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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초 인사동 '현대화랑' 모습 1-2층 나눠 동양화와 서양화를 전시하다
 1970년대 초 인사동 "현대화랑" 모습 1-2층 나눠 동양화와 서양화를 전시하다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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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화의 원년인 1970년 4월 4일, 인사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화랑인 '현대화랑'(관훈동7)이 문을 열었다. 역사적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에 시작된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출발은 결코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나중에 '갤러리현대'로 이름이 바꿨다. 미술 분야는 무엇보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갤러리현대'의 역사는 한국 현대미술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갤러리는 70년대부터 한국 작가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났다. 앞으로 한국현대미술의 플랫폼으로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 서게 되었다.

최근 갤러리현대 5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1부는 끝났지만 2부가 본관과 신관에서 7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이 화랑을 연 사람은 27세였던 박명자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이다. 당시에는 미술품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없었다. 박 회장은 '반도화랑'에서 8년간 일했다. 그때 작품 보는 안목을 키웠다. 이 화랑은 '농원(farm) 화가'로 유명한 이대원 선생이 인수해 운영했었다. 박 회장은 전시공간 이해와 전시방식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현대화랑은 1970년 '김기창, 박수근' 전을 열었다. 1972년 '이중섭' 전과 1973년 '천경자' 전(주제 : 꽃과 여인)을 열었는데, 대성황을 이뤘다. 그런데 박 회장은 이응노 화백과 편지 교환을 하다가 '전시장이 너무 좁다는 말'에 자극 받는다. 이후 삼청동에 마침 싼 땅이 생겨 1975년에 구입, 화랑을 이전했다.

50주년 특별전1, 본관 및 신관
 
 이우환 70년대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그리고 '관계항'
 이우환 70년대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그리고 "관계항"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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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갤러리 역할이란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작가와 애호가 사이의 가교를 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1부 참여 작가 면모를 보면 놀랍다. 한국의 유명 화가라면 갤러리현대를 거쳐 가지 않은 작가가 거의 없을 정도다. 한국현대미술의 거장인 '김환기, 천경자, 이중섭, 박수근'은 물론이고 단색화 계열의 '윤형근, 이우환(위), 박서보, 김창열, 정상화' 등도 있다. 한국미술 작품 중 최고가인 132억 원으로 낙찰된 김환기 <우주>까지 특별 대여를 통해 선보였다.

그밖에 곽인식, 권영우, 권옥연, 김기린, 김기창, 김상유, 남관, 도상봉, 류경채, 문신, 문학진, 박고석, 변관식, 변종하, 서세옥, 성재휴, 신성희, 오지호, 유영국, 윤중식, 이대원, 이상범, 이성자, 이승조, 이응노, 임직순, 장우성, 장욱진, 존배, 최영림, 한묵 등이 참가했다. 
 
 백남준 I '보이스 추모굿' 1990년. 백남준 상징인 TV와 피아노 그리고 보이스 상징인 모자가 보인다.
 백남준 I "보이스 추모굿" 1990년. 백남준 상징인 TV와 피아노 그리고 보이스 상징인 모자가 보인다.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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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시에선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백남준이 황금사자상 받은 <마르코폴로>가 인상적이다. 그는 갤러리현대와 인연이 깊다. 1986년 백남준과 '유라시아 작가'로 호형호제하던 보이스가 사망하자, 그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스추모굿(위)'이 이곳 뒷마당에 펼쳤다.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파리대 교수는 이를 알고 서울로 와 이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찍어 전 세계 알렸다. 그래서 갤러리현대도 더 유명해졌다.

