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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1년 반값등록금 투쟁과 2020년 등록금 반환 요구

"반값등록금은 빈자들의 세금으로 부자들을 돕는 정책이다."

이것은 대학 반값등록금 투쟁이 한창이던 2011년 잡지 <신동아>에 실렸던 '반값등록금 투쟁보다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 먼저다'라는 칼럼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이다. 이 칼럼은 전반적인 대학개혁 없이 국가가 재정적 책임을 떠맡는 것은 대학에서 배제된 빈자들의 세금으로 학벌 있는 부자들을 돕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반값등록금을 외치던 대학생들은 이 지적을 철저히 외면했고 결국 2020년 한국사회는 '학벌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노골화된 곳이 되었다.

반값등록금 투쟁은 '등록금 동결'과 '국가장학금 제도'라는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등록금을 높일 수 없게 된 대학들은 학과를 통폐합하고 시간강사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반값등록금 투쟁 이후 '대학생 계층'이라는 대오는 해산되었고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것은 각자도생해야할 일이 되었다. 문제는 높은 등록금이라는 이슈가 서울소재 대학들에 더 심각한 것이었던 반면 구조조정은 지방대에서 더 심각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반값등록금 투쟁부터 '대학생의 목소리' 혹은 '청년의 목소리'라는 것은 서울소재 대학생들이 정세에 따라 지방대 학생, 대학 밖 청년들을 동원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2011년의 반값등록금과 2020년의 등록금 반환 국고지원을 요구했던 주장의 배경에는 대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재여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한국의 대학들이 지금도 여전히 학벌주의라는 반사회적이고 반공공적인 원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발상이었다. 등록금 반환 국고지원을 주장하기에 앞서 시민사회는 지금까지 막대한 공공재정이 대학에 투입되었음에도 대학체제는 단 한치도 변화하지 않은 지난 9년의 시간을 반성해야 했다.

7월 3일 국회에서는 등록금 환불을 국고로 간접 지원하는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그에 앞서 교육부에서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의 규제 완화를 통해 대학의 재정 여력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어째서 대학문제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될 대학개혁에 대한 논의 없이 돈부터 일단 내려 온 셈이다. 평소라면 균형재정론을 들고 나오거나 또는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에 절대 반대한다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법한 야당조차 등록금 환불 국고지원을 대체로 수용하는 분위기이다.

이제 드디어 사회적 약자인 대학생 계층을 지원해야 한다는 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사회진보의 한 걸음이 달성된 감격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대로라면 대학사회 내부에서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주체적으로 발전, 성숙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하게 퇴행하고 나아가 지금보다도 더 파편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대학이 이번 조치들을 이용해 어떠한 개혁이나 반성 없이 부당하게 취할 이득도 간과할 수 없다.

2. 대학은 정말로 돈이 없는가?

가장 먼저 이번 국고지원 결정의 배경이 된 대학의 재정여력 부족이라는 주장에 대해 검증해보려 한다. 나는 광주지역의 거점국립대학인 전남대와 대형사립대학인 조선대의 재정을 기준으로 추정치를 계산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대학에는 관점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재정여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개된 자료의 한계로 인해 부정확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대학에 돈이 없다는 말은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남대학교 2020 대학회계 세입·세출 예산서>, <조선대학교 2020학년도 교비회계 제 1회 추가경정자금예산> 기준으로 실험실습, 학생자치(축제), 대학행사 및 숙박 일정 등에 배정된 예산을 모두 삭감하면 전남대 약 50억원, 조선대 약 30억원이 환불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대학공시 기준 재학생 숫자는 학부와 대학원을 합쳐 전남대 약 2만 3천명, 조선대 약 2만명이었으므로 일괄적으로 나누면 전남대 약 20만원, 조선대 약 15만원의 등록금 환불이 가능하다.

