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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문제에 있어서 지금도 우리는 공정성의 신화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5월 28일 교육부는 2022년 대학입학전형 계획을 조사한 후에 입시를 공정하고 단순하게 치르는 75개 대학에 약 700억 원을 지원한다고 했다.

이는 정부가 대입시 공론화때 권고한 정시확대 40%를 지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6월 22일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은 이 자료에 근거하여 정시비중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제동을 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는 수능영향력이 최대 70%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잠시 불평등이 우리처럼 심한데다 코로나사태로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본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수능 의존도는 절대적이지 않았다. 

1926년부터 시행된 미국의 수능 SAT는 엘리트 고교생들에 의해 대입전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는 것 즉 교육기회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SAT 주관기관인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 대변인 골드버그도 "SAT는 교육에 스며있는 불평등을 추인하는 부작용을 수반한다"고 한다.

2019년 11월 26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표준화시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수능이 학교와 지역의 편차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하지만 칼리지 보드를 비롯한 교육관계자들은 미국교육제도 내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함께 유수한 대학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이 수능인 SAT와 ACT 시험을 입시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다 최근 6월 8일자 미주 한국일보에 따르면 "SAT 테스트 옵션, 테스트 블라인드, 테스트 플렉시블 즉 수능 점수제출을 유보하기, 점수를 아예 요구하지 않기, 수능점수 대신 다른 점수로 AP 점수 제출이 가능한 것으로 하고 있다." 원격수업 장비 및 스스로 공부할 환경의 정도가 가정의 경제적 배경에 의해 크게 차이가 나고 이것이 판데믹에서 더 확대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위의 빈 칸에 고교명을 치면 해당학교의 점수가 뜬다.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 점수, 변경된 중앙값 SAT 점수 등이 표기된다. 출처: 2019.11.26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 사회적 지수(adversity scores) 위의 빈 칸에 고교명을 치면 해당학교의 점수가 뜬다.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 점수, 변경된 중앙값 SAT 점수 등이 표기된다. 출처: 2019.11.26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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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술 더 뜬다. 사회적 지수(adversity scores)를 구상하기도 한 것이다. 5월 21일자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흑인계와 히스패닉 학생들이 점수경쟁만 해서는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들에 비해 대학진학의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SAT 평가기관인 칼리지 보드(college board)에서 사회적 지수(adversity scores)를 부여하기로 했으나 반대의견 때문에 철회했다." 미국의 고민도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배경)지수는 한국에서 예전에 문제되었던 고교등급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단지 성적 서열화에 주목하기 보다는 학생들이 처한 가정의 경제, 사회, 인종적 상황을 좀더 폭넓게 고려하고자 한 점이 다르다. 

미국도 대형 입시부정을 겪었으나 입시의 공정성을 넘어 계층 불평등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수능비중의 축소 경향이 좀더 강해지는 경향을 감안하면 강민정 의원의 문제의식이 설득력을 얻는다. 수능을 통한 정시는 공정성을 담보하는 듯 하지만 사교육비 부담증가와 계층고착화에 보다 더 노골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의 수시전형은 신뢰할 만 한가?

학생부종합전형의 문제는 특권층의 대물림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과 함께 고교생들이 봉사활동, 독서, 동아리활동, 내신관리, 교내외 토론 등 각종대회에 과하게 시달리면서 정작 적성함양, 인간교육 및 인성교육을 실패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2019년 11월 5일 교육부에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소위 주요 13개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기록한 부분이 눈에 띈다. 해당 대학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춘천교대, 포항공대, 한국교원대, 홍익대이다.

사교육 및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생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학생부에 기재 금지 사항을 지속 확대한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기재금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19), 논문 등재('14), 도서 출간('14), 발명·특허('13), 교외경시대외(('12), 해외(봉사)활동('11), 공인어학시험('11), 교외상('10), 인증취득 및 개인주관 체험학습('10) 등이다.

여기서 특권층의 대물림을 막고 고액의 사교육비 발생을 차단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선 특권층의 입시대응능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논문등재, 도서출간, 해외봉사 등도 막는 것이 이해되지만 금지와 규제 중심으로 흐르면 학생들의 상상력은 제약받고 사고력이 평준화되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 아인슈타인,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툰베리와 같은 인재가 배출될 가능성은 더 희박해질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수능과 학종이 모두 과도한 사교육비를 발생시키고 공정성을 위배하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학종의 기술적 대안으로 허정은(부산대 박사과정), 박창언(부산대 교수)의 논문도 참고할 만 하다.

"학생부 기록에 대해 상호 검증시스템 구축한다.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지침에서 벗어난 기록을 대입전형자료에서 제외한다. 전문성을 갖춘 사정관이 주도적으로 평가하게 한다. 공공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여 학교 교육과정의 변화와 연계 된 표준적 평가기준을 마련한다. 사정관 별 최대 평가건수를 제한하여 평가에 전념케 한다. 평가기간 동안 행정업무를 제외해 준다."(아시아퍼시픽 멀티미디어 연구저널9권 9호, 2019. 논문제목 :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및 개선방안).

