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3 08:34최종 업데이트 20.06.2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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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9일,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가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대선 후보캠프에 묻는다-정치제도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진보정의당(정의당)과 노회찬 그리고 사민주의

노회찬이 이전과는 달리 사회민주주의(아래 사민주의)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호명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은 뒤 진보정의당을 창당(2012.10.18.)하면서부터였다.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이 21세기 한국사회에 필요한 진보노선인가."

2013년 1월 14일 진보정의당 13차 최고위원회에서 당대표 노회찬이 모두발언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지금 제 2단계 창당을 앞두고 있는 당사자로서 진보정의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바는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정체성이 지금과 같이 애매하거나 또는 왜곡되기 쉬운 그런 지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낡은 이념논쟁으로 회귀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던 이념적 재단으로 앞길을 헤쳐나갈 수는 없지만, 하나의 현실로서 무엇이 21세기 한국사회에 필요한 진보노선인가에 대해서 보다 더 명확하게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저는 진보정의당이 이제 낡은 진보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면서 진보정의당의 노선, 활동방식에 있어서, 그리고 국가경영방식과 관련해서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는 길로 나설 때만이 한국정치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앞서 진보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소장 조현연) 주최 1차 집담회(2013.1.7.)에서 발제를 맡은 박상훈(후마니타스 대표)은, '진보의 정당 만들기: 실패에서 더 나은 새 출발로'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보수와는 달리 진보는 실력이 없으면 정치적으로 성장하기가 어렵다"라고 하면서 진보정의당은 사민주의를 전면적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진보정의당이 공유하는 이념과 가치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이제 진보라는 개념으로 그 내포와 외연을 명확히 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표현은 일종의 잔여적 개념이었다. 이념적 언어가 자유롭지 못한 조건에서 어쩔 수 없이 채택된 면이 크다.

... 왜 한국의 진보세력들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소극적인지 참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보편적 사상과 이론으로 이미 갖춰져 있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확고한 성공 사례로 자리 잡고 있는데도, 다른 무슨 이념성을 갖고자 사민주의를 피해가려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앞선 경험으로부터 배워 학습의 비용을 줄일 수도 있고, 국제적 연대도 용이하고 등등 수많은 장점이 있는 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당 리더십이 확고해지고, 당 관료제도 안정화되고, 이념적 합의도 사민주의로 구체화된다면, 당 내 교육과 정책 프로그램 개발에 드는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교육 자료를 참조할 수 있고 그간 그들이 국가와 사회,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진보정당이 자신의 이념적 내용은 사민주의로 정의하는 데 주저거리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2013년 1월 7일 국회의원회관 신관에서 열린 '18대 대선, 박근혜 정부 5년, 그리고 진보정당' 토론회 당시 모습. ⓒ 진보정의당

 
"'한국형 사회민주주의'를 정립하자"

2013년 1월 25일 진보정의연구소의 2차 집담회에서 노회찬은 주제발표('진보정치의 위기와 정체성 찾기')를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진보정의당 2단계 창당의 방향과 계획에 대해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서 우리가 보장하는 한국의 미래모델과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자. 그것이 바로 한국형 사회민주주의를 정립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제까지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선거를 통한 권력의지의 실현, 추구하는 가치와 표명하는 정책들로 볼 때 일종의 사민주의 정당으로 분류되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나 지난 시기 국가사회주의와 사민주의 진영 간의 오랜 반목과 대립의 역사에 갇혀 사민주의를 살아있는 정치과정과 미래계획으로 다루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이제 이런 낡은 금기로부터 진보정당을 해방시킬 때가 됐다. 진보정의당 당간부 의식조사에서 북유럽의 스웨덴모델에 대한 호감도가 90%를 넘는 현실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우리가 갈 길이 전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 과연 솔직한 태도인가? 사회민주주의는 나라 수만큼 다양하며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서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에 기반해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온 여러 시도와 그 결과물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강한 노동과 넓은 복지 그리고 생태와 평화의 존중이다. 민주주의에 철저하게 기반해서 자본주의의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원리가 낳는 폐해를 극복하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우리의 신념이다. 현대적 진보정당이 하나의 사상, 유일사상을 강요할 수는 없다. 최대강령으로서의 이념적 지향은 각자의 몫이며 당은 다원적 민주주의로 이의 공존을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복지국가를 열어나갈 책임있는 진보정당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의 정당을 이루는 공통분모이며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우리의 최소강령이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서 우리가 보장하는 한국의 미래 모델과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자. 그것이 바로 한국적 사회민주주의를 정립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이남신(한국비정규센터 소장)은 이렇게 토론한다.
 

