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구소녀>가 누적 관객 수 3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6월 18일 개봉 이후 15일 만의 성과다. 손익분기점(약 6만 명)의 절반 정도지만 코로나 19로 얼어붙은 극장가, 특히 독립영화계에서는 대단한 수치라 평가받는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독립영화계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이름을 알린 배우 이주영이, 또 한번 일을 냈다.
 
영화 속 야구소녀 수인(이주영 분)은 134km를 던지는, 이른바 '천재 야구소녀'다. 졸업을 앞둔 수인은 남자들보다 확연히 작은 덩치와 힘, 어려운 집안의 장녀라는 현실에 부딪혀 야구를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인다.

"해보기도 전에 포기 안 해."

영화 내내 수인이 다짐처럼 입에 달고 사는 이 말은, 누가 봐도 야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수인의 현실을 반증하듯 보여준다. 엄마부터 코치, 주변 사람 대부분이 수인에게 힘들거라고, 포기하거나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본인의 장점인 볼 제구력을 살려 '직구' 대신 '너클볼'을 특기로 개발한다. 다른 이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해 실력을 증명해낸다. 수인은 자신의 가능성을 속단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받아친다.

"그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야구소녀'는 왜 누군가는 이 영화를 클리셰라고 말할까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 싸이더스

 
혹자는 영화 <야구소녀>가 그저 소년만화의 문법을 답습할 뿐이라 주장한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영화라거나, '클리셰'만 가득한 영화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녀가 성장하고 시련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여성들에게 전혀 '클리셰'가 아니다. 서사의 빈도를 논하기도 전에, 여성 주연 영화의 숫자부터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실의 벽'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수인에게는 벽 하나가 더 있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수인이 연습 때마다 차고 다니는 모래 주머니 같은 것. 프로야구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마주하는 '예쁘네'라는 평가나, 야구'소녀'라는 수식어 자체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소녀는, 소년만화의 답습이 아니다. 현실의 벽에 더해 '편견'까지 깨부수는, '소녀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라 할 수 있다.
 
모험과 도전 외에도, 수인의 '소녀 만화'가 가지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수인처럼 미국 아마추어 리그에서부터 힘겹게 올라왔다는 제이미는 수인의 평가전을 보며 "파이팅"이라는 응원을 건넨다. 수인이 지쳐갈 때, 친구 정호는 수인이 이 악물고 달릴 수 있도록 수인의 옆에서 나란히 달린다.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과거를 가진 최 코치에게, 수인은 '내가 대신 가줄게요'라며 미소짓는다. 소년만화에 매니저 소녀와 주인공의 로맨스가 있다면, 수인의 소녀만화에는 이런 형태의 사랑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랑을, '연대'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다음 주인공을 위해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영화 <야구소녀>의 한 장면. ⓒ 싸이더스

 
<야구소녀>는 사실 수인을 위한 영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최 코치가 보여준 한 장의 원서 속 여학생. 이 영화는 어쩌면, 수인의 팬이자 후배라는 그 여학생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제2의 주수인을 꿈꾸는, 다음 주인공이 될 그 여학생을 위해.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다음에 나올 또 다른 <야구소녀>를 위해.
 
영화가 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꿈을 가진 자, 포기하지 말라. 여자인 것은 장점도 단점도 아니다. 영화 저변에 깔려 있는 이 작은 믿음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입소문을 타 장기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속단하지 말자.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야구소녀 수인의 '너클볼'처럼, 영화 <야구소녀>가 던지는 메시지가 어디에 도착해 어떤 소녀를 길러낼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작은 믿음들이, 세상을 바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소진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ssoo99)에도 게재됩니다.
야구소녀 이주영 독립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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