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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 올해 빨간 양파 수확하면 겨울에 연탄기부금 마련 바자회 때 기부할게요. 양파를 사실 분들은 모 일에 직접 오세요. 10알에 무조건 1만 원입니다."

6월 초 어느 날, 행복나눔텃밭의 왕고참 회원 대준씨가 텃밭밴드에 올린 메시지는 나를 감동시켰다. 삼년 전 처음 만난 대준씨는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다. 처음엔 눈치를 봤지만, 오랫동안 지켜보니 양념 하나 되지 않고 담겨 나온 겨울철 동치미 속 무우 같은 진한 뚝성이 있었다.

대준씨네 텃밭은 행복텃밭에서 가장 우수하다. 기르는 작물마다 수확이 좋고, 땅과 하늘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인을 만난 덕이다. 농군의 첫번째 요소인 부지런함도 가히 일등이어서 대준씨가 뿌리는 씨앗들 덕분에 공짜로 모종을 받기도 했다. 작년에도 나는 공짜로 들깨씨, 당근씨에서 나온 모종으로 큰 덕을 보았다. 텃밭에 가면 언제나 나의 눈은 대준씨네 밭을 살펴보기 바쁘다. 농사 시험 점수 잘 받고 싶은 맘에 컨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였던 지난 21일, 내 일정표에 빼곡히 써 놓은 일 중 가장 첫 번째가, 바로 대준씨네 빨간 양파 수확 현장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밴드 공지 이후 10여 명의 회원들이 서로 양파를 사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무조건 수확 날 새벽에 현장에 나온 사람만 가져갈 수 있다고 엄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양파를 사기도 하는 판에, 자신의 첫 양파 수확을 기부한다니, 바자회를 준비한다는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4월 오마이뉴스에 '사회적 거리를 채우는 지혜, 이곳에 있었네'라는 제목으로 희망텃밭과 기부바자회 이야기를 전했다(관련 기사). 겨울철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마련 기부금 행사는 올해로 5년차다. 3년 전부터 바자회 형식으로 학생, 학부모들과 먹거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연탄을 마련한다. 텃밭의 작물들을 팔아서 기부금에 보태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올해 준비하는 연탄은 약 1200장, 수혜자 4가구 수 분량이다. 5년 전 연탄 한 장에 450원 하던 것이 해마다 올라 작년에는 750원이었다. 올해는 최소 90만 원 모금이 목표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엄청나지만, 올 봄처럼 황사 없는 맑은 하늘과 적절한 비를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에 희망텃밭가족들은 양파와 감자를 가지러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대준씨네는 각자 가져갈 빨간 양파를 봉투에 넣고 덤으로 몇 개를 더 주었다. 시중에 쏟아지는 양파 시세에 비하면 당연히 적은 양이지만, 첫 수확 판매금을 전액 기부금에 전하겠다는 대준씨의 나눔 의지가 회원들에게 전염됐다.

나도 4월에 텃밭농부 초보딱지를 뗄 겸 강원도산 수미 감자씨를 심었다. 감자씨 싹이 다치지 않게 땅 구멍에 쏘옥 넣는 법도 배우고, 감자꽃도 따보고, 번성하던 감자 잎과 줄기도 자세히 보았다. 하짓날이 가까워오면서 신기하게 시들어가는 감자 잎과 줄기를 보면서 자신의 소명을 다한 생물체에게 경외심이 생겼다. 저 아래에는 정말로 감자가 있을까? 얼마나 많이 달렸을까? 감자 밭 두렁 옆의 잡초를 뽑으면서 하짓날 캘 감자를 상상하는 온전한 행복을 느꼈다. 드디어 그 감자를 캐는 것이었다.

옆 밭의 미옥이 언니는 호미질 한 번에 씨알 굵은 감자 두서 개가 우두둑 걸려나왔다. 언니와 나는 동시에 마을을 들었다 놓는 고함소리를 질렀다. 바로 옆 두렁 가경이네 감자는 벌레 먹은 것이 많다고 버린 것도 제법인데, 언니 것은 어찌나 토실거리고 윤기가 좌르르르 한지. '이럴 때가 아니지. 내 것도 한번 파 봐야지.' 내 감자밭으로 갔다.