2013년 1월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진보정의당의 정체성 찾기' 당시 모습. ⓒ 진보정의당

 
"학창 시절부터 엔엘-피디(NL-PD) 논쟁구도가 가장 경멸했던 것은 사민주의였다. 사민주의는 기회주의, 수정주의, 합법주의, 개량주의, 반혁명주의로 정말 나쁜 것으로 인식됐다. 저도 최근 2~3년 전에야 사민주의를 새로 고민하게 됐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건데, (사민주의는) 제 현장 투쟁의 경험 속에서 몸으로 체득했던, 그리고 이게 우리가 가야 할 전략적 지향이라고 나름대로 직감으로 느꼈던 것들을 가장 잘 담은 정치적 이념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지향하고자 하는 전략적 방향이 진보 정치, 특히 민주노조 운동이 가고자 했던,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그런 사회상을 가장 뚜렷하게, 이념적 수준에서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진보정치가 무기력하게 낡은 질서에 붙잡히고, 왜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가 이런 담론에 붙잡혀 있어야 하느냐. 사민주의 깃발로 진보정치에 실사구시 중심의 문제의식이 깃들기를 바란다."


사회민주주의, '정의당이 지향해야 할 정치이념'

2010년 홍세화와의 인터뷰, 2014년 구영식과의 인터뷰 등에서 잘 나타나있듯이, 노회찬이 사민주의와 관련해 언급하는 나라는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사례였다.

"선생님처럼 긴 기간에 많은 외국 경험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짧은 기간에 여러 나라를 보면서 느낀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 하나는, 서유럽과 북유럽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이 사민주의 계열의 정당들이 각기 집권의 경험이 있고, 북유럽의 경우도 핀란드, 노르웨이 등도 사민주의 단독이든 사회주의 좌파당과의 연립정부이든 어쨌든 겉으로 보면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가 비슷한 사민당 집권체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사회적 공기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북유럽에 가서 잠시 머물며 느낀 것은 여기는 단지 정치제도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도 사민주의적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 결국 나중에 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지난 100년 동안 북유럽과 서유럽에서의 진보정당의 집권 기간의 차이에서 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두 지역에서 사민주의 정당의 집권기간과 경험은 거의 두 배의 차이가 나더라고요. … 이건(문화의 차이-필자) 국민성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또 자본주의 발달 정도로만 설명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닐 거라고 보고, 오히려 이것은 권력관계가 바꾸어 낸 존재의 조건의 차이가 아닌가.

그리고 이 존재의 조건이 형성시킨 의식의 변화와 그 사회의 지배적인 의식의 형성, 이런 차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본 것입니다." ('홍세화, 노회찬에게 묻다: 진보의 미성숙을 넘어서',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391~392쪽)


"사민주의는 개량주의이다. 혁명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혁명노선이 아니라 개량노선이다. 이제 이념적으로 NL도 PD도 버리고 사민주의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사민주의인데, 옛날 족보를 가지고 NL과 PD로 나뉘어 계속 싸울 수는 없다.