그날 '만신' 김금화 선생도 백남준 굿에 참관했는데 자신보다 한 위라며 백남준을 극찬했다고. 이 추모굿 퍼포먼스 끝나고 사람들이 다 귀가한 뒤, 몇 분쯤 지났을까? 느닷 없이 천둥번개가 치고 주변이 정전되었단다. 뒷마당에 키 큰 고목나무가 부러지자, 백남준이 혼잣말로 '보이스가 다녀갔네!'라고 말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결국 백남준의 굿 퍼포먼스와 함께 갤러리현대도 같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백남준은 1995년 여기서 세계 수준의 '예술과 통신' 전도 열렸다. 그는 '정보아티스트'로서 가장 '빠르게, 쉽게, 싸게' 유통하고 소통하는 방식에 방점을 둔 작품을 발표해왔다. 결국 인류가 다 같이 참여하고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백남준 I '인도는 수레를 발명했지만 플럭서스는 인도를 발명했다' 406×160×233.7cm 1991. 백남준 갤러리현대 '예술과 통신(1995년 9월)' 전시 중 한 작품
 백남준 I "인도는 수레를 발명했지만 플럭서스는 인도를 발명했다" 406×160×233.7cm 1991. 백남준 갤러리현대 "예술과 통신(1995년 9월)" 전시 중 한 작품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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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백남준과 만남 후 "그는 작품을 팔아 번 돈을 전부 다음 작품 제작에 다 쏟아 붓는 분이다. 경제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돈에 관심을 두는 걸 안 좋게 보는 분도 있지만 그에겐 작업비 마련이 심각했다. 우리정부가 하루빨리 기념관을 만들어드리고, 돈 걱정 없이 작업에만 몰두하게 할 독지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50주년 특별전2, 본관: 1-2층

50주년 2부, '본관' 1~2층에서는, 시대 조류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5명의 실험미술가 이승택, 곽덕준, 이강소, 박현기, 이강소 작가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신관'​​ 1·2층과 아래층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작가와 이 미술관을 거쳐 간 외국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했다.

특히 본관 전시는 2세대 '도형태' 대표의 특별 기획이다. 도 대표는 뉴욕대 등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 그 관점을 확장했다. 도 대표는 경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미술가들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그런 노력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승택 작가의 1958년 작 <고드랫돌>과 이건용 작가의 1975년 작 <장소의 논리(퍼포먼스 사진)>가 2013년, 2016년에 런던 테이트미술관에, 또 1978년 작 박현기 작가의 <무제(TV돌탑)>가 201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됐다.
 
 2019년 베니스 '팔라초 카보토(Palazzo Caboto)'에서 열린 이강소'생성'전 풍경 3층
 2019년 베니스 "팔라초 카보토(Palazzo Caboto)"에서 열린 이강소"생성"전 풍경 3층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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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갤러리의 노력은 국내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이뤄졌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중 그 곳 '팔라초 카보토'에서 '이승택(1932년생)' 전을 열었다. 이 작가는 50년대 후반부터 '비조각'이라는 자신만의 개념으로 실험미술에 도전해왔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비미술물질인 옹기, 고드랫돌, 노끈, 각목 등을 오브제로 애용해왔다. 이번 50주년에도 다수 작품이 나왔다.

그리고 2019년에도 같은 미술관에서 '생성'이라는 제목의 '이강소(1943년생)' 전이 두 달간 열렸다. 세계미술인에게 우리 작가를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이강소는 1970년대 '신체제', 'AG(아방가르드)그룹' 주도하며 실험미술을 이끌었다. 한국의 정신적 가치를 포함한 멋과 풍류의 태도 등 유희정신을 중시해 서양미술과 차별화를 보인다. 

또한 이강소와 비슷한 세대인 '박현기(1942-2000)' 작가가 있다. 그는 국내에서 돌, 나무 등을 TV와 병치하는 작업을 영상에 담아 건축적 설치와 결합시켰다. 건축과 회화를 공부한 그는 특정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조각, 설치, 퍼포먼스, 포토미디어 등을 실험했다.
 
 박현기 I '무제(TV 돌탑)' 1978-1980
 박현기 I "무제(TV 돌탑)" 1978-198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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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일본국적으로 살다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년)으로 일본국적을 박탈당한 '곽덕준(1937년생)' 작가, 그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세계의 구조와 질서로 '난센스의 미학'으로 잉태시켰다. 이러한 창작의 경향과 태도는 당연히 그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연결했다.

