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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 뒤로 '목숨 바쳐 구한 나라, 굳게 지키겠습니다'라고 적은 백드롭이 보인다.
▲ 김종인 "목숨 바쳐 구한 나라, 굳게..."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6·25 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 뒤로 "목숨 바쳐 구한 나라, 굳게 지키겠습니다"라고 적은 백드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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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간담회 자리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언급했다던 '백종원 대통령(감)' 발언을 두고 언론들이 의도 파악에 분주하다. 기존 통합당 대선주자들을 겨냥한 '메기효과 노림수'라는 해석도 있고, 스스로 대통령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견해도 있다.

의미 없는 농담인지, 말 속에 뼈를 숨긴 진담인지, 본인 말고는 알기 어렵다. 그와중에 언론은 '김종인' '백종원', 두 키워드를 엮은 기사를 쏟아냈다. 통합당 입장에서는 언론플레이에 성공한 셈이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니. 

백종원씨를 느닷없이 대통령감으로 소환한 해프닝은 결코 즐겁지 않다. 거부감 없는 유명인을 언급하면서 대선을 치르겠다는 발상. 경제민주화 공약을 잘 포장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었던 지난 과오에 대한 책임보다는 '킹메이커'라는 우쭐함마저 보인다.

백종원씨를 폄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백종원씨가 방송인으로서 만들어낸 긍정의 이미지만 차용해 변화의 모양새를 보이려는 꼼수가 가관이라는 것이다. <골몰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백종원씨가 누누이 강조한 것은 청결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자세다. 

'백종원' 같은 음식을 미래통합당이라는 그릇에 담아 국민의 밥상에 내놓는다? 선뜻 구미가 당기는 조합은 아니다. 총선 이후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고 공언했던 미래통합당. 그러나 변화보다 '총선에서 졌으니 대선은 악착같이 이겨야겠다'는 욕심만 돋보인다.

"백종원 같은 분은 어때요?"... 이러면 진짜 큰일 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백종원 대통령감' 발언은 설거지도 안 된 그릇에 새 음식을 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김종인 체제의 미래통합당, 변화·쇄신하겠다는 소리만 요란할 뿐 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달라진 게 없이 진부하다. 정치가 왜 필요한지, 야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구체적인 행동이 없으니 유권자 상당수가 새누리당·자유한국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정당이 대권을 잡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이같은 정서는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보수야당 후보군의 선호도는 여당 후보군의 그것에 비해 많이 뒤처진다.

설령 백종원 같은 '대중적 호감도가 높은' 사람을 후보로 세운다고 해도, 그것은 제2의 '이명박근혜'를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 백종원씨가 방송에서 자주 하는 멘트처럼 '이러면 진짜 큰일' 난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참패했다. 패배의 원인을 둘러싸고 많은 분석이 있었지만 한결같은 지적은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부패와 탐욕, 막말은 선거과정에서 반성되긴커녕 더 크게 불거져 유권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총선 이후 비상대책위 체제를 두고 내부분열이 있었다. 결국 주호영 원내대표의 간곡한 요청에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총선 총괄상임선대위원장으로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가 다시 구원투수로 등판할 수 있었던 것 쇄신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선거왕' '킹메이커' 역할에 대한 기대라 할 수 있다.

교통정리 없이 메시지만 던지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지는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주호영 원내대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지는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주호영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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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취임한 지 1개월이 채 안 됐지만, 숱한 뉴스를 만들어냈다. '보수'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거나, 빵 사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언급하며 기본소득을 공론장으로 끌어냈다. 이런 모습은 일면 보수정당에 신선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김종인식 변화'가 여전히 통합당의 쇄신을 견인하진 못하고 있다. 원인은 김종인의 리더십에 있다. 보수라는 용어는 통합당 입장에서는 정체성의 문제고,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통합당에서 구체적인 입장이 정리되지도 못했다. 교통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는 이야기다. 그저 '위원장 말씀대로' 흘러가는 정당은 당내 소통이나 정당 민주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장제원 의원이 김종원 비대위원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지만, 비판이라기보다 "시비" 거는 것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짜르(김종인의 별명) 리더십'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특허처럼 사용되는 용어다. 2011년 박근혜 비대위에 참여, 경제민주화 공약을 입안해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2016년 민주당 대표로 총선을 지휘했다. 여야를 오가면서 경제민주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공을 적다곤 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민주화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 탓만도 아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갈라선 이유를 '경제민주화 약속의 불이행'으로, 문재인 대통령과의 결별 이유를 '셀프공천 비난에 대한 모멸감'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공약을 떳다방 매물처럼 띄우기만 급급했던 그의 책임도 없진 않다.