... 우리 안에는 트로츠키주의자도 있고, 혁명적 민주주의자도 있고, 사회주의자도 있고, 자유주의자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공통점은 스웨덴 등과 같은 사민주의 복지사회를 만들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집권해서 만들려고 하는 사회는 이런 정도의 사회라는 것을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도리다. ... 진보라는 말로 우리를 설명하는데 우리도 지쳤고 듣는 국민도 지쳤다. 설명이 안 된다." (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2014, 286~287쪽)


이 대목은 스웨덴 사회민주당을 이끌며 1932년~1946년 총리를 역임한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의 생각과 비슷하다. "우리는 결코 모든 당원이 우리 강령의 조항 하나하나에 맹종할 것을 요구한 적이 없다. 우리는 일종의 공통된 사회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남겨 놓는다."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 <정치가 우선한다: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후마니타스, 2010, 230쪽)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사진은 2013년 3월 20일 저녁 부산 대청동 카톨릭센터에서 열린 시사토크 <정희준의 어퍼컷>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정민규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비아북, 2014)를 펴낸 뒤 <채널예스>의 손민규(인문M D)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올까요." 노회찬의 대답은 이랬다.

"진보정당이 꿈꾸는 건 희한한 세상이 아니에요. 꿈과 현실을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어차피 현실은 현실입니다. 진보 정당이 만들고자 하는 현실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나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나라와 한국은 조건이 다르다고 말하죠. 물론 다르죠. 날씨부터 다르고 언어도 달라요. 그런 다른 점을 본받자는 게 아니라,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모습은 이런 겁니다.

스웨덴은 GDP의 57%를 함께 써요. 프랑스만 해도 51% 정도이고요. 우리나라는 28%를 나눠 씁니다. 우리는 계속 이대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1년에 1퍼센트씩 올려서 스웨덴 같은 나라로 가야 할까요. 반대도 있겠죠. 28%도 많으니 줄여나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의료민영화, 자사고 늘리는 정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국민소득 3만 불, 4만 불로 가도 이 방식으로 살 것인지, 높일 것인지 떨어뜨릴 것인지는 누가 집권하든 어차피 정책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약속할 수 있는 건 40퍼센트 사회로, 더 나아가서 50퍼센트를 향하는 방향입니다.

2014년에 태어난 아이가 2033년이 되어서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향후 19년 동안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해서 어떤 고용 정책과 조세 정책, 교육 정책, 의료 정책을 쓸 것인가를 제시하고 진보정당이 평가받고, 국민의 지지를 받은 진보 정당이 집권으로까지 나가야겠죠."


참고로 앞서 노회찬이 언급한, 2013년 1월 14일~17일 진보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가 조사한 <당 주요간부 의식조사(1차)>를 보면, '바람직한 국가모델'로 압도적 다수(91.6%)가 '스웨덴형'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가 조사한 '당 주요간부 의식조사(1차)' 결과. ⓒ 진보정의연구소

   
2013년 11월 24일 진보정의연구소가 발표한 <2014 정의당 당원 정치의식 설문조사 결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당원들 대부분은 자신이 '진보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자평했으며, 과반수 이상의 당원들은 '사회민주주의'가 정의당이 지향해야 할 정치이념이라고 답했다(사회민주주의 53.1%, 진보적 자유주의 32.4%,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 9.5%, 자유주의 2.6%).

"사민주의 한계"에서 "사민주의 성과"로... 15년 시간이 흐르다

2013년 5월 29일 사민주의를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 한 노회찬은 조준호와 함께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자격으로 당명개정안으로 '사회민주노동당(약칭 사민당)'을 제안한다. 사회민주노동당은 흔히 스웨덴 사민당으로 불리는 당의 전체 명칭으로, 노회찬은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 평화주의, 땀의 정의를 실현하는 경제민주주의와 노동대중을 기반으로 한 노동정치 등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모델, 정당정책을 가치와 정체성으로 집약하는 당명"이라고 하면서 제안 이유를 설명한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땀흘린 노력과 결과가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 경제적 양극화와 빈곤의 대물림, 기회의 편중이 극심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 존중 받는 노동사회의 실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의 가치와 권리 실현에 힘쓰는 한편 땀흘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보정당과 정치의 주역이 되기 위해 노동운동과의 전략적 연대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중소자영업자, 청년실업자, 농민, 빈민 등 다양한 노동계층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지향을 사회민주노동당의 당명에 명시하는 것입니다.