'미술의 본질은 뭔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작가로는 '이건용(1942년생)'이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매체임을 깨닫는다. 등지고 그리는 '신체드로잉'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흔적 남기에 더 치중한다.

50주년 특별전II, 신관: 1~2층과 아래층

그리고 신관 1~2층에서는 그동안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한 외국작가를 소개한다.

경쾌한 색채에 착시와 울림 주는 '헤수스 라파엘 소토', 유머와 장난기로 넘치는 네운 아트의 거장 '프랑수아 모를레', 작가의 일상을 일기처럼 아카이브를 만들며 시간과 실존을 묻는 개념주의 작가 '카와라' 그리고 이미지와 오브제 사이의 관계를 감각적 색과 형태로 탐구해온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작품 등도 선보인다.
 
 왼쪽부터 '헤수스 라파엘 소토',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로버트 인디애나', '사라 모리스' 그리고 '아이웨이웨이'(신관1층 전시장)
 왼쪽부터 "헤수스 라파엘 소토", "마이클 크레이그-마틴", "로버트 인디애나", "사라 모리스" 그리고 "아이웨이웨이"(신관1층 전시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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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독일 사진가 '토마스 스트루스'가 찍은 북서동 평양풍경과 3차원에서 5차원 공간을 오가는 '프레드 샌드백'의 실조각, 구름형상에 공중부양으로 유토피아적 미래개념을 결합한 '토마스 사라세노'의 설치도 선보인다. '거미작가'로 불리는 그는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높다.

고양이의 플라스틱 장난감을 중국전통방식으로 재조립한 '아이웨이웨이'의 나무조각, 인물화의 새 열풍을 일으킨 중국 '쩡판즈'를 소개한다. 또, 2층에서는 유일한 한국작가로 '문경원&전준호'의 '카셀도쿠멘타' 출품작 <이례적 산책: 황금의 연금술>도 국내 처음 공개된다.

신간 지하층에 내려가면 '강익중(아래)' 작품이 보인다. 일상에서 깨달은 지식과 지혜를 3×3인치 판에 담았다. '아이들 그림은 작은 창이다', '사랑은 바람으로 전해진다' '아무리 긴 시간도 지나면 순간이다' 등의 재치 넘치는 경구가 흥미롭다.
 
 벽면: 강익중 I '내가 아는 것', 바닥면: 이슬기 I 'U: 쥐죽은 듯 U: 나비의 꿈'(신관 아래층 전시장)
 벽면: 강익중 I "내가 아는 것", 바닥면: 이슬기 I "U: 쥐죽은 듯 U: 나비의 꿈"(신관 아래층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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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20년)' 최종후보인 '이슬기(위)'와 경이로운 느낌을 주는 '유근택', 유한 속에 무한을 그리는 '도윤희', 한지에 아주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기법을 동시에 구가하는 '김민정', '사진매체의 통해 자연과 우주를 깊게 사유하게 하는 '이명호' 사진작가의 <나무> 연작이 소개된다.

텍스트, 이미지, 음악 요소를 감각적으로 잘 버무려 만든 영상으로 시대를 풍자한 <장영혜중공업> 작품도 선보인다. '최우람'의 모바일 아트 <One:이박사님께 드리는 답장>은 코로나 시대 흰 꽃이 피고 짐을 통해 생로병사를 성찰케 한다.

그리고 이 전시가 끝나면 '최민화' 인물화 전이 9월에 열린다. 갤러리로서는 획기적 전시다. 이런 작가를 소홀히 한데 대한 미안함도 포함된 것일까. 최 작가는 1983년부터 '민화(民花 민중은 꽃)'라는 예명을 써왔다. 고난의 역사 속 생명의 부활이 그 주제다. 근현대사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면서 한국적 미의 영토를 넓혀왔다. 곧 그만의 핑크빛 인물화를 보게 됐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현대 홈페이지 https://www.galleryhyundai.com/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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