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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교육 출판사가 펴낸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빨간색 밑줄은 글쓴이가 표시했다.
 비상교육 출판사가 펴낸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빨간색 밑줄은 글쓴이가 표시했다.
ⓒ 비상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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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교육 출판사가 펴낸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2020년 3월 2쇄 발행)에 무분별한 시장 논리를 담은 경제 신문 기사가 그대로 실려 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가 친기업적이고 시장 논리에 과도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일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는 선을 넘었다. 비교육적인 것을 넘어 잔혹하기까지 하다.

부적절한 '한국경제' 기사 인용 

해당 내용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겼을 때 나타나는 문제를 시장 실패 현상의 한 사례인 공공재 부족과 공유 자원 남용 문제를 들면서 나왔다. 

교과서 본문 81쪽에 "공유 자원의 경우 소유권이 불분명하여 자원을 아껴 쓸 유인이 없기 때문에 자원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라는 내용과 그 아래 '더 알아볼까요?'라는 코너에 '공유 자원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코끼리 보호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케냐 정부는 동물 보호를 위해 코끼리 사냥을 전면 금지하고 가죽과 상아 거래를 불법화했다. (중략) 반면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던 짐바브웨 정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코끼리 사냥을 허용하되 코끼리를 사유 재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 결과 (중략) 주민들이 코끼리를 소중히 돌보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멸종 위기까지 갔던 코끼리 수가 크게 늘어나는 기적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코끼리 사냥을 금지한 케냐와 달리 짐바브웨 정부는 코끼리 사유화와 사냥을 허용해 코끼리 개체 수가 늘었다는 <한국경제> 신문의 2017년 11월 27일 기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코끼리를 개인들이 사고팔 수 있는 사유 재산으로 인정하고 돈을 받고 사냥을 허용하게 하면 코끼리 멸종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코끼리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하고 보호하려는 건 코끼리를 가축처럼 집에 가둬서 기르면서 몇 마리라도 살아 있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코끼리를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고 함부로 살해하거나 사고팔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코끼리 보호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교과서는 무분별한 시장 논리를 담은 신문 기사를 그대로 옮겨 놓고 아무런 추가 설명이나 질문도 넣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자료 위에 있는 본문에서 소유권이 없어 공유 자원 보호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 신문 기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장 실패'를 시장에 맡겨서 해결한다? 

더구나 이 신문 기사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전 대구대학교 전용덕 교수 아이디어와 주장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음 인용 글은 한국경제교육연구회가 2011년에 펴낸 <짜장면과 돌 반지에 담긴 스토리 시장경제>라는 책 속에 있는 '코끼리를 진짜 보호하는 방법'의 일부이다.

"짐바브웨는 케냐와 달리 먼저 코끼리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고, 코끼리의 개체 수가 증가하자 코끼리에 대한 재산권을 점차 확립했으며, 재산권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재산권 정책을 펼쳤다. … 코끼리의 사유화를 통해 공유의 비극을 피하고, 재산권 확립을 통해 코끼리의 가죽과 상아의 거래를 허용했으며, 그 결과 코끼리 사육 두수가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유 자원의 남용 문제는 정부 개입으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공동체에서 함께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전용덕씨는 시장에 맡겨서 문제가 된 것을 오히려 시장 논리를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공유 자원을 함부로 사용해 고갈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공유지의 비극' 현상이 주창자인 하딘의 주장과는 달리 반드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도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자원의 성격은 공동체 구성원 관계와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된다. 공유 자원을 경쟁적으로 사용해 비극을 만들기도 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이 협력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각자도생'과 '이윤추구 제일주의' 논리 이외에도 전용덕과 비상 교과서가 인용한 경제 신문 기사는 사실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짐바브웨는 멸종 위기 동물의 사냥을 허가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은 적이 많으며, 참혹한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실'이라는 사자를 사냥꾼이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코끼리만큼이나 사자도 밀렵꾼들이 노리는 멸종 위기 동물이다. 다음은 경향신문의 2015년 8월 11일 관련 기사 일부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 세기에 20만 마리에 이르렀던 아프리카 야생 사자 수가 사냥 때문에 이제는 3만 마리 정도로 줄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자 개체 수는 지난 30년 새 60%가 줄었다. 짐바브웨 정부에 위기종 동물의 사냥 허가를 아예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세실을 위한 정의' 온라인 캠페인에는 60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 
 
문제의 기사를 냈던 <한국경제> 신문도 2019년 10월 18일 '남아공, 사자 등 멸종위기종 '가축' 지정'이라는 기사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자, 치타, 코뿔소 등 멸종 위기종이 가축으로 분류된 것을 두고 동물 보호 단체들이 우려를 나타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제 교과서 바꿀 때 됐다 

야생 동물을 사유화하고 돈을 받고 사냥을 허용하면 멸종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교과서의 내용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허무맹랑한 '잔혹 동화'일 뿐이다.

교과서의 해당 부분에 대한 교육부의 '사회과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경쟁의 제한, 외부 효과, 공공재와 공유 자원, 정보의 비대칭성 등 시장 실패가 나타나는 요인을 파악한다"라고 돼 있다. 성취기준 해설에서는 "시장 실패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 개입, 정부 실패와 정부 실패에 대한 대책을 균형 있게 학습한다"라고 돼 있다.

비상교육 출판사의 '코끼리 사유화'를 통한 공유 자원 문제 해결 부분은 교육과정이 정하고 있는 균형 있는 서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부를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고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편향된 가치관을 담고 있는 자료이며, 매우 비교육적인 내용이다.

경제정보센터(KDI) 경제 교과서 검정 심사 과정이 있고, 교과서가 공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교과서 한 부분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지나칠 일은 아니다.

'각자도생'으로 표현된,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도록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시장의 폐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그 문제점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치우쳐 있는 대학 '경제학' 교과서 축약본 같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를 바꿀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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