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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이 한창인 논
 푸르름이 한창인 논
ⓒ 바른지역언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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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꼼짝 마'하는 통에 즐길 새도 없이 봄을 보냈다. 그 지겨움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어느새 지나고 벌써 여름의 정점으로 달려가니 세월이 무상하다. 봄을 즐길 새도 없이 여름을 맞이한 마음은 괜히 봄을 강탈당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그렇다고 봄이 지나가는 것을 못 느낀 것도 아닐진대, 괜히 생떼 한번 부려보는 것은 세월을 잡고 싶은 아쉬운 마음 때문일 게다. 

여전히 마음은 봄을 즐기고 싶은데 눈 앞 풍경은 짙푸른 녹색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집 앞 커다란 밤나무는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실처럼 기다란 허연 꽃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초여름에 느낄 수 있는 향이다. 그 즈음이면 집 앞 논도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요즘은 모내기를 기계로 하니 언제 모내기를 했는지 유심히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렇게 모를 심은 지 알 수 없고, 눈에 띄지 않던 논이 두드러지게 시야에 들어오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맛없는 반찬도 입맛 돋게 하는 마력의 장소

필자가 어렸을 적엔 모내기 또한 마을의 큰 행사 중 하나였다. 그 넓은 논에 사람이 직접 모를 심어야 했으니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하는 품앗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볕 좋은 봄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을 한가운데 논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봄철 풍경이었다. 운 좋게 새참시간이나 점심 때 맞춰 길을 지나게 되면 우리 집 아이, 남의 집 아이 할 것 없이 어른들이 부르셨다.

논둑에 앉아 먹는 새참 또는 점심. 일하지 않았어도 그 장소가 주는 신선함은 아무리 맛 없는 반찬일지라도 입맛을 돋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점심을 얻어먹고 나면 당연히 못줄-모내기할 때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기 위한 기준 줄(못자리에서 자란 모를 본 논에 옮겨 심을 때 모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으로 심기 위해 기준으로 삼는 줄)-을 잡는 것은 어린이들의 몫이었다. 그런 풍경을 눈에 담고 사니 철을 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농사는 기계가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농사는 더욱 그렇다. 모내기는 이양기가 하니 옛날처럼 논에 사람들이 북적일 필요가 없다. 정말 관심있게 쳐다보지 않으면 이 논이 모내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린 모가 너무 작고 여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 논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으니, 하지가 지난 요즘이다. 여리 여리한 모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니 흙빛으로 가득 차 있던 논이 금새 초록으로 변해간다. 푸르른 논은 초여름 시골풍경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지구에 이로운 논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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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한다. 논은 다양한 동식물의 보고이다. 필자 동네는 새 천국이라 할 수 있다. 흔한 참새, 박새는 물론 제비, 백로, 까마귀, 까치 등 수 많은 새들이 모여들어 다양한 곤충들이 살고 있는 논에서 활발한 먹이활동을 한다. 항상 물이 고여 있는 습지이니 개구리밥이나 부들 등 습지식물도 다양하다. 작지만 풍요로운 생태계다.

논은 저수지이다. 약 30센티미터 깊이의 논은 장마철 물을 저장해 홍수를 방지한다. 2019년 우리나라 논 경지 면적은 약 83만㏊로 저수면적이 24억톤 이상이다.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 데 드는 어머어마한 비용을 생각하면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이 작은 저수지 효과는 댐 건설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또 논은 지하수 저장고이다. 논에 저장돼 있는 물의 약 55%는 하천으로 배수되지만, 45%는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저장된다. 논이 있던 시골에 도시가 형성되면서 홍수가 범람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논에 저장돼 땅속으로 스며들던 물이 갈 길을 잃으니 홍수로 범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논은 대기를 정화하고 온도를 낮춰준다. 여름철 빠른 성장을 하는 벼는 산소를 배출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탁월한 공기정화 기능을 한다. 논에 저장돼 있는 수면을 통해 증발하는 물은 뜨거워진 대기온도를 낮춰준다. 논은 가장 중요한 쌀을 공급해준다. 우리나라 사람 치고 밥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약 50%인데, 그 중 쌀이 우리나라 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좋은 기능을 하는 논이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1인당 쌀소비량이 줄고 있기 때문에 논도 덩달아 감소하는 추세다.

몇 년 전에 친구가 논을 샀다. 밥을 너무 좋아하는데 논이 점점 없어지는 게 안타까워 논을 샀다고 했다. 농사 한번 지어본 적 없는 친구는 올해 열심히 벼농사를 짓고 있다. 대견한 그 친구처럼 당장 논을 살 순 없지만, 밥 한 숟가락 더 먹어야겠다. 논을 지키는 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송미란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생태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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