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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 금산전투에는 고경명이 이끈 호남의병이 대거 참여했다.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 금산전투에는 고경명이 이끈 호남의병이 대거 참여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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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알고 있던 임진왜란의 역사는 잊어라! 임진왜란을 대비하자고 주장했던 자 누구며, 이를 방기했던 자 누구였나?"

도발적인 질문이다.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 쓴 프롤로그에서다. 양성현이 쓴 <다시보는 임진왜란> 이야기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 임진왜란, 당쟁이 왜곡한 임란사(壬亂史) 실록으로 바로잡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다시보는 임진왜란>은 임진왜란과 당시 의병들 그리고 그 시대를 관통한 인물 유성룡의 행적 등을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그동안 자리잡은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지금껏 당연시해온 이야기를 따져보고, 이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들춰낸다.

의로운 의병의 이야기도 길어 올린다. 임진왜란 훨씬 이전부터 전쟁을 대비하자고 주장해온 송천 양응정과 남명 조식 등을 통해서다. 우리 역사에서 비판 금기어로 통하는 서애 유성룡과 <징비록>도 논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우리 역사의 진실과 민낯을 들춰내야 한다는 이유다.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풀어낸 책 〈다시보는 임진왜란〉의 저자 양성현 씨. 그는 지금껏 당연시해온 이야기를 따져보고, 이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들춰냈다.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풀어낸 책 〈다시보는 임진왜란〉의 저자 양성현 씨. 그는 지금껏 당연시해온 이야기를 따져보고, 이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들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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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습니다.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어요. 임금 선조의 무능, 당시 집권당인 동인들의 잘못된 정세 판단, 일본에 대한 무지, 전쟁 대비를 강조해온 서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숙청… 그 뒤에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한 전쟁이 임진왜란이었습니다."

저자의 말에서 책의 얼개가 짐작된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간혹 왜곡되고 있어요.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그렇고, 우리의 임진왜란 역사가 그렇습니다. 유성룡의 징비록 사관에 의지한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교과서가 징비록 사관을 넘어서야 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죠."

저자는 "유성룡의 <징비록>이 반성문을 표방하고 있지만, 전쟁을 막지 못한 당사자의 자기반성이 빠진 허울뿐인 보고서"라고 주장했다. 전쟁을 대비하지 못한 당시 조정과 집권세력, 특히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에 전쟁 대비를 주창해온 서인의 의견을 묵살하고 몰아낸 책임이 유성룡에게 있었지만, 이를 통째로 뺐다는 것이다.

"당리당략에 눈 먼 조정대신들이 상대 정치인을 몰아내는 데만 혈안이 됐습니다. 자기 당파인 김성일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채택하고 대대적인 서인 축출에 나선 거죠.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거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1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전쟁 직전까지도 그랬습니다. 그 결과는 정말 참담했죠."
  
 양성현 씨가 펴낸 책 〈다시보는 임진왜란〉의 앞뒤 표지. 책은 임진왜란과 당시 의병들과 그 시대를 관통한 인물 유성룡의 행적 등을 풀어내고 있다.
 양성현 씨가 펴낸 책 〈다시보는 임진왜란〉의 앞뒤 표지. 책은 임진왜란과 당시 의병들과 그 시대를 관통한 인물 유성룡의 행적 등을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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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임진왜란을 아무런 대책 없이 맞게 된 첫 번째 이유로 유성룡을 중심으로 한 동인을 꼽았다. 그 책임은 "어떤 공(公)으로도 덮기 어렵다"고 했다. 반성 없는 징비록이 우리의 기억을 400년 넘게 지배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징비록은 현대판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그 상태로 수백 년 동안 유성룡 우상화에 매진했죠. 책임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책임져야 할 그들이 전쟁을 극복한 영웅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전쟁을 대비해온 측과 전쟁은 없다고 주장한 측이 뒤바뀌는 역사를 만든 것이죠."

양 작가는 이의 근거로 〈기재사초〉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들었다. 기재사초(寄齋史草)는 사관을 지낸 박동량이 쓴 임진왜란 전후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사초(史草)로 알려져 있다. 책에서는 또 유성룡이 2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 책임자로 거론한 김천일 등에 대해서도 따져보며 다시 평가를 했다. 패배의 총책임자는 유성룡 본인이라는 것이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충의사 전경.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숨진 최경회 의병장을 기리고 있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충의사 전경.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숨진 최경회 의병장을 기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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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솔직한 징비'의 당사자로 임진왜란 조짐을 진즉 간파하고 준비해온 송천 양응정(1519∼1581)을 들고 나왔다. 을묘왜변(1555년) 때 의병으로 참전한 양응정은 '전쟁이 곧 다가올 것'이라며 대비를 주창했다. 양응정은 이듬해에 전쟁 대비책을 담은 '남북제승대책(南北制勝對策)'을 내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는 훗날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론의 토대가 된다.

"집권세력이 성리학을 외치며 붕당을 만들어 분쟁을 일삼고 있을 때, 양응정은 앞으로 일어날 왜란에 대비하고 있었어요. 양응정은 임진왜란 발발 11년 전인 1581년 타계하는데, 절대 배운 바를 저버리지 말라고 제자들한테 당부합니다. 그 분의 아들 양산숙과 양산룡, 제자 최경회·경운·경장, 박광전, 정운, 안중묵 등이 의로운 길에 앞장을 서죠."

저자는 책에서 양응정과 수많은 의병을 불러낸다. 이들의 행적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며 임진왜란 전후의 정치와 의병사를 다루고 있다. 그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감춰진 역사를 들춰 의병의 역사를 찾아냈다"면서 "많은 기록을 찾아서 보고, 글로 쓰고 또 썼고,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말했다.

저자 양성현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내일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지금은 여행과 역사, 인물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 저서로 <양림동 걷다>, <사암 박순>, <한양도성 가는 길>, <전라도 오감여행지 100선>, <싸목싸목 걷는 광주 12길> 등이 있다.
  
 담양 소쇄원에서 만난 양성현 작가. 통나무 수로 건너 광풍각에 앉아서 원림을 즐기고 있다.
 담양 소쇄원에서 만난 양성현 작가. 통나무 수로 건너 광풍각에 앉아서 원림을 즐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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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립니다.


다시보는 임진왜란

양성현 (지은이), 책공장(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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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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