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7월 6일 9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2월 21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지고돔에서 '60 Years in Music'의 곡을 지휘하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모습.

이탈리아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7월 6일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2월 21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지고돔에서 '60 Years in Music'의 곡을 지휘하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모습. ⓒ EPA-연합뉴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습니다. 항상 내 곁에 있는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친구에게 이를 알립니다."
 

타인의 명복을 비는 'R.I.P'(Rest in Peace)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써놓은 부고라니. 이 할아버지 음악가는 얼마나 섬세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걸까.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셀프 부고' 말이다.
 
6일(현지시간) 최근 낙상으로 인한 대퇴부 골절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다 사망한 엔니오 모리코네가 생전 직접 써둔 부고가 7일(현지시간) 공개됐다. "이런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 비공개 장례를 치르려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며 가족들과 아내에게 일일이 자신의 사랑을 전한 문장들이 엔니오 모리코네가 93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을지를 가늠케 해줬다고 할까.
 
특히 1956년에 결혼해 50년을 넘게 함께 한 아내 마리아 모리코네에게 남긴 "당신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사랑을 느꼈다", "이제 이를 단념할 수밖에 없어 정말 미안하다. 당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는 작별인사에는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먼저 떠나야하는 사람의 회한이 짙게 묻어 있었다.
 
그렇게, 엔니오 모리코네가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500여 편이 넘는 영화음악으로 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며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울리고 또 미소 짓게 했던 노장 음악가의 '셀프 부고'가 공개되던 날, 한 지인은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너무 아꼈다"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 지인이 추천해 준 'Ennio Morricone Conerto Arena 2002'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는 순간, 놀랍게도 잊고 지냈던 '시네마 천국'을 둘러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치 과거로부터 도착한 편지를 받은 듯이.  

마치 성인이 된 토토가 먼저 떠난 알프레도가 남겨준 '영화 속 키스' 장면 모음을 뒤늦게 확인하며 눈물짓던 <시네마천국> 속 마지막 장면처럼. 아마도 느닷없는 부고 소식에 이런 감상에 젖은 옛날 옛적 영화 키드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리라.
 
섬세한듯 다채롭게
 
 영화 <시네마천국> 스틸 컷

영화 <시네마천국> 스틸 컷 ⓒ (주)왓챠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태동한 영화광 세대에게, <시네마천국>은 하나의 성장통과도 같은 영화였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거부할 수 없는, 영화가 공인한 마약이었다. 그 시절 유행했던 FM 라디오의 영화음악 프로그램들은 딱 지겹지 않을 만큼 엔니오 모리코네의 '시네마 파라디소'의 메인 테마와 러브 테마를 틀어대곤 했다.
 
이 낭만적인 성장영화이자 반전영화이며 영화에 대한 영화는 지루하고 어려운 예술영화를 선호했던 영화광 세대에게 할리우드 영화같은 유럽영화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반면,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1990년대에 감수성을 바친 이들의 'BGM'이 되어줬다.
 
2007년 10월 그의 첫 내한공연 당시 영화 주간지 <씨네21>에 <영화음악의 지존, 한국에 온다>란 글을 기고한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업을 두고 "당신이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 작업한 영화들을 단 한편도 본 적 없다 해도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표현하며 이런 헌사를 바쳤다.
 
"더 놀라운 것은 (400~500편의) 다작이라고 해도 음악적 퀄리티가 떨어지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영화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드라마, 호러, 스릴러, 예술영화, 정치영화 등. 음악 장르와 색깔도 마찬가지다.
 
바로크나 현대음악에 이르는 클래식 계열 음악부터 록, 재즈, 블루스의 대중음악, 나아가 인간의 목소리와 동물의 울음소리까지 그는 영화음악의 사운드로 올려놓았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각인적 멜로디를 작곡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네마 천국>을 필두로, <석양의 무법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러브어페어> 등 그의 손에서 탄생한 무수한 장르의 영화음악들은 이렇게 아름다우면서 독보적인 선율과 향수어린 감수성이라 감히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네마 천국> 속 알프레도와 토토처럼 
  
 영화 <헤이트풀8> 스틸 컷

영화 <헤이트풀8> 스틸 컷 ⓒ (주)누리픽쳐스


흥미로운 점은 21세기 이후 쭉 '노장'으로 불려왔던 그의 영화음악 중 어떤 작품을 먼저 기억하느냐에 따라 세대가 갈리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런 물음이 가능하단 얘기.
 
'당신의 10대는, 청춘은 (모리코네의 영화적 동반자였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의 작업들 중) <석양의 무법자>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미션>이나 <시네마천국>이 떠오르십니까, 그도 아니면 엔니오 모리코네란 이름 자체가 생소한가요.'
 
<러브 어페어>가 딱 그런 경우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메인 테마가 친숙한 세대는 워렌 비티, 아네트 베닝 주연의 1994년 작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케리 그랜트와 데보라 카 주연의 동명 원작은 무려 1958년작이다. EBS 금요극장이 소개할 정도로 나름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맥 라이언, 톰 행크스 주연의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서 인용된 바로 그 흑백영화 말이다.
 
그 <석양의 무법자>를, <러브 어페어>를 보고 자란 한국의 영화키드들을 엔니오 모리코네가 최초로 조우한 것이 2007년이었다. 그해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부 매체들이 제기한 '의전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당시 <씨네21>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엔니오 모리코네는 자신의 창작의 비밀을 이렇게 설명했다. 평소 섬세함을 자랑한 거장다운 명대답이었다.
 
"나는 실제 소리와 음악적인 소리를 섞어 만드는 실험적인 작업을 좋아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노스탤지어를 표현하기 위해 휘파람, 종소리 등의 사운드를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코요테 등 동물 소리를 사용해보고 싶었고 결국 그것이 영화의 메인 테마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는 특별히 어딘가에서 영감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음악적인 아방가르드를 경험하면서 산출되는 또 하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노스탤지어와 아방가르드의 결합. 어쩌면 이 천재 영화음악가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조합을 끊임없이 실험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2010년대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 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미 80대라는 초로의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마저도 경외감으로 다가온다.
 
이제 엔니오 모리코네는 전 세계 영화인들과 영화 팬들의 영원한 알프레도로 남게 됐다. <시네마 천국> 속 중년이 된 토토는 알프레도가 떠난 후에야 생의, 영화의 진정한 감흥을 깨달았다는 듯 환희의 눈물을 흘린다.
 
영화 팬들의 '알프레도' 엔니오 모리코네는 떠났다. 영화 속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키스 모음 영상집을 남겼듯, 엔니오 모리코네 역시 세상의 토토들에게 영화를, 음반을, 음원을, 유튜브 속 영상을 남겼다. 그는 떠났지만, 세상의 토토들은 그 음악과 이후로도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것이다.
엔니오모리코네 시네마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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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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