기본소득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슈를 선점해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심산이라면, 기본소득은 경제민주화 공약처럼 정치권에서 표류하는 표몰이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편적 복지에 인색한 통합당 안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해서 정책으로 입안하는 게 위원장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슈 파이팅 방식으로는, 국회 문턱은 고사하고 당내 반발만 키울 뿐이다. 

'킹메이커' 욕심보다 보수정당 개혁의 길을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뒷모습)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에 반발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전국 사찰을 돌며 잠행했던 주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신임을 얻어 복귀했다.
▲ 긴급 비상의총 연 주호영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뒷모습)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에 반발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전국 사찰을 돌며 잠행했던 주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재신임을 얻어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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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은 난국에 처해 있다. 당 쇄신은 더디고 지지율 회복도 느리다. 게다가 국회 원구성 문제를 두고선 20대 국회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직을 둘러싼 원내대표의 칩거와 국회 태업은 실망스럽다. 여당 탓도 없진 않겠다. 법사위원장이 아니라면 모든 것을 받지 않겠다는 그간의 태도는 결국 법사위원장의 권한을 개혁입법 저지에 쓰겠다는 것과 같다. 21대 국회에서 '버럭' 법사위원장의 출현은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25일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회로 복귀했지만 국회 상임위 배정 명단 제출을 거부하며 국회정상화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입장이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볼 수 있다고 하니 마음대로 하라"는 주호영 원내대표의 말에서 태업의 연장이 감지된다.

이런 와중에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대중의 시선이 몰리는 이유는 당의 대표자로서 국회정상화에 나서달라는 데 있다. 그러나 그에게 국회정상화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듯하다.

최근 법사위에서 나온 여권 의원들의 '윤석열 비판'에 25일 김 비대위원장은 "정치권에서 제발 좀 쓸데없는 언행은 삼갔으면 좋겠다"라면서 "과연 대한민국이 민주국가 원칙을 제대로 사수하려는 나라인가 의심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3권분립을 확립하고 많은 노력을 경주해서 오늘날 한국 사회를 민주화했다"라며 "그런데 최근 일련 사태에서 자기 직군을 성실히 수행하려 애쓰는 검찰, 감사원장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나 듣기 딱한 언사를 행사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기 직군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이의 대표주자가 바로 국회의원이다. 국회 본연의 입법 기능은 원구성 협상 불발로 빛이 바랜 지 한 달 가까이 되고 있다. 이 사태의 중심에 통합당이 있는데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눈엔 그게 보이지 않는 걸까.

이제 대선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제1야당의 '킹메이커' 역할이 중요할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비상 상황에 놓였다고 말한 통합당에게 요구되는 제1가치는 '당의 정상화'다.

당을 바로잡고, 국회를 정상화시켜 대중의 호감을 사야 할 판국에 대중친화적 인물을 언급하면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모습은 의아하다. 이제 인물을 앞세워 대통령을 만들던 시대는 지났다.

"나이 80살을 먹었는데 지금 또다시 정치판에 뛰어들어서 누구를 돕거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라던 그였다. 다시 정치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왕 다시 뛰어든 정치, 킹메이커 역할보다는 당부터 바로잡는 게 주어진 임무 아닐까. "백종원씨 같은 분은 (대통령으로) 어때요?"라는 발언은 농담이라 하더라도 '킹메이커' 욕심으로 오해받기 딱 알맞다.

태그:#김종인 위원장, #백종원,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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