우리 사회 바깥'의 존재가 아닐는지. 바깥이 아닌 '우리 사회 속'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이제 남아 있기는 한 건지, <소년시절의 너>는 환기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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