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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 2인 1조 입수... 다이버가 버려야 할 가장 나쁜 습관]

장범준의 노래 중에 '여수 밤바다'라는 곡이 있다. 가사는 이러하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망망대해의 바다. 튜브 하나에 목숨을 의지한 채 문득 이 노래를 떠올렸다. 포항 앞바다, 이 조류에 담긴 무시무시한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냐고. 나 좀 구해달라고. 나는 지금 포항 앞바다!! 뭣 모르고 뛰어든 포항 앞바다. 두 번째 교육을 받는 날, 나는 무작정 바다에 던져졌다.

나는 지금 포항 앞바다라구!
 
하얗게 질린 나를 위해 강사 한 분이 전담으로 따라 붙었다. 저 곳은 수심 20m의 실제 포항 앞 바다이다.
▲ 포항 앞 바다 실제 상황 하얗게 질린 나를 위해 강사 한 분이 전담으로 따라 붙었다. 저 곳은 수심 20m의 실제 포항 앞 바다이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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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풀장에서의 교육은 핀차기 훈련까지였다. 강사님이 "다음 교육 일정은 포항 앞바다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라고 하셨다. 바다라.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강사님께 초보자도 참석 가능한지 물었다. 이제 겨우 하루 교육을 마친 햇병아리의 타오르는 과욕이었다. "해외에서는 첫날 교육부터 바다에서 진행합니다." 강사님의 대수롭지 않다는 답변이 불에 기름을 얹고 말았다.

그날따라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흥분과 기대에 두려움이 약간 섞인 마음으로 바다를 향했다. 포항시 구룡포읍에 있는 '장길리 복합낚시공원'이 목적지였다. 이글루를 닮은 해상펜션과 오리배가 눈에 띄는 낚시 테마공원이다. 바다낚시뿐 아니라 사설 풀장을 갖춘 다이빙 리조트들이 여럿 모여 있는 곳이다. 한쪽에서는 다이빙용 수트를 입은 이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다이빙 전의 스트레칭은 매우 중요하다. 물속에서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둘째날 교육전 몸풀기 다이빙 전의 스트레칭은 매우 중요하다. 물속에서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일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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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풀장에서 기본 교육을 받고, 오후에 바다로 나가는 일정이었다. 풀장에서 프리다이빙의 마지막 교육인 덕 다이빙 교육을 받았다. 덕 다이빙이란, 오리가 물속의 먹이를 잡기 위해 수면에서 수직으로 하강하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면 위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오리처럼 잽싸게 수면 아래로 향하는 기술이다. 프리다이빙에서 덕 다이빙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바로 '부력' 때문이다.

수트를 입은 상태로는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일정 깊이 이상 가라앉지 않는다. 더구나 바닷물은 자체의 염분 때문에 풀장보다 부력이 강하다. 수영하는 자세로 물속으로 내려가다 보면 부력의 저항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직으로 입수하는 덕 다이빙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부력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직으로 입수하는 다이빙 기술
▲ 덕 다이빙 부력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직으로 입수하는 다이빙 기술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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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시도 끝에 요령이 생겼다. 수직으로 잠수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앞구르기를 하는 자세로 일단 머리를 최대한 물속에 처박는 것이다. 마침내 절도 있는 자세는 아니지만 미운 오리 새끼처럼 흉내 내는 수준에 도달했다. 동물의 세계는 냉정하다. 덕 다이빙 몇 번 성공 하자마자 어미 새는 둥지에서 새끼를 밀었다.

바다로 나가 다이빙을 한다기에, 몇 해 전 필리핀의 세부에서 스노클링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를 타고 일정 수심까지 나가서 구명조끼를 입고 뛰어내린다. 배에서 안전요원들이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금 하다가 힘들면 잠시 배에 올라와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구명조끼보다 더 잘 뜨는 수트를 입었으니 이건 뭐, 땅 짚고 헤엄치기지. 나만의 착각이었다.

교육생이 총 여덟 명이라서 두 팀으로 나누어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약간 의심을 했어야만 했다. 작은 보트에 올라타는 첫 팀의 뒷모습을 보고 줄행랑을 쳤어야 했다. 첫 팀을 싣고 사라졌던 보트가 5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인생에 기회는 수없이 오지만, 그것을 잡는 것은 현자의 몫이다. 선장이 내민 손을 잡고 보트에 올랐다.

"앞서간 사람들은요?"
"다이빙 교육 중이지요."


어리석은 질문에 돌아온 답은, 바다에 그들을 버리고 왔다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살 떨리는 엄포였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5분 후, 보트는 바다 한가운데 나를 버리고 사라졌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으나, 조류가 약간 있는 날이었다. 부유물로 인해 바닷속 시야는 5m가 채 안 된다고 했다. 물안경 너머의 수중은 흐리고 탁했으며, 수심이 깊은 곳은 어두컴컴했다. 다이빙이고 뭐고 부이(프리다이빙용 튜브)의 손잡이를 굳건히 잡은 채 그저 둥둥 떠 있었다. 함께 간 교육생들은 해병대 출신인지, 아니면 전생에 물개였는지, 강사님의 지도하에 수심 10m 구간을 왕복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이 안에 있구나

프리다이버의 생명줄이라는 랜야드(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부이의 로프에 연결하는 줄)를 연결했으나, 손잡이를 쥔 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다른 교육생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고, 전형적인 민폐다.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바닷속으로 향했다. 짠 기운이 입술을 통해 온몸에 번졌다. 목표 수심 5m를 향해 돌진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는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조류가 있는 날은 떠밀려오는 각종 부유물로 인해 시야가 흐리다. 시야가 흐리면 두려움도 커진다.
▲ 시야가 흐린 바닷속 조류가 있는 날은 떠밀려오는 각종 부유물로 인해 시야가 흐리다. 시야가 흐리면 두려움도 커진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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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하고 바다 위에서 한시간을 보낼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악물고 다이빙 훈련을 한 결과 5m깊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 수심 5m까지 내려가는 모습 아무것도 안하고 바다 위에서 한시간을 보낼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악물고 다이빙 훈련을 한 결과 5m깊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 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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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조류에 밀려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보통은 부이에서 내린 추와 연결된 로프를 붙잡고 내려가는데, 부이도, 추도, 나도, 조류의 움직임에 제각각 따로 노는 형국이었다. 2m도 채 내려가지 못하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호흡을 고르는 동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이 안에 있구나! 머리가 맑아지며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정신력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생존에 대한 본능은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낸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발현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나의 발견이었다. 세 번째 다이빙에서 나는 풀장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5m 깊이에 도달했다. 귀의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 생각뿐이었다. 배가 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우리를 데리러 오는 보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구해주세요!"

시야가 흐린 심해를 가느다란 줄에 의지한 채 떠다니는 것은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의 상태. 눈앞은 온통 초록의 뿌연 바다. 양수 속의 태아처럼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 안에서 내게 자라난 것은 다이빙을 위한 물갈퀴가 아닌, 용기와 자신감이었다. 이제 바다에 빠져도 죽지는 않겠구나.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젓기 위해 다음 교육 장소인 울릉도 앞바다에 몸을 던져보기로 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태그:#프리다이빙, #포항, #장길리복합낚시공원, #덕 다이빙,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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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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