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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충!효!"


운동장에 도열한 학생들이 우렁찬 구호와 함께 단상 위에 선 교장 선생님을 향해 거수경례로 예를 표한다. 군대 연병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다. 10여 년 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일상 풍경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외에도 우리 학교에서는 '검도' 혹은 '유도'를 필수 과목으로 지도했다. 검도반에 강제로 배정된 내가 입학 후 가장 먼저 했던 일도 '죽도'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워낙 무술을 좋아했던 나는 학교에서 공짜로 검도를 가르쳐준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죽도를 휘두르며 연습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일제 식민교육의 잔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에는 잠시나마 좋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풍경이 연출될 수 있었던 것은 설립자였던 이가 일본군 대좌 출신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때의 나는 저항할 용기가 없었다. 운동장에 모인 수백 명의 학생들이 일치단결하여 거수경례를 할 때, 혼자서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겐 없었다. 조금만 동작을 틀려도 '멍청한 놈'이라고 뇌까리는 무시무시한 인상의 검도 선생님에게 반항할 용기도 없었다.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 표지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 표지
ⓒ 민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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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라는 책을 읽는 동안, 잠깐이나마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웃픈 추억(?)에 젖었다. 내가 모교에서 겪었던 일상 풍경이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상 풍경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배신감이랄까, 치욕이랄까 하는 감정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의 '몸문화'에 주목한 책이다. 식민지 조선의 학교에서, 사회에서 일제가 조선인들의 몸을 어떻게, 왜 지배해나갔는지 그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를 추적한다.
 
"우리의 근대는 철저하게 강압적으로 진행되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기적 특수성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 그리고 조선인들의 몸은 식민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 시기 동안 일본은 조선에 서양식 신체이론과 체계를 근본으로 한 소위 문명론적 교육을 실시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본질은 일제의 식민지배 논리를 주입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 4쪽
  
식민지 조선인의 '몸'을 지배한 식민의 논리
 
 1939년 목도 공립 심상소학교 학생들이 체조 시간에 목검으로 검도 체조를 하는 모습
 1939년 목도 공립 심상소학교 학생들이 체조 시간에 목검으로 검도 체조를 하는 모습
ⓒ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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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식민의 논리'는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상반된 형태로 드러난다.

한일강제병합 직후에는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체조나 무도 등 체육 교육이 중시되지 않았다. 조선인 학생들이 신체를 단련하면 역으로 일제에 저항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일제는 내지인(일본인) 학생들과 조선인 학생들에게 차별적으로 체육 교육을 실시했다. 일본인 학생들의 경우 체육 교육을 통해 육체의 발달을 꾀했다면, 조선인 학생들에게는 절제와 순종을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전시동원체제'로 돌입하면서,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을 언제든 전선에 내보낼 수 있는 '예비 군사자원'으로 규정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정신적으로는 국체론(國體論: 천황이 곧 국가라는 전체주의적 사상)을 주입하면서, 육체적으로는 각종 체조·무도·교련 교육을 통해 충실한 황국신민으로 육성하고자 했다.

저자는 "1937년 이후의 교과서 내용은 조선인 학생들을 철저하게 '미래의 병사'로 거듭나게 하려는 정신적 세뇌와 육체적 훈련으로 변화되었다"며 그 예로 조선총독부가 고안한 '황국신민체조(皇國臣民體操)'를 든다.
 
"고래(古來)로부터 무도(武道)의 형태를 모범으로 삼아 이를 체조화(體操化)하고 이것을 모든 조직에서 황국신민체조(皇國臣民體操)로 도입하고 일반에게 보급하도록 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일본(日本)의 정신적 근대(根帶)가 무도에 의하여 배양된 무사도(武士道) 정신에 있음을 믿고, 그 정신을 받아들여 검(劍)을 사용하는 자와 사용하지 않는 자를 불문하고, 일상 무도의 형태로 친해지게 하여 심신(心身)을 단련함과 동시 황국신민(皇國臣民)다운 신념체득(信念體得)의 자질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 178쪽, <황국신민체조취의서(皇國臣民體操趣意書)> 中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각 학교와 일반에 이 체조를 널리 보급했다. 이제 조선인은 황국신민서사와 황국신민체조를 통해 일제에 충성하는 정신과 신체를 가진 황국신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건전한 모체 양성' 여성들도 예외일 수 없어

식민의 논리는 여성들에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일제의 어용기구였던 '조선체육진흥회'가 1942년 3월에 제정한 '일반 국민체육 지도요강'을 살펴보면 '특히 여자들은 건전한 모체(母體)를 기르도록 하고'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또한 학교에서도 여학생 체육 교육의 목표로 '덕성 및 정조의 함양'을 제시했다.

이는 여성들에게 미래의 군사자원인 아들들을 낳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여성들에게 '육상경기', '집단훈련', '무도전장(戰場)운동' 등 군사체육을 장려했다.

