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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갤러리' 재개관한  'K1' 1관 전시장 한쪽은 큰 유리창문으로 돼있다. 그래서 수시로 달라 보이는 주변 풍경도 즐길 수 있다.
 "국제갤러리" 재개관한 "K1" 1관 전시장 한쪽은 큰 유리창문으로 돼있다. 그래서 수시로 달라 보이는 주변 풍경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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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경 개인전이 7월 31일까지 국제갤러리 재개관한 'K1'에서 열린다. 2005년, 2016년 이어 3번째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설립 38주년을 맞아, 30여 년 된 삼청동 'K1' 메인전시장을 2년 보수한 후, 지난 6월 18일 재개관했다. 2018년에는 부산점도 열었다.

최 작가의 작품 감상에 전에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공부했는지 궁금해진다. 그녀는 큰 출판업을 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지원 아래 10살 때부터 운보 '김기창 부부'로부터 미술 지도를 받았다. 이화여중 다닐 때 미술반에서 '김흥수, 장운상'에게 사사했고, 1956년 서울예고에 입학해, '문학진, 정창섭, 김창열' 선생에게서 배웠다.

1959년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입학했고,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 그리고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총 12년 간 체류했다. 각 과마다 평균 8명 정도 만 입학이 허용되는 슈퍼 명문인 미시간 '크랜브룩(Cranbrook)' 미술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했고, 다른 미대도 다녔다. '프랭크 피어스(F. Pierce)' 미대에서는 조교수도 했다.
 
 국제갤러리 '최욱경' 작가 소개 '아카이브' 프로필 사진 중 하나
 국제갤러리 "최욱경" 작가 소개 "아카이브" 프로필 사진 중 하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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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귀국해 덕성여대 등에서 가르쳤다. 전시론 1972년 도쿄 '한국현대작가'전, 1981년 '상파울루비엔날레', 1982-85년 '브루클린미술관' 한국작가전에 참여했다. 1985년에 작고 후 1987년과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갤러리'에서, 1996년 '갤러리현대'와 2013년 '가나아트'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다.

최욱경을 생각하면, 31살에 요절한 전혜린이 떠오른다. 그녀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 유명하다. 그녀보다 6년 후 태어난 최욱경도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그림에만 몰두하다 45세 심장마비로 세상을 홀연히 떠났다. 두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격정적 삶과 정신적 자유를 희구했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낭만파 예술가이기도 했다.

전혜린은 부친의 반대에도 한국을 탈출하듯 '뮌헨대'에 유학했다. 반면 최욱경의 경우는 미국 유학을 떠날 때 집안에서 지지와 함께 많은 도움을 주었다. 둘 다 뭔가 저항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하여간 시대를 앞선 선각자였다.
 
 최욱경 I '성난 여인' 1966년. 60년대 격변기 서구사회 일면이 느껴진다.
 최욱경 I "성난 여인" 1966년. 60년대 격변기 서구사회 일면이 느껴진다.
ⓒ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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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의 1관 전시장 작품 설명에 들어가기 전, 참고로 2016년 2번째 최욱경 국제갤러리 전에 소개된 '성난 여성(La femme fâchée)'을 보자. 작품명이 무제인 경우가 많은데 여긴 제목이 있다. 그녀는 가끔 프랑스어 제목붙이기를 즐겼다. 54년 전 작품인데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 파격적이다. 당시 경도된 여성의 위상에 화가 난 작가의 심경을 그린 것 같다.

국제갤러리 K1, 1관 전시

그럼 다시 1관으로 돌아가자. 새로 단장한 벽면에는 리듬감 넘치는 그녀 추상화는 대담하고 유쾌하다. 색채는 강렬하고 선은 자유분방하다. 전체 분위기가 환희와 축제로 넘치는 반면 그 내면에 분노와 격정도 깔려 있다. 삶과 죽음의 정서가 뒤섞여있다고 할까. 색감이 밝으면서 어둡다. 붓 터치가 대담하고 활기차다. 노란색, 검은색은 차별화된 고품격이다.
 
 최욱경 I '무제(Untitled)' 종이에 아크릴 오일 파스텔 콜라주, 25×32.5cm 1960년대
 최욱경 I "무제(Untitled)" 종이에 아크릴 오일 파스텔 콜라주, 25×32.5cm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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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미국에 체류한 최욱경의 서양미술에 대한 이해는 그 기간만큼이나 깊어 보인다. 그녀의 그림이 더 풍성한 건 문학에 대한 애호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낯설은 얼굴들처럼>이라는 영문시집도 냈고, 1972년 국내에서도 출판되었다. 이 시는 캐나다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인적도 끊어진 도보엔 달빛만이 하얗고
나 홀로 여기 이렇게 유배되어
흐르는 피를 두 손을 모으고"

 

그녀는 한 순간도 화가 이외의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렇게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 사조를 국내에 소개된 화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당시 유행한 자기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추상표현주의' 심취했으나, 어느 순간인가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허무감을 맛봤다.
 
