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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못 먹는 형편"이라는 말은 힘들게 일을 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가난을 은유적으로 함축한 표현이라고 본다. 실제로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 귀하고 비싼 쌀은 구경하기 어려웠던 집에서는 많은 식구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리 등 잡곡으로 죽을 쑤었다.

잡곡마저 없는 더 가난한 집에서는 무와 아욱 등 채소나 쇠비름, 냉이 등 산야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물을 많이 넣은 죽을 쑤었다. 그래서 호박죽, 아욱죽, 미나리죽 심지어 소나무 껍질인 송기죽 등 채소나 나물의 이름을 붙인 죽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멀건 죽 한 사발로 끼니를 때우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고작 하늘을 원망했다는 조부모 세대의 이야기도 요즘 젊은이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50년대와 60년대의 가난한 시절을 기억하는 나에게 죽은 연민과 슬픔을 연상시키는 서러운 가난의 상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편견을 담은 인식이 아니더라도 밥과 된장국을 좋아하는 때문에 나에게 죽은 가능한 한 피하고자 했던 음식이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늘그막에 죽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불안으로 인해 입맛을 잃었다.

밥은 냄새조차 역겨웠고 병이 나기 전 잘 먹었던 반찬도 도무지 맛을 느낄 수 없어 두어 번 뒤적이다가 물리고 말았다. 미숫가루 한두 모금 마시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절망을 키우는 일밖에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죽을 권했다. 예기치 못한 아픔이면서 내 인생의 역설적인 반전을 살필 겨를이 없이 아내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오직 병을 이기겠다는 일념만으로 세 끼니를 죽만 먹었다. 먹는 행위가 죄악처럼 느껴지고 대변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억울한 벌(罰)처럼 느껴지던 시절, 아내의 정성이 담긴 죽은 희망과 구원의 음식이었다.
 
사전에서는 죽이란 곡식을 물에 넣고 끓인 무른 음식이라고 설명한다. 죽은 순수한 말이 아니라 粥(죽)이라는 한자어인데 또다른 鬻(죽)이라는 한자와 같이 쓰인다는 사실도 찾았으나 쌀미(米)를 좌우로 활궁(弓)이 에워싼 한자의 유래는 알 수 없었다.

인터넷 사전을 통해 죽의 농도와 쑤는 방법에 따라 미음, 응이, 원미죽, 암죽 등으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미음(米飮)은 곡물을 갈아 채로 걸러낸 걸죽한 음식으로 주로 병자나 어린이들이 이유식으로 먹는 죽이고, 응이는 율무를 갈아 앙금을 가라앉힌 뒤 그것을 말려 쑨 죽이다. 원미죽(元味粥)은 쌀가루로 쑨 죽에 꿀이나 약소주 등을 타서 차게 먹는 죽이라는 것도 알았다(원미죽은 여름철 보양음식이었다고 전해진다).

암죽은 어린이의 이유식이나 노인과 환자 등을 위한 죽인데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없는 근세에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했다. 이제 죽은 구황식품이 아니라 주식을 대용하는 보양식 기능도 하고 환자들에게는 치유식이며 특히 호사가들의 별미음식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쌀로 쑤는 흰죽은 물론 팥죽, 깨죽, 전복죽, 잣죽, 고기죽 등 종류도 다양해지고 원하는 경우 시중에서도 쉽게 구할 수도 있게 된 것 같다.
 
죽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건강을 챙기는 약이다.
▲ 어느날 아침식탁  죽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건강을 챙기는 약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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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5년을 경과하여 완치 판정을 받은 현재도 나는 아침 식사는 거의 죽을 먹으며 저녁 식사도 죽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죽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죽에 관한 자료를 찾았는데 의외로 죽이 갖는 장점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개인적인 경험이며 느낌일 수 있지만, 일단 삼삼하게 쑨 죽은 담백하면서 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첫 번째 장점으로 꼽고 싶다. 또 각종 버섯이며 호박, 당근, 피망 등 야채와 몸에 좋다는 식재료가 많이 들어가기에 영양면에서 뛰어나며 무엇보다 먹기 편하고 위에 부담이 없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집에서 조리하는 죽은 환자의 영양을 고려하여 회복과 보양에 좋은 다양한 식품을 형편에 맞추어 사용할 수 있어 환자의 치료는 물론 심리적 안정을 도울 수 있다는 점도 아주 큰 장점이라고 본다. 거기에 죽을 쑤는 과정에서 간을 맞추기에 많은 반찬이 필요 없어 설거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소소한 장점일 것이다.
 
