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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청사 앞을 행진하는 독일연방군 독일 연방 의회 앞을 행진하는 독일연방군 장병들. 독일 의회는 언제든 불시에 부대를 방문해 병사들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권한을 가진 군사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의회 청사 앞을 행진하는 독일연방군.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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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의회에서 국방위원(Wehrbeauftragte)으로 활동하는 훼글(Eva Högl, 사민당)이 최근 독일군의 징병제를 부활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나서며 독일군 복무 제도에 관한 논쟁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독일군은 2011년부터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훼글의 제안에 대하여 야당인 좌파당과 녹색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극우정당인 대안당(Afd)은 적극적으로 반기고 나섰다.

그런데 국방장관인 크람프-카렌바우어(Annegret Kramp-karrenbauer, 기민당)이 새로운 지원복무제(Freiwilligendienst)를 도입할 계획을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가중될 모양이다. 이 지원복무제는 군대를 지원하는 이들에게 대학 입학 자격 보장, 연금 혜택 확대를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독일연방의회에서 여당의 외교와 국방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바데풀(Johann Wadephul, 기민당)은 국방장관의 계획에 찬성하며 훼글에 제안에 대하여 일단 환영하지만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던 과거의 징병제로 단순 회귀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징병제에 관한 논의는 진작 시작되었다. 그러나 다만 최근에 독일군 내부에 극우세력의 준동이 다시 발각되면서 군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징병제 부활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징병제의 부활과 독일군 내부의 극우세력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최근 독일 국방장관은 독일의 정예부대인 KSK의 4개 전투 중대 가운데 제2중대를 해체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약 70명으로 구성된 제2중대가 극우세력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KSK는 독일어 'Kommando Spezialkräfte'의 약자로 독일 최고 엘리트 군인이 모인 특공대로 4개 전투 중대를 포함하여 총 1400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특공대는 독일군의 지휘 체제에서 벗어나 별도로 활동할 정도로 특별한 부대이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특성으로 KSK 안에 극우세력이 자라나게 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독일 국방장관은 단순히 문제의 제2중대를 해체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특공대 조직을 전면 개편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문제는 극우세력과 그들의 인종차별주의는 특공대만이 아니라 독일군 전체에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징병제 논의도 이런 독일군 내부의 인종차별주의적 흐름을 막기 위한 고육책과도 연결되어 있다. 군대에 자원한 젊은이들의 이른바 '의식적 애국주의'가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다양한 성향의 젊은이들의 강제적인 군복무 제도를 통하여 이른바 좋은 의미의 이념적 다양성의 분위기를 마련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나 군대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조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외부 세력에 적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독일은 과거 역사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국내외적으로 요구되는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너무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의 국군 창설에 대하여 주변국의 많은 제재가 있었다. 그러다가 아데나워의 강력한 의지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창설된 독일군은 헌법에서 오로지 자국 영토의 방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독일군도 외국 파병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마침내 1995년 KSK가 창설되었다.

당초 KSK는 외국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독일 국민의 구조와 철수를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KSK는 분쟁지역의 정보 수집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물의 구조와 적대지역에서의 전투까지 그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합법적인 해외 파병 국가가 된 것이다.

1955년에 창설된 독일군의 병력은 현재 18만4223명(2020년 5월 31일 기준)이다. 이 가운데 현재 약 3600명 정도가 해외에 파병되어 있다. 2020년 기준 독일의 군사비는 452억 유로로 국민총생산의 1.16%에 불과하다. 그러나 독일은 2019년 기준으로 세계 4위의 무기 수출 국가이다. 그리고 국민도 8300만 명으로 유럽 최대의 국가이다. 언제든 독일은 최첨단 무기로 강력한 재무장이 가능한 것이다. 20세기의 양차 대전에서 유럽 대륙을 거의 초토화시켰던 독일군에 대한 나쁜 기억을 지닌 주변국들이 독일의 군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단일 민족국가의 군대로서의 독일군의 역사는 1871년 독일제국의 수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제국에 속한 프러시아의 군대인 독일군(Deutsches Heer)의 명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성립된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서는 제국군(Reichswehr)으로 바뀌었다가 1935년 나치 정권에서 다시 국방군(Wehrmacht)으로 바뀌었다. 이 당시 독일군은 최대 약 950만 명의 병력을 운영하였다. 이 병력으로 독일은 문자 그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몰락과 더불어 독일 제국도 무너졌다.