일제의 군사체육 강화에 따라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교내에 복도를 이동하거나 등하교를 할 때, 제식동작에 발걸음을 맞춰 움직여야 했다. 또 <국어독본(國語讀本)>과 같은 교과서에서 행군이나 전투하는 장면들을 삽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미래의 충성스러운 황군으로 조선 학생들을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무예 연구가인 저자는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 무술이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는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학생들에게도 무도(武道)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무술의 끝에 '도(道)'가 붙게 된 것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신도(神道)·황도(皇道)·무사도 등을 강조하면서 도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실시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검술(劍術)은 검도(劍道)로, 유술(柔術)은 유도(柔道)로 변화·정립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무도 교육은 국가 곧 천황에 대한 충성을 조선인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오무도(五武道)라 하여 전투에 실제로 활용 가능한 기술인 '유도·검도·궁도(활쏘기)·총검도(총검술)·사격도(사격)' 등 다섯 가지의 무도를 학교에서 훈련시킴으로써 군국주의와 신도(神道)에 근거한 무도 정신을 함양케 하고자 했다. 특히나 검도의 경우 기관총알이 난무하는 적진에 과감하게 돌격하는 황군정신의 주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급되었다. 

1930년대 이후 일제는 개인의 유희나 취미로서의 체육이 아니라 유사시에 국가를 위해 가용할 수 있는 군사자원화를 전제로 한 체육 활동을 강요했던 것이다.

우리의 전통 궁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한편 일제강점기 당시 '전통무예 탄압설'에 대해 저자는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우리의 전통무예인 택견이나 궁술(활쏘기)이 탄압받았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정설처럼 퍼져있다. 일제의 억압으로 우리 무예의 맥(脈)이 끊김에 따라, 전통무예는 실전(失傳)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전통무예를 일제가 직접적으로 탄압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조선의 무예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궁술의 경우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 전통 방식의 활쏘기가 공식적으로 행해졌던 사실을 제시한다. 한일강제병합 이후로도 전국 각지에 설치된 사정(射亭:활터)에서 활을 쏘는 풍습이 이어졌다는 것.

전국적으로 거의 매달 궁술대회가 열렸으며, 심지어 궁술이 체계적으로 정립된 시기 역시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였다. 우리의 전통 궁술을 보전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궁술연구회'에서는 1929년에 <조선의 궁술(朝鮮의 弓術)>이라는 책자를 펴냈는데, 이 책자 덕분에 지금까지도 전통 궁술의 형태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활쏘기 풍경 (낙산 좌룡정)
 일제강점기 당시 활쏘기 풍경 (낙산 좌룡정)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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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궁술은 고유의 전통을 유지해왔고 오히려 체계화됐다. 궁술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궁술 연마를 정책적으로 권장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궁술 연마 권장에는 조선인을 미래의 군사자원으로 활용하고자 다종다양한 무도를 보급했던 식민의 논리가 적용되어 있다.

아래 기사는 1938년 5월,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조선 전통의 궁술 수업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할 것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이다.
 
"민중의 체위향상론(體位向上論)은 각 방면의 큰 화제로 되어잇는 이때 「우리녀자들도 체위향상을 도모해서 굿센 어머니가 되며 尙武의 정신을 가지자」고 하야 고래조의 궁술(弓術)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로 되엇다는 한원의 새로운 화제(話題)가 들려지고 잇다. (하략)" - <매일신보(每日申報)> 1938.5.22일자

위의 기사를 보면 전시동원체제 아래서 일제의 신체발달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조선의 전통 궁술이 활용됐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 여자들도 체위향상을 도모해서 굿센 어머니가 되며 상무의 정신을 가지자'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여성에게도 후방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역할이 요구되었으며, 그 수단 중 하나가 궁술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일제는 궁술을 비롯한 조선의 전통무예나 민속놀이를 탄압 혹은 금지시키기보다는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 즉, 식민지 조선인의 군사자원화를 위해 역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의 전통무예가 일제강점기에 탄압받았다는 설은 역사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뒤에는 오히려 조선인의 몸을 지배하려는 정교한 식민의 논리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의 궁술에 깃든 일제의 잔재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현재 우리의 전통 궁술은 국궁(國弓)이라는 이름으로 보전되어오고 있다. 그런데 국궁을 보급하는 단체의 이름이 다름 아닌 '대한궁도협회'이다. 대한궁도협회는 궁술을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인 궁도'라고 홍보하고 있다.

궁도(弓道)는 활쏘기의 일본식 표현이다. 저자는 "궁도라는 명칭의 보편화는 일제 군국주의를 통해 확산된 만큼, 우리의 고유 표현을 놔두고 궁도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심지어 한국의 궁술과 일본의 궁도는 활의 형태에 있어서나, 사법(射法)에 있어서나 전혀 다른 별개의 무술이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대로 한국의 궁술을 일본식 궁도로 표현하는 것은 식민 잔재 극복을 위해서라도 마땅히 개선해야 할 점이 아닐까.  

식민지근대화론과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은 검도 및 교련 등을 비롯한 무도 관련 과목을 모두 법으로 금지시켰다. 전후 군국주의 및 국가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본조차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며 금지했던 군사체육은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한다. 고등학교에서 교련이 실시되고,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체력장에서 '수류탄 던지기'가 정식 종목으로 등장한 것이다.

1970년대 유신체제가 '일상적 군사동원체제'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1937~1945년의 전시동원체제와 1970년대 유신체제의 동질성과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심어놓은 식민의 논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록 유신체제가 붕괴되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교련 과목도 시대의 유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내가 서두에서 학창시절의 기억을 장황하게 읊은 까닭도 바로 그 질긴 생명력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철 지난 이론으로 치부하지만 여전히 '반일종족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에 의해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식민지근대화론'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을 통제하고 지배하고자 했던 식민의 논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고 청산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과제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 최형국, 민속원, 2020.3.1


제국의 몸, 식민의 무예

최형국 (지은이), 민속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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