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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의 문제로서 제주4.3사건은 2000년 시행된 제주4.3사건법이라는 독자적인 경로를 걸어왔다. 그러나 제주4.3사건법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정의의 원칙이나 피해자의 권리에서 보자면 심각하게 미진한 것이었다. 그 후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4.3평화공원과 평화재단은 제주도민에 대한 집단적 상징적 보상조치로 받아들여졌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정리를 100대 집권공약으로 제시하였고, 당선 이후 2018년 문대통령은 4.3행사에 참석하여 국가책임에 대해 운을 떼었고 2020년 4.3행사의 추념사에서는 희생자 유족에 대한 배보상을 힘주어 약속하였다.

대통령의 확언에 따르면 당정청이 합당한 방침을 정립하기만 한다면 제주4.3사건이 조속히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유족에 대한 보상기준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해법으로도 활용되리라고 예상된다.

잘 알다시피 제주4.3사건은 미군정에서 한국정부로 통치권이 이양되는 국면에서 발생한 원형적 국가폭력이다. 제주4.3사건은 친일세력을 이용한 군정당국의 억압정책과 단독정부의 수립에 대한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저항의 귀결이었다. 과거 공식적 역사는 1948년 4월 3일 좌익의 봉기만을 대서특필하고 4.3사건을 공산폭동이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는 이와 같이 단순하고 일방적인 규정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마그마가 끓어올라야 화산이 분출하는 법. 군정과 경찰은 1947년 3.1절 행사에 참가한 도민들을 향해 발포하여 6명을 사망케 하였다(3.1사건). 군정당국은 사태의 진정을 위해 책임자를 처벌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항의하는 도민을 검거작전으로 몰아치고 세 건의 고문치사사건을 야기함으로써 도민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군정당국의 억압에 대해 총파업으로 시작된 제주도민의 항의는 해를 넘겨 지속되었고 제주도 남로당 청년당원들은 1948년 4월 3일 단독정부,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봉기를 결행하였다. 양측이 무기를 내려놓을 계기들이 없지 않았으나 사태는 점차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48년 10월 이후부터 1949년 여름까지 군경의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수 만 명의 민간인이 집단적으로 희생되었다. 제주4.3위원회와 제주4.3평화재단의 공식집계에 의하면 신고된 희생자가 1만 5000명에 육박한다. 신고하지 못한 희생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중에서 수형자(受刑者)라는 특이한 유형이 존재한다. 한국전쟁에서 군대가 약식재판으로 사람을 자의적으로 처형한 사례는 부지기수였으나 제주4.3사건 군사재판은 그 황당함에 있어서는 급수를 달리 한다.

제주도에서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에 두 차례 설치된 군법회의가 대규모재판을 단행하였다. 군사재판은 380여 명의 민간인에게 사형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1년형에서 무기형까지 징역형을 부과하였다. 징역형을 살던 다수는 한국전쟁 중 무차별적으로 처형되었고 전쟁 전에 석방된 사람들은 예비검속으로 처형당하였다.

1945년 이후 연합국들이 절차적 권리(변호인입회, 변론, 방어권)를 무시하고 졸속적인 재판으로 전쟁포로나 민간인을 처형했다는 사유로 일본군 법무장교와 독일 공직자들을 전쟁범죄로 처벌하던 때에 한국군대는 야만적 사법살인으로 폭주하였다. 오늘날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은 비국제적인 무력충돌에 대한 규정에서 이와 같은 약식처형을 전쟁범죄(국제관습법)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4.3군사재판의 이러한 실상은 제주4.3위원회의 활동초기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군사재판은 법적인 절차를 전적으로 무시하였고 판결서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수형인명부만이 남아 있어서 어떤 사태의 흔적을 겨우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1963년 김춘배씨 잔형집행 사건(김춘배씨는 1948년 12월 13일 내란죄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중 풀려나 숨어 지내다가 1961년 체포되어 다시 나머지 형기를 정하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에서 증인으로 나온 송요찬(제주4.3사건 당시 제주지역 계엄사령관)은 당시에 '군사재판은 없었다'고 이미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군사재판의 실상이 참작되어 2007년 제주4․3사건법 개정과정에서 군사재판의 피해자들이 수형자라는 이름으로 희생자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수형자의 명예가 이 정도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이 판결 자체를 입법적으로 극복하려는 방안이 2017년 제주4.3사건법 개정안(20대 국회)으로 가시화되었고, 21대 국회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개정안이 곧 발의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과거의 확정판결을 다투는 방식은 재심이다. 재판 자체가 범죄(고문, 증거조작, 위증)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증명되거나 재판의 결론을 바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에 과거의 유죄판결은 파기된다.