1948년 수립된 독인연방공화국(BRD) 국군의 정식 명칭은 연방군(Bundeswehr)이다. 이는 과거 독일 제국의 군과의 단절을 의미하기 위하여 고안한 명칭이다. 그리고 평시에는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다가 비상시에는 수상이 군통수권자가 된다. 군의 민간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독일군에는 과거 제국 시대의 상징들이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세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독일군으로 이루어진 튜턴 기사단(Ordo Theutonici)의 문장을 따른 독일군의 공식 문장인 검은 철십자(Schwarzes Eisernes Kreuz)이다. 이는 나치 시대의 제국군 때에 사용한 것과 거의 동일한 문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한 군 시설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나치 시대의 국방군에서 사용한 명칭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6개의 군부대는 여전히 나치 시대의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실 독일연방공화국의 1955년 연방군 창설 초기에 군 지도부는 대부분 나치 시대의 장교들이 장악하였다. 심지어 그 가운데에는 나치 친위대(SS) 출신도 있었다.

1960년대의 동서갈등이 한창이던 때에도 독일군은 나치의 국방군의 동유럽과 소련 공격 전략을 다시 꺼내들었다. 특히 아데나워 총리(Konrad Hermann Joseph Adenauer, 1876-1967, 기민당) 정권에서 국방장관직을 수행한 슈트라우쓰(Franz Josef Strauß, 1915-1988, 기사당)는 나치의 국방군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퍼뜨린 인물로 유명하였다. 심지어 1969년 일부 장성들은 독일연방의회의, 곧 민간의 군대에 대한 통솔권을 제한하려는 시도까지 하였다. 이러한 독일군 내부의 복고 분위기에 강력한 제동을 건 것이 슈미트 수상(Helmut Schmidt, 1918-2015, 사민당)이다.

1982년에 발표된 군대 '전통에 관한 규정'(Traditionserlass)에서 "나치의 제3제국과 같은 불법적인 정권은 군대의 전통이 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독일군 내부에서는 과거사 청산의 어려움을 계속 보여주었다. 1995년 독일육군의 공수부대에서 나치의 정신을 찬양하는 문서가 발견되어 커다란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바이어른 주에 주둔하고 있는 산악소총대대에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그대로 붙어 있는 군복이 전시되기도 하였다.

나치 정부가 국민 영웅으로 치켜 올려 선전선동에 최대한 활용했던 전투기 조종사 묄더(Werner Mölder, 1913-1941)에 대한 추모식은 2005년까지 문제없이 공식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독일 공군 제74 전투비행대대는 그의 이름을 부대명으로 사용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를 나치에 저항한 인물로 선전하는 역사 왜곡을 벌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을 볼 때 최근 독일군 내부에서 발견되는 극우세력의 인종차별주의 현상은 일부 몰지각한 군인들의 일탈로만 보기가 어렵다.

나치 시대와의 과거 단절을 선언하며 1949년 수립된 독일연방공화국은 1990년 통일 국가를 이루어 명실상부한 민족국가로 거듭났다. 그리고 나치의 만행에 대한 공동책임 의식으로 역사적 과거청산 운동을 모범적으로 해온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KSK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청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저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제도를 전환한다고 하여 독일군 내부의 극우세력, 더 나아가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은 이른바 '애국 세력'의 준동을 하루아침에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49년 이후 독일 현대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과거 청산은 국민들의 의식 개혁과 더불어 법과 제도를 통한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인다. 징병제도 독일 사회의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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