역시 개인적인 느낌일 수 있으나, 묽은 죽이라고 묽은 변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장에 부담이 덜하기 때문인지 장 폐색 등의 돌발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2년 만에 변의 횟수가 하루 10회 이상에서 6, 7회로 줄고 또 예상치 못한 변지림을 거의 잡을 수 있었던 요인도 죽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죽이 환자의 회복을 돕는 보양식일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히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하루 한 끼니 정도는 가벼우면서 기운을 보충하는 기호식품이 들어간 죽으로 해결할 것을 권하고 싶다. 아무튼 이제 죽은 배척하고 피하는 음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뜻한 음식으로 고맙게 여기고 있다.
 
다만 밥은 쌀과 물의 양만 조절하면 시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밥통이 해결해주기 때문에 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반면 죽은 쑤는 동안 조금만 방심하면 국물이 넘치거나 솥바닥에 재료들이 누르기 때문에 계속 지켜보며 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을 쑤는 사람에게는 밥짓기보다 더 바쁘다는 사실은 단점이라고 하겠다.

죽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죽을 쑤는 시간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특히 흑미와 완두콩 등을 넣어 갈아 만드는 검은 깨죽은 지켜보며 저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아내의 말이다.
 
어떤 환우들이 올린 글에서 완치 후에도 변으로 인한 고통이 그치지 않는다는 애로사항은 볼 수 있다. 현재 나의 상태는 많이 좋아졌으며 또 점점 나아지고 있다. 1일 배변 횟수는 4, 5회 정도이며 변의 굵기나 모양, 냄새 등 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고 또 변지림은 그친 상태다.

그래서 외출 가능한 시간도 길어져 반나절 정도는 조절할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벼운 여행은 물론 장거리 여행도 계획하는 등 자신감을 회복하는 중이다. 노인의 자랑이지만, 이러한 결과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해롭다는 음식은 자발적으로 과감하게 포기하고 음식의 양을 줄이는 등 조심하고 절제하는 습관을 지켜온 나의 의지와 더불어 아내의 헌신과 적절한 통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사족이지만, 암이 오기 전에도 심혈관 질환이 있었고 당뇨와 혈압 수치가 높았기 때문에 음식을 조심하고 약을 먹으라는 병원 측의 권고가 있었다. 때문에 커피나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인스턴트 음식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런데 수술 이후에 조심하고 절식해야 될 음식의 종류가 더 늘었다. 술과 붉은 육고기, 생선회 같은 생것 날것, 맵고 짠 음식 너무 시거나 단 음식 등이 그런 것이다.
특히 생선회나 육회 등은 나의 기호품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음식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은 한참 동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먹고 싶은 것들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것같은 불만도 많았고 그런 제한과 주의 사항은 잘못한 일도 없는데 벌을 받은 것처럼 억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주의 사항이나 경고를 오랜 벗의 충고나 신이 내려준 잠언으로 받아들이고 강단지게 실행하고 있다.
 
병의 치료에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많은 분의 주장에 동의한다. 나아가 무리하지 않는 운동과 스트레스를 피하는 생활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만큼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과제는 환자만이 아니라 누구나 평생 안고 가야 할 숙명이 아닐까? 우선 맛있는 음식이면서 건강에 도움 되는 음식 고르기도 꼭 필요하겠지만, 귀하고 비싼 수입 식품이 아니라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연식품을 찾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조리하고 나아가 꾸준히 먹는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여 본다.

태그:#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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