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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다큐멘터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다큐멘터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 <논픽션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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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오늘,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사망자 502명, 실종자 6명, 부상자 937명이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 부실 시공과 허술한 안전 관리로 빚어진 전형적인 '인재(人災)'였고, 94년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산만언니'(본명 이선민)씨는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였다. 당시 스무살이었던 그는 삼풍백화점 지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의 근무지는 건물 전체가 무너진 A동 지역이었는데, 누군가의 호출로 B동으로 가는 도중에 사고가 일어나 겨우 살 수 있었다.

25년이 지났지만, 그에겐 당시의 상흔이 남아 있다. 바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다. 뒤늦게 깊은 우울증과 무기력이 찾아왔고, 지금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다. 현재는 '나는 삼풍백화점 생존자입니다'라는 이름의 연재 글을 인터넷 상에 올리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쓰게 된 계기는 2018년 4월 18일 딴지일보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지속되는 국가 재난중 어째서 세월호만 유난이냐'라는 내용의 글에 반박하며, '삼풍백화점 사고와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다른지, 세월호 참사는 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 썼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한 분노가 담긴 이 글은 언론에도 소개되는 등 큰 주목을 받는다.

산만언니씨는 유독 '세월호 참사'에 감정이입을 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비슷한 나이에 삼풍 참사를 겪은 데다가,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지원을 위해 진도 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직접 유가족들의 슬픔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공격에 대해, 그의 마음 속에는 '이게 어떤 고통인데'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2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월호 혐오세력'에게 "당신 내가 사고 보상금 줄테니까 나랑 인생바꾸자"고 말하고 싶었다며 "혐오발언이 돈이 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세월호 유가족에겐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 피해자다울 필요도 없다"며 위로의 말을 남겼다.

다음은 산만언니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사고 10년 후 갑작스러운 후유증... "이젠 증상 숨기지 않으려 해"

- 상품백화점 붕괴 사고 25주기입니다. 잊기 어려운 날일 것 같은데요. 힘들겠지만 그때 당시 기억나는 상황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루 종일 에어컨이 안 나오고, 덥고 습했어요. 그날 (엘리베이터 승강기 운전원에게) 엘리베이터가 어긋나 있었다고 듣기도 했어요. 그때 건물붕괴된 A동에 있었는데 누가 불러서 B동으로 가다가 사고가 일어났는데요. 붕괴 당시 엄청난 바람과 굉음이 일었고 그 소리에 너무 놀랐어요. 제가 원래 근무하던 쪽은 냉장고가 산산조각 났고, 시신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현장이었어요."

산만언니씨가 딴지일보에 올린 '사고 당일, 그리고 기억들'이라는 글은 25년 전 상황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원래 일하던 '물품보관소' 자리는 "천장과 바닥이 붙어버렸다". 폭발음과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바람이 그친 뒤에는 비명소리가 났다. 일하던 친구와 피투성인 채로 걸어 나간 그는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미니버스를 탔고, 강남 성모병원에 도착한다. 하지만 "맨바닥에 피투성이인 사람이 누워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는, 무작정 병원 외래동으로 가 모르는 여성에게 '가까운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강남의 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를 겪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긴장한다든가, 감정적으로 무감각한다든가 그런 상황들이 있었는데, 사고와 연결시키지 못했어요. 사고 직후에는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10년 지나서 깊은 우울증과 무기력이 찾아왔고, 자살시도도 했어요. 허무했어요. 뭘 해도 기쁘지 않았어요. 내가 뭔가 이상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롱 텀(long-term) PTSD예요. 그 후로도 지금까지 치료하고 있어요. 

이러한 부분(PTSD)에 대해서 많이 알리고 싶어요.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던 이들이 제대로 된 심리적 치료를 못 받았잖아요. 아마 평생 불안 관련 증상 약을 먹어야 할 듯해요."

- 지금은 고통을 많이 극복하셨나요?
"지금도 극복 중이에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극복을 했다고 말씀을 드리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제 증상에 대해서 숨기지 않으면서 나아졌어요. 과거에는 삼풍 참사에 대해 말하는 게 눈물 나고 그랬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시각에서 사건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가 아니라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나도 겪었구나' 생각하게 됐죠."

"세월호 비하가 돈 되는 사회... '노란딱지' 붙여야"
 
 산만언니씨가 쓴 글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
 산만언니씨가 쓴 글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
ⓒ 딴지일보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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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라는 글로 주목을 받았어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세월호 참사는 사건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감정이입이 많이 됐어요. 사고 당시 그들과 내가 비슷한 나이였고,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유가족 지원을 위해) 진도체육관에 갔거든요. 그 슬픔을 직접 목격을 하게 된 거죠. 또 비슷하게 안전 의식 부재로 일어난 사건이잖아요. 그런데 '사회적 시선'이나 '정부의 사과' 등의 부분이 다르니까 '왜 다르지'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2014년부터 쭉 그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너무 심하게 말을 하잖아요. 겪어보지 않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죠. 이게 어떤 고통인데요. '당신 그 돈 줄테니까 나랑 인생바꾸자'라고 하고 싶었어요. 사실 삼풍 생존자인 것을 밝히기 싫었어요. 계속 침묵하고 싶었는데 2018년엔 정말 모욕과 조롱에 대해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자신의 블로그(브런치)에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다른 이유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 '삼풍백화점이 갖고 있던 고급스러운 이미지', '경제성장률'이다. '삼풍 참사'시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고, IMF 이전이라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적어도 '돈과 아이들의 생명'을 결부 짓는 혐오 행태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 글을 쓴 직후 보수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삼풍 최종 생존자 3인 명단에 제 이름이 없다고 '거짓말쟁이'라고 조롱하더라고요. 그래서 글쓴 사람에게 '일베짓'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욕죄 혐의로 경찰조사까지 받았어요.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요."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세월호 망언'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제한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 모욕죄 고소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이 2019년 4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세월호 망언"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제한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 모욕죄 고소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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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총선에서도 그렇고, 여전히 유튜브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하는 발언이 난무한다. '혐오 발언'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혐오발언을 계속 하는 게 돈이 되고 권력이 되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하는 사회예요. 적어도 극우 유튜버들에게 '세월호 혐오'가 돈이 되게 하면 안 돼요. 관심을 주지도 말고, 노란 딱지(광고 제한 조치 당한 영상)가 계속 붙게 해줘야 해요. 일단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법적 처벌은 두 번째입니다. 온 국민이 적극적으로 그들이 만드는 콘텐츠의 소비를 거부해서, 절대로 그런 혐오발언으로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 마지막으로 세월호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꼭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유가족분들 보면 힘들게 지내시는 게 느껴져요. 이중 삼중으로 사람들의 혐오의 시선까지 견디셔야 할 테니까요. 피해자다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유가족의 태도'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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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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