전남대의 경우 예산서의 산출 근거에 명시된 사업명칭을 보고 그 성격을 판단했는데 사업명칭에서 드러나지 않는 종류의 사업이 더 있을 수 있다. 조선대의 경우 국공립대인 전남대와는 달리 공시자료에서 사업명칭을 알 수 없어 예산과목의 성질만을 보고 판단했다. 따라서 보다 정확한 계산을 하려면 공시자료에는 공개되지 않은, 각 대학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수합되었을 사업계획서 자료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또한 판단기준에서 인건비는 고려하지 않았는데, 대학생들의 불만이 단순히 대학시설 이용뿐만 아니라 수업의 낮은 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논의해봐야 할 사항이다.

대학들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수입이 감소했으며 온라인 강의 기자재 구입 등 예상외 비용이 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구체적인 결산자료를 보고 검증해야 할 것이나 마침 지난 5월에 조선대의 추가경정예산을 심의한 대학평의원회 회의록에서 대략적인 수치가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조선대에서는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약 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난방 및 전기요금으로 1억 2500만 원을 절감할 수 있을 거라 가정하고 있다. 그밖에 26억 7000만원의 수입이 감소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질적인 감소가 맞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립대학에는 적립금이 있다. 6월 28일 대학교육연구소에서 발표한 사립대학 누적적립금 통계자료에 따르면 사립대학 87개교가 100억원 이상의 누적적립금을 보유하고 있다. 광주지역 대학 중에서는 조선대(635억원), 호남대(333억원), 광주가톨릭대(217억원), 광주대(146억원), 광주여대(134억원), 남부대(107억원)가 100억원 이상의 누적적립금을 보유중이었다. 만약 대학들이 학생들의 기대수준보다 훨씬 낮은 질의 교육이 제공된 현 상황조차 적립금을 사용할 비상상황이 아니라고 선언한다면 적립금의 존재는 그 정당성을 더욱 의심받게 될 것이다.


3. 청년문제가 아니라 대학문제다.
 

이번 문제의 본질은 '대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대학교육의 질적 하락'에 있다. 물론 이는 대면 강의에서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는 과정이 급작스러웠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실험/실습 등의 과목을 제외하면, 온라인 강의가 대면 강의보다 더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온라인 강의에서 나타난 교수 및 강사들의 안일한 태도와 불성실함은 그 심각성에 비해서 이상할 만큼 주목도가 떨어진다.

교육의 질 하락은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만 나타난 문제도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대학교육의 질적 수준은 그것에 투자되는 재정의 규모에 따라가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오히려 객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전남대 약 2700억 원, 조선대 약 2400억 원 등의 지출규모를 가진 대학들이 사설학원이나 인터넷 강의 업체보다 교육의 질이 낮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 학생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 따로 모여서 저 돈을 모아 법인을 차렸으면 사교육 시장에 있는 대부분의 1타 강사들을 초빙해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해외석학들의 강의까지도 번역해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수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가 학생들의 입장에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대학재정에서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축제 때 어떤 연예인을 부를 것인가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에 대한 정당성을 논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학생들의 보편적인 이해와는 동떨어진 사업들이 대학 내에서 너무 많이 집행되고 있다. 이번에 대학 재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찾은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전남대에서 교수들의 정기산행 행사에 40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된 것이었다. 과연 학생들은 대학에 이런 예산이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대학 운영의 핵심은 결국 재정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있는데, 이를 결정하는 구조는 완전히 교수들에게 장악되어 있어 학생이 접근하기가 어렵다. 먼저 각 부서의 계획이 재무부서로 제출된다. 이 과정에 학생이 개입할 수 있는 경우는 학생회가 학생담당 부서의 학생자치지원금에 대해 계획안을 제출하는 정도이다. 재무부서에서는 종합된 계획안을 심사하여 단일한 예산안을 도출한다. 이 예산안을 두고 등록금심의위, 재정위원회가 소집되어 심의한다. 그리고 이 기구들은 교수가 부서의 장이거나 의석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런 결정구조 탓에 지금의 대학재정은 학생들이 그 실상을 알게 되면 결코 동의하기 어려운 예산들의 거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수들은 수업의 질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인건비는 물론 직장의 예산까지 통제하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운영하는 특권집단이다. 거기에 더해 교수들은 자신들을 징계하는 기구까지 장악하고 있어 논문을 표절하거나 성폭력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징계로 무마할 수 있다. 현행의 대학지배 체제에서는 사학재단의 독재라는 것 또한 교수집단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대학은 그저 교수라는 지배집단의 통치기구일 뿐이며 학생은 등록금과 노동력을 바치는 존재이자 정부 지원을 타낼 구실이라고 말해도 딱히 틀리지 않을 지경이다. '총장직선제'가 진정한 대학 내 민주주의라고 떠들어대는 교수들의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애초부터 학칙제개정 결정권과 인사권이 집중된 제왕적 총장제도도 문제이지만 그것이 될 수 있는 것도 교수뿐이라는 점에서 총장의 존재는 곧 독재이고 총장직선제는 귀족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번 등록금 반환 국고지원은 이러한 대학 내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대학생들에게 몇 푼의 돈만 쥐어준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4. 새로운 질서란 돈 몇 푼이 아니다