 최욱경 I '무제' 핸드보드 위에 아크릴 물감 1960년대. 후기에는 여기에 한국적 요소를 더 한다
 최욱경 I "무제" 핸드보드 위에 아크릴 물감 1960년대. 후기에는 여기에 한국적 요소를 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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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계점과 좌절감을 극복하고자 자기만의 한국적 추상화를 추구하게 된다. 표현도 자유스럽지만 그것이 추상이라고 해도 미국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결국 그녀가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본 한국의 풍경을 축출한 추상화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한지와 단청이나 민화적 모티프 등 한국적 시각언어와 재료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가 중요했다 그래서 당시 사조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워홀 풍 '콜라주', 라우센버그 풍 '컴바인페인팅(Combine Painting)'에 한국의 서예, 묵화 등 뒤섞었다. 일종의 동서의 기법과 요소를 고급화한 '혼종미술(hybrid art)'이라 해도 좋으리라. 형태와 공간에 관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시각세계를 발굴하려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제갤러리 이사인 '윤혜정' 디렉터
 이번 전시를 기획한 국제갤러리 이사인 "윤혜정"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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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을 기획한 '윤혜정' 디렉터는 "그녀는 시와 일치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2021년 풍피두센터에서 열리는 세계여성작가 특별전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윤 디렉터는 그녀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천생 화가'라고 한 매체의 글에서도 기술했다. 또한 그녀는 '무무당(無無堂)'라는 이름을 붙인 작업실 벽에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 외치며 자신을 끊임없이 부추겼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그녀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순수함'과 시대인으로서의 '분노감'을 고루 갖춘 보기 드문 작가라고 평가했다.

최 작가 본인은 자신의 작품의 창작 동기에 대해 아래와 같이 토로했다.
 
"여자이자 화가로서의 내 경험은 내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다. 각각 작품은 내 삶의 성장이고, 내 감정을 시각 언어로 풀어놓은 것이다. 내 작품이 내 삶에 대한 것이기는 하나, 이를 통해 단지 이야기만 들려주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온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내 작품을 보는 이들이 이런 경험을 같이 소통하며, 공감하기를 바란다."
 

국제갤러리 K1, 2관 전시

사실 그녀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알려주는 작품은 2관에 있다. 여기서는 그녀가 '잉크, 목탄, 콩테'를 이용한 그린 드로잉과 판화를 볼 수 있다. 보다 솔직하고 열정적인 면모가 눈에 들어온다. 1관의 회화와 2관의 판화를 비교해 보면 그녀의 작품 세계가 더 잘 들어온다.
 
 최욱경 I '무제(Untitled)' '드로잉(종이에 잉크)'과 '판화(캔버스에 아크릴)', 재료: 잉크, 목탄, 콩테. 60년대와 70년대
 최욱경 I "무제(Untitled)" "드로잉(종이에 잉크)"과 "판화(캔버스에 아크릴)", 재료: 잉크, 목탄, 콩테. 60년대와 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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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판화에 대해 영국 <프리즈(Frieze)> 미술잡지의 '해리 쇼언(H. Thorne)' 기자의 기사를 보면, 그녀가 피를 흘리며 붕대를 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군인을 묘사했다며 그녀가 (베트남) 반전메시지를 담은 판화를 그렸다는 설명이 나온다. 당시 유럽 '68혁명'과 동시기에 미국 '비트세대' 등이 일으킨 '반전평화운동' 등에 그녀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그녀의 판화가 80년대 한국 광주에서 촉발된 한국의 '민중미술과'와도 그 연관성도 탐색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페인 천재화가 '고야'가 연상된다.

그의 잉크드로잉이나 판화는 이렇게 현실 참여적 요소가 많다. 그렇다고 그녀의 추상표현주의 경향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동양서예를 연상시키는 미국작가 '프란츠 클라인(F. Kline)'의 화풍과도 완연히 다르다. 오히려 도발적 에로티시즘 경향을 보이면서 인간의 내밀한 본질과 실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속도감 넘치는 터치감으로 묘사했다.

재개관한 'K1', 카페와 레스토랑 등
 
 국제갤러리 재개관한 K1 '더 레스토랑' 내부 모습
 국제갤러리 재개관한 K1 "더 레스토랑"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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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미술을 소개하는데 선두주자 역할을 20년간 해 왔다. 올해로 설립 38주년이 되었다. 이현숙 회장이 1982년 서울 인사동에서 설립했고, 1987년 'K1'을 신축해 이전했다. 그 이후에도 2007년 'K2', 2012년 'K3' 전시장을 추가했다.

재개관한 국제갤러리 K1은 열린 공감개념을 도입해 전시구조와 인테리어를 바꿨다. 1층·2층·3층·지하1층에 가구 및 조명 등 인테리어 디자인은 '양태오 대표(Teo Yang Studio)'가 맡았다. 그는 "갤러리 고유한 모던함과 비움의 미학에 포커스를 맞췄다"라는 설명이다.

1층 카페는 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 벽화 작업이 시각적 즐거움을 높였다. 김영나 국제갤러리 전(2016년) '유명한 무명'을 재소환한 셈이다. 2층 '더 레스토랑'에는 양혜규 입방체 블라인드 연작도 설치했다. 벽면에는 런던 디자이너 그룹 'OKRM'과 협업했다. 3층 고객과 아카데미 회원을 위한 공간으로 '웰니스 K(Wellbeing+Fitness)' 운영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홈 페이지 https://www.kukj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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