푸르렀던 잎과 하얀 꽃의 영화는 온데 간데 없고, 제 살을 모두 감자알에 준 듯이 초연하게 쓰러져 있는 누리끼리한 감자 줄기를 거둬냈다. 코알라님의 감자 캐는 방법-Y자로 흙을 살살 제켜야 된다-을 들으면서 호미질을 하니 갓난아이 주먹만한 감자 한 알이 딸려 올라왔다.

"오 마이 갓. 내 것도 있어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호미질 십여 차례에 감자 알 20여 개를 건졌다. 일차로 감자 맛이 어떤지 궁금해서 집으로 가져와 튀김과 볶음을 했다. '백설기 떡의 꼬들꼬들한 촉감에 솜사탕의 간질거리는 부드러움이 합해져 맛이 끝내줘요'. 나도 연예인들이 하는 맛집 광고처럼 멋들어진 평가를 하고 싶었다.

다음날 새벽 5시, 친정엄마와 함께 감자 두 두렁을 모두 캤다. 겉보기는 그럴싸한데 벌레 먹은 흠이 역력한 감자들은 모두 버려졌다. 다른 건 몰라도 감자 섞은 것에 욕심내면 동토 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까지 들으면서 아까운 마음을 접어야 했다.

수확량은 60여kg. 친정엄마는 첫 개시 작물을 사면 복이 온다면서 20kg 한 박스를 기분 좋게 사 주셨다. 나머지는 내 양팔저울로 재서 감자를 신청한 지인들의 봉투에 담았다. 서비스로 양파 두 알, 가시오이 두 개, 상추 등을 넣어서 배달했다.

대준씨의 양파 판매금은 10만 원, 나의 감자수확금은 6만 원. 총 16만 원의 연탄기부금이 마련되었다. 이 돈이면 연탄 220장을 살 수 있다. 올해 목표했던 연탄 수는 1200장인데, '텃밭팀의 나눔으로 수혜가구 수가 늘어날 것만 같은 이 오지랖을 어쩐다냐'라며 혼자서 즐거운 고민을 했다. 올해 연탄 마련을 위한 기부금의 첫 테이프 절단식이 거행되니 새벽의 기상이 즐겁고, 하루의 일상이 고맙고 행복했다. 사람이 없으면 어찌 사랑이 있을 것인가를 되뇌면서.

수요일부터 시작된다는 장마예보에 아직 감자와 양파를 캐지 않은 회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올해 초보 농군으로 엄마표 현장교육을 자처했던 지숙씨네 감자와 양파도 탱글탱글, 사진만 보아도 지숙씨의 함박웃음이 청암산 자락을 흔들고 있었다. '정말 나에겐 감격이고 감동이다. 맘껏 줄 수 있는 기분은 뭐랄까. 나눌수록 기쁨이 배로 커지는 것 같다. 필요한 분 말씀하세요'라는 댓글을 보며 내가 눈물 나게 행복해지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두어 시간 후,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태 아저씨의 알림이 울렸다. '감자 캤는데 비와 섞여 흙이 많이 묻었어요.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지'. 이어 '그늘에서 잘 말려 흙이 제거하고 보관하세요. 물로 씻으면 안 되고요'라는 최 아저씨의 조언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딩동! "감자 알 큰 것은 모니카네 바자회 기부로 드려요." 비 오는 저녁 8시, 학원까지 직접 감자를 들고 온 태 아저씨에게 기부해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했다. "맛있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텃밭 농사 3년, 모든 회원이 손수 키운 작물에 사랑을 퍼붓더니, 이제는 나눔의 물독이 차고 넘친다. 나는 일처럼 기부를 준비하지만 그분들은 숨 쉬듯 나눔을 실천한다. 이 고마운 사랑법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더불어 살자'라고 말하는 자연을 보고 살아가는 지혜에서 왔겠지. 희망의 기적이 따로 있나. 나누는 사람만이 매일의 기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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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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