영화 <억셉티드>에서는 대학 입시에 떨어진 청년이 부모님께 대학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했다가 그것이 점점 불어나 결국 빈건물에 진짜 대학을 만들고 그곳에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대학을 운영하게 된다. 마치 홍길동전의 율도국 같은 상상일 뿐이지만 약 2000억 원의 예산을 백지상태에서 학생들이 결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의 대학교육보다는 훨씬 만족스런 교육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억셉티드>처럼 대안적인 고등교육을 상상하며 대학 밖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도저히 지금의 대학이 바뀔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의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벌주의가 타파되지 않은 한 돈과 사람은 대학에 몰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꿈꾸는 대안적인 고등교육은 대학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전국의 대학생들이 교수들의 탐욕으로 이루어진 대학재정의 실상을 파헤치고 대학 밖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대학개혁 투쟁을 펼치지 않는 한 교육개혁은 상상에서만 가능한 일로 남을 것이다.

국고지원을 통한 등록금 환불은 2011년 제기되었던 왜 빈자의 세금으로 부자를 도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똑같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학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립도서관 같은 것이 될 수 없다면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확대는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공공재정의 고등교육 투자 확대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학벌타파와 대학개방을 먼저 주장해야 한다.

6월 11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대표발의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등록금 환불에 대한 법적 근거와 그 비율을 등록금심의위원회가 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6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국가나 지자체가 등록금 환불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같은 날 미래통합당 유의동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 또한 등록금 환불이 가능한 근거를 규정하고 있어 미래통합당이 국회에 복귀할 경우 등록금 반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형태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여야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국고지원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이 개정안들은 오히려 대학의 지배 체제에 대한 물음을 차단하고 있다. 이제 등록금 환불 문제는 반값등록금 투쟁의 결말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대학 권력의 질서를 재편하는 사회적 논의로 확장될 것인가의 기로에 있다. 몇 푼의 돈을 손에 쥔 대가로 질 낮은 대학교육을 계속 감내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학벌주의라는 봉건잔재를 청산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거듭날 것인가?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새로운 사회질서에 온갖 현란한 논의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모든 시민들에게 사회를 책임질 권력을 주는 것이다. 현행의 대학체제가 초래한 이 위기는 오직 대학 권력을 민주화, 개방화했을 때 극복 할 수 있다. 이제 대학에 돈이 없다는 거짓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대학의 권력을 학생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 참고
- 장석주, 신동아, 반값등록금 투쟁보다 학벌타파 운동이 먼저다.
(https://shindonga.donga.com/Series/3/990236/13/110444/1)
- 전남대, 조선대 예산삭감 계산 기준 (https://antihakbul.jinbo.net/3573
- 전남대 재정현황 공시 (http://www.jnu.ac.kr/MainIntro/Situation/Finance)
- 조선대 재정현황 공시 (https://www3.chosun.ac.kr/chosun/154/subview.do)
- 대학교육연구소 사립대학 누적적립금 현황 (http://khei.re.kr/post/2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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