사회민주노동당의 당명은 그간의 당의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논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온 '사민주의'와 '노동중심'의 가치와 지향을 가장 잘 담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당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당원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것입니다. 복지국가의 미래비전을 품는 정당, 땀의 정의를 분명히 하는 정당의 성격을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이름으로 '사회민주노동당'(약칭 사민당)을 제안하며 당원들의 활발한 토론과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합니다."


2013년 7월 21일 혁신당원대회에서 새로운 당명 후보로 압축된 '사회민주당' '정의당' '민들레당'을 놓고 투표를 벌인다. 그 결과 51.8%의 지지를 얻은 '정의당'이 새 당명으로 확정된다. 이와 함께 천호선 최고위원을 새 당대표로 선출한다. 천호선은 취임연설을 통해 "국민참여당을 만들고 대중적 진보정당을 위해서 함께 모였을 때마저도 제가 진보정당을 대표 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낯선 일"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가슴 떨리는 소명으로, 진보혁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소감을 밝힌다.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대표직을 마치며 드리는 <고별사>를 통해 6411번 버스를 다시 언급하면서 퇴임의 소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내일 새벽에도 6411번 버스는 정해진 시각에 출발합니다. 수많은 투명인간들은 여전히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아직 우리는 없었습니다. 이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우리의 신념과 의지는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분들과의 거리 또한 변하지 않고 있다는 괴로운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정의당의 앞길에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철로는 놓여 있지 않습니다. 진보정당의 앞길에는 이정표도 신작로도 없습니다.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선 우리는 더 바뀌고 더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혁신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혁신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할 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믿고 여기까지 함께 온 분들께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드립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는 길동무들이라 합니다. 당원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2013년 7월 21일 진보정의당 혁신당원대회 당시 모습(사진 윗줄). 같은 날 고별사를 한 노회찬 의원(아랫줄 왼쪽). 정의당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천호선 최고위원(아랫줄 오른쪽). ⓒ 정의당

  
이틀 뒤인 7월 23일 새 출범한 정의당 천호선 대표체제의 첫 상무위원회가 열린다. 천호선은 당의 국가운영 비전으로 '한국형 사회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배우고, 이것을 한국사회에 적용하고 연구해나가는 것, 당내에서 함께 학습해나가는 것, 게을리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한다.

2015년 3월 22일 정의당 3차 당대회에서 통과된 천호선 당대표체제의 '신강령'을 보면, "우리가 꿈꾸는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함께 행복한 상생의 나라이다.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가는 정치가 상생의 정치이다"라면서 "우리는 자유·평등·연대·생태·평화를 실천해 온 세계 진보정당의 역사적 경험과, 복지국가를 이룩한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를 21세기 한국에 맞게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의당 '신강령'은 "좋은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을 것이며, 이상은 항상 멀리 떨어져 보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힘이 크다고 믿는 우리는 낙관주의자들이다. 정치가 행복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는 현실주의자들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행복해질 수 있고, 정의당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랴는 말로 마무리된다. 

2000년 1월 민주노동당 강령에 적힌 "사회민주주의의 한계"가 2015년 3월 정의당 신강령의 "사회민주주의의 성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15년이었다.
 

2015년 3월 22일 정의당 3차 당대회에서 통과된 천호선 당대표체제의 <신강령> 소개글. ⓒ 정의당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기록으로 만나는 노회찬의 꿈과 길 ⑥] 리더십과 정치인의 말(6월 26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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