물론 수능세대 보다 수시세대가 더 유연한 사고를 보이고 있음은 인정되는 부분이다. 그러면 지금 수시의 비중이 75.7%인데 학생들이 과연 토론, 발표학습을 하며 저마다 테마별 주제를 정하여 탐구하고 있는가? 또 이를 위해 독서가 생활화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명작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신의 견해가 들어간 보고서 한 번 써본 적 없이 점수를 쫓다가 학교생활을 마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를 더욱 다듬어가야 할 이유는 무엇보다 독서와 토론을 살려냄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교육의 본 영역인 상상력, 창의성, 자연과 세계에 대한 포괄적 이해력과 인간존재에 대한 존엄한 가치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코로나사태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시험기계를 양산하는 정시확대는 이러한 흐름에 더욱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공정성의 구도를 넘어서야!

참고로 해외의 입시를 간략하게 살피면, 미국은 수능으로 SAT혹은 ACT를 치른다. 객관식이지만 SAT는 작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만큼 비행기 이착륙이 안되거나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통 년간 5~7회씩 본다. 그리고 점수 잘 나온 것을 쓴다. 내신은 AP 점수 즉 교과 및 교과외활동이 중시된다. 영국은 내신반영이 없이 A-레벌시험을 치르고 A~E까지 5등급제이며 2년간 학교에서 입시준비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프랑스와 독일은 각기 바칼로레아와 아비투어 논술시험을 치른다. 절대평가로서 합격자 전원에게 대학진학 자격이 주어진다. 독일은 고2와 3의 내신성적과 아비투어 성적이 합산된다. 일본은 센터시험을 1차로 치르고 OECD국가중 드물게 본고사를 치른다. 수능만으로 진학하는 경우 또는 소논문 및 면접만으로도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코로나 비상사태 국면에서 수시전형의 간소화가 불가피하며 수능 부담도 줄여야 한다. 사상 초유의 판데믹 상황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부담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상황을 인지하는데 취약한 우리에게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에 학생들에 대해 정보적 지식을 기억하는 단조로운 학습관행에서 벗어나 적성별 맞춤형 적성탐색과 그에 따른 탐구역량을 키워주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독일의 고3학생들은 문제풀이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고3과는 판이하게 달리 징기스칸과 알렉산더를 비교하며 탐구보고서를 써내기도 한다.

코로나사태 혹은 그 여파가 지속되는 한 더욱 더 그러하거니와 대선공약이기도 한 수능을 절대평가로 하면서 5단계, 이어서 합격/불합격으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수능 및 시험에 매이는 어떤 경우도 학생들의 고차적 사고력은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감들이 최근 수능을 쉽게 출제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본래 그렇게 쉽게 출제가 되었어야 한다. 당장은 수능이 쉬워질 경우, 선발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여온 대학으로서는 변별력을 고민하면서 학생들에게 본고사에 준하는 면접의 부담을 지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정시를 확대한거나 수능을 어렵게 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사태일지라도 장기적으로 프랑스나 독일처럼 합격만 하면 대학진학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학공부가 어렵고, 고졸취업이 크게 차별받지 않도록 분배를 고르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둘째, 현재의 우리의 수시 '지역균형' 선발을 포함 '사회배려자 전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의 사회적 지수(adversity scores)가 담고 있는 평등에의 의지를 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코로나사태가 그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배경의 불가항력적 차이를 보정하는 점수를 적정선에서 확대하여 계층이동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예전의 고교등급제가 아니라 학생이 처한 가정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척도화하여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교육선진국 어디에도 사회의 엘리트들이 좀더 많이 배출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영국의 이튼이나 차터하우스, 독일의 짐나지움, 프랑스의 그랑제꼴 등이 그것이다. 한국의 인문계 고교가 이들 학교에 해당될 것이다. 특목고·자사고 등은 옥상옥이 되어 다분히 교육불평등을 고착시키기 때문에 시정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치열하게 경쟁시키고 다시 실력으로 선발, 대우하는 본래의 능력주의를 실현시키는가의 여부다. 원래의 능력주의는 중앙대 김누리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디그노크라스(dignocracy) 즉 각자의 존엄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사회불평등을 시정함으로써 교육제도의 변경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수능 난이도를 고민하는 열정, 수시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이것이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를 보아왔다.

자유기고가 홍혜정은 월간교육 2017년 8월호에서 이렇게 전한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16명 판사는 모두 서로 다른 대학에서 공부했다. 또 현재 16명의 독일 내각 장관들도 모두 다른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단지 본, 라이프치히, 자아브뤼켄 대학에서만 각각 2명의 장관을 배출했다. 이는 독일의 엘리트 계층은 어떤 특별한 소속을 가진 동질 집단에 의해 닫힌 사회가 아님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국은 입시의 절차적 공정성 너머에서 대학서열화 구조 그리고 여기서 출발하는 대학간판 및 학벌에 따라 차별하는 노동시장의 고착된 모순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계층 불평등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의 공정성 상실이다. 우리 정치는 바로 이것을 해결의 타겟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프레시안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코로나19 이후 대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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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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