그런데 제주4.3군사재판이 재심을 청구해야할 유효한 판결로 성립하는지(존재하는지)가 우선 문제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입법을 통해 군사재판 전체를 무효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입법을 통한 판결의 무효화에 대해서는 3권 분립 원칙에 기대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가 법조물신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의심을 갖게 된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유독 강조하는 시대에 한국 사법사 최악의 스캔들을 정상적인 판결로 취급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입법으로 판결을 무효화하는 방식을 대다수 법률가들은 충격적으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실상을 알면 입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제주4.3군사재판의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 18인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서 제주4.3사건에 대한 재판이 새로이 진행되었다. 2019년 새로운 재판부는 제주4.3군사재판에서 적법한 조사절차나 공소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고, 공소제기가 없는 사건에 대하여 마땅히 '공소기각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의 공소기각의 결정은 판결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포하므로 군법회의 판결의 "부존재 확인"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족들이 제주4.3사건법 개정안에 반영한 군법회의 판결의 "무효 확인"은 부존재 확인보다 온건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재판의 실상으로 직진한다면 제주4.3군사재판은 유효한 재판이 아니라 사법적으로 분식된 자의적 처형 또는 군사적 처분에 불과하다.

국제적으로도 집단적인 사법살인이나 자의적 처형을 가하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자들처럼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대체로 거추장스러운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강제로 실종시키거나 은밀하게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권력자들은 법절차와 형식을 남용하여 학살을 자행하는 특이한 법애호증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법애호증이란 법원칙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미구에 닥칠 책임과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법형식에 의존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나라한 야만 이외에 법의 얼굴을 한 야만이 한국현대사에서 법조문화로 자리 잡았다. 3권분립론에 입각하여 입법적 무효화방안에 반론을 펴는 분들은 제주4.3군사재판이 적나라한 학살의 눈속임이자 이러한 법애호증의 파생물이라는 점을 외면하는 것이다.

법률적 야만으로서 사법적 살해나 박해는 20세기에 전체주의적인 독일이나 일본, 권위주의적인 한국에서 특히 번성하였다. 실제로 재판의 무효화 관행은 전쟁법(국제인도법)에서 기원하며 연합국이 독일을 청산하는 데에 집중적으로 활용하였다. 2차세계대전후에 연합국은 나치불법판결청산법(Unrechtsurteilsaufhebungsgesetz)을 제정하여 나치독일의 허다한 정치 재판과 사법살인을 무효화하였다.

나아가 독일정부는 입법을 통해 1998년 이후에도 59개의 악법이나 법조항에 입각한 형사법원의 유죄판결을 무효화하였고, 동시에 악명 높은 정치재판소(친위대 즉결처형재판소 및 인민재판소 등)의 판결 전체를 무효화하였다.

제주4.3군사재판은 앞서 말한 법절차의 위배라는 내재적인 약점뿐만 아니라 헌법적이고 구조적인 약점도 안고 있다.

첫째로 1948년 군사재판에서는 계엄선포의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가운데 계엄을 선포하고 군 당국이 계엄을 빌미로 군사재판을 감행하였다는 점, 둘째로 1949년 군사재판에서는 계엄령이 해제된 다음에 민간인에 대하여 군사재판을 계속하였다는 점, 셋째로 1949년 군사재판의 법적 기초가 된 국방경비법이 유효한 방식으로 공포되었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다투어지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1954년 헌법개정시점까지 군사재판 자체가 헌법상 근거를 갖지 못했고 또한 상고심으로서 대법원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제주4.3군사재판은 헌법적 불법에 해당한다.

따라서 제주4.3군사재판은 법치국가적인 의미에서의 재판이라기보다는 불법국가에서의 군사적 처분이라고 할 만하다.

2020년 현재 380여 명의 수형자들(대다수 사망한 희생자이다)과 유족이 추가적으로 재심을 청구하였다. 일각에서 이와 같이 개별적인 재심청구를 진행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2530명 수형자들의 유족 다수는 여전히 재심을 청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 경우 국가에 의한 일괄적인 시정조치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될 것이다. 제주4.3군사재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가 입법을 통해 판결의 불성립 또는 부존재에 준하는 의미에서 무효 확인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러한 무효화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동안에 법무부나 검찰이 긴급조치판결에 대한 직권재심청구처럼 제주4.3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직권으로 청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4.3군사재판은 군검사나 군판사의 개인적인 업무상 과오도 아니고, 국방부나 법무부, 법원의 이해관계사항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차원에서 자행된 초헌법적 국가범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3권 분립을 운위하면서 개별적인 재심만이 합당한 해법인양 강변하는 것은 초헌법적 국가범죄를 정상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초헌법적 범죄의 해결주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적임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이재승님은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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