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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사람 안사람, 집안일과 바깥일 같은 기준은 누가 정해둔 건지. 그 둘 사이에 우선순위나 중요도 같은 게 있는지 모르지만 내겐 바깥일이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집안일 따위 아무나 아무 때나 하면 되는 게 아닌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어린 시절, 우리 식구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다세대주택 지하에 살았다. 아마도 30년 전 다세대주택의 지하방에는 화장실 배수 처리 및 설치가 어려웠는지 위층 이모네 집에는 있는 화장실과 변기가 우리 집에는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볼일을 보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해 들은 기억이 난다. 위생적이지 않은, 화장실 없는 지하실에 살아야 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우리 가족에게는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 채비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부모님 두 분 다 바깥일을 하셨고, 집안일은 대충 적당히. 우리 가족에게 집은 일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 요리나 인테리어 같은 집안일을 할 여유 자체가 없었고, 그저 간편하게 조리해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 - 이를테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소꼬리 곰국 등 - 을 주로 만들어주셨다.

요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간편한 음식인 유부초밥이나 떡볶이조차 집에서 먹어본 적이 없었고, 분식집에서 사 먹어야 하는 음식인 줄 알고 자랐다. 가끔 친척집이나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경험한 집안 분위기 같은 게 특별하게 느껴졌지만, 우리 집에서도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 식구는 꽤 오랫동안 다중주택의 지하, 다가구주택의 단칸방, 원룸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내 방이 생겼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저학년 때까지 채널 돌리는 손잡이가 망가진 흑백텔레비전을 봤다. 손잡이가 빠지기라도 하면 다른 채널을 볼 수도, 돌릴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년 즈음, 원양어선에서 일하느라 비교적 큰돈을 만질 수 있던 작은 아버지께서 선물해주신 첫 컬러텔레비전이 기억이 난다. 비디오와 텔레비전이 결합된 모델이었다. 주말 저녁 텔레비전 앞에 누워 측천무후나 포청천 같은 드라마를 보는 게 우리 식구의 유일한 여가생활이었다.  

20평대의 아파트에 살게 된 건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먹고살아내야 하는 삶의 중요함을 보고 자라온 탓에 저축이나 절약 습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릴 때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 생활하는 내내 취업 준비를 했다. 2학년 1학기부터 자격증 취득과 취업을 위한 학원을 다녔다.

요즘 대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취업 준비를 한다지만, 20여 년 전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학생 중 취업을 준비하며 직업 관련 학원을 다니는 2학년은 우리 과에 나 혼자였다.

4학년 1학기 무렵 '취업뽀개기' 같은 포털 사이트 카페의 도움을 받아 취업을 준비했고, 2004년 1월,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취업에 성공했다. 회사나 업무의 비전, 나의 적성보다는 취업이 먼저였다. 나도 바깥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입학했고, 4학년 겨울방학에 취업했으니 만 22살에 직장인이 된 셈이다. 모든 것이 빨랐지만, 모든 상황이 좋진 않았다. 첫 직장을 9개월 만에 그만두었고 다음 직장도 만 2년 만에 그만두었다.

24살부터 10년 동안 약 10곳의 기관, 단체,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하다가 30대 중반부터 자영업자가 되었고, 만 6년째 여전히 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하나의 직업에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끈기와 성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고 있다.

자영업자로 살게 되면서부터 내 삶의 균형을 이루는 건 내 몫이었고, 그래야 일도 다른 것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 말고 취미 생활에 눈을 떴다. 러닝, 클라이밍, 요가와 수영을 배웠다.

운동하며 한껏 땀을 흘려야 다음날도 상쾌한 컨디션으로 일할 수 있으니까. 독서모임이나 교육 연구모임도 꾸준히 참여했다. 일 말고 다른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지만, 그 역시도 일을 잘하기 위해 업무에 도움이 되는 도전을 한 거니 일의 연장선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업무와 외출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줄어든 지금,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운동, 독서모임, 교육 등의 인간관계도 멈췄다.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웠고 불안했고 힘들었다.

막막한 몇 주를 보내다가 계절 옷을 정리하면서 이상한 쾌감을 느꼈고, 집안일을 재미있게 하는 요령도 생겼다. 끼니를 때우기 위한 먹는 행위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양배추용 채칼로 양파를 썰면 음식점에서 볼 수 있는 얇은 양파 채가 만들어진다.

샐러드, 샌드위치, 오이냉국에 넣으면 맛이 배가 된다. 말린 다시마를 찬물에 담가 놓고 불린 후, 국과 찌개 육수를 만들 때 썼다. 다시마 조각을 찌개에 넣고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나오니 진득한 액체만 넣는 게 맛이 좋았다.

그 물을 밥 물에도 넣으면 밥알에 윤기가 생긴다. 쌀뜨물은 육수 낼 때 다용도로 사용 만점이다. 하지만 상온에 보관 시 쉽게 상하니까 바로 쓰거나 냉장고에 보관하는 편이 좋다.

매직블록으로 화장실 물 때와 가스레인지 옆 타일의 찌든 때를 닦았다.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곳이 깨끗해지니 기분도 좋아졌다. 세정력과 향기가 좋은 세탁 세제를 주문했고, 난생처음 이불 빨래를 했다. 깨끗하고 쾌적해진 집안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색다른 즐거움을 경험하고 있다.
 
(왼쪽 부터) 개업식 때 선물받은 이름 모를 식물과 라탄 바구니, 다육식물과 토분, 개업식 때 선물받은 식물의 어린 싹, 새로 산 유칼립투스와 토분.
▲ 새로운 취미가 생기다. (왼쪽 부터) 개업식 때 선물받은 이름 모를 식물과 라탄 바구니, 다육식물과 토분, 개업식 때 선물받은 식물의 어린 싹, 새로 산 유칼립투스와 토분.
ⓒ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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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유칼립투스와 예쁜 화분을 사 왔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다. 개업식 때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이름 모를 식물과 홍보 이벤트로 사용하고 남은 다육 식물에 물을 주는 게 전부였는데, 다양한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남들처럼 예쁜 식물 화분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라탄 바구니를 사고, 흙을 사고 유칼립투스를 샀다. 비닐이나 신문 받침 없이 맨손으로 화분갈이를 하느라 온 집안에 흙가루가 날려 난감했지만, 물빠짐이 좋아진 상태 좋은 화분을 내가 정리했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다.

집안일과 바깥일 모두 중요하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우선순위 저 뒤쪽으로 밀려있던 집안일이 재미있다. 요즘도 여전히 업무가 많지 않은 상태이지만, 돈을 벌 수 없어서 힘들거나 두렵진 않다.

특별하지 않는 소소한 일상으로 바쁘다. 할 일이 많아서 쫓기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즐겁다. 앞으로도 집안일이 쭉 즐거울지 조만간 흥미를 잃게 될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티 나지 않는 집안일을 하는 재미가 있다.

어릴 적부터 경험해온 경제적 어려움으로 취업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는 내 인생 중심 잡기는 알지 못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건강을 해치고 균형을 잃은 채 오직 '일일일'만 하는 삶을 살다가 불시에 찾아온 위기 덕분에 삶과 직업의 적절한 조화가 이룬 삶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기 위해 살았다면 또 다른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집안일이라는 새로운 취미생활이 생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와 buk.io(북이오)의 채널 '프리즘'에도 실립니다.


태그:#집안일, #화분갈이,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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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를 즐깁니다. 사는 이야기, 생각과 일상을 기록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저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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