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3 08:32최종 업데이트 20.06.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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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사진은 2010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할 당시 모습. ⓒ 남소연

 
2010년 1월 노회찬마들연구소에서 진행한 '활동가와 함께 하는 공부모임' 프로그램의 첫 주자로 등장한 박상훈 박사는 '확신의 딜레마'와 이념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확신의 딜레마란 목표의 바람직함과 현실 가능성 사이의 불확정적 관계로 인한, 처한 현실과 꿈꾸는 미래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딜레마를 뜻한다.

"사회경제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는 집단은 '지금 있는 현실'의 힘의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지만, 다수의 형성이라는 민주주의 방법을 통해 불평등 구조를 개선해가고자 하는 진보세력의 경우 대안적 이념은 '지금의 현실이 개혁된 내일의 현실'을 추상적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현상 유지를 바라는 집단이야 현재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족하지만 현실의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세력의 눈은 불가피하게 미래에 두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대규모 집합행동을 이끌고자 하는 진보세력에게 '확신의 딜레마'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현상유지를 바라는 집단이야 현재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족하지만 현실의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세력의 눈은 불가피하게 미래에 두게 된다는 뜻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대규모 집합행동을 이끌고자 하는 진보세력에게 '확신의 딜레마'는 피할 수 없는 도전이다. 합리적 선택이론에 기초한 정당론을 개척한 앤소니 다운즈가 정당의 세계에서 이념의 역할을 강조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정당들이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념을 '확신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합리적 기제 내지 지름길(shortcut)이라고 정의했다."(박상훈, '정치를 이해하는 문제에 관한 하나의 소견', 노회찬마들연구소, <활동가와 함께 하는 공부모임> 발제문, 2010.1.8.)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인 노회찬이 발전시키려 한 정치비전 또는 이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인민노련 시절부터 오랫동안 노회찬과 한솥밥을 먹어온 황광우는 이렇게 말한다(황광우, '노회찬과 더불어 이렇게 살았다', 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86~87쪽).

"사람들은 노 의원의 이력에서 붉은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렇다. 노 의원은 대한민국이 세계무대에 자랑해도 좋을 정통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소외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애타게 갈구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입으로만 사회주의를 외치는 분들과 달리 그는 정녕 사회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실천했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지금 그들은 21세기의 사회주의를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에 도전할 만큼 장성했을 때 국민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자란 그들의 형제로부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부드러우면서도 용감한, 아름다우면서도 합리적인 사회주의의 새 면모를 보게 될 것이다."


노회찬의 사상적 긴장...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사이

'세계무대에 자랑해도 좋을 정통 사회주의자' 노회찬은, '실사구시'와 '탈운동권 진보'의 길이라는 정치적 삶의 궤적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아래 사민주의)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황광우가 말한 "부드러우면서도 용감한, 아름다우면서도 합리적인 사회주의의 새 면모"일지도 모른다. 사민주의를 '현실적인 지향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노회찬은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사이에서 내면의 사상적 긴장을 겪은 것은 물론이다.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시절인 2003년 1월 1일 <퍼슨웹>(personweb)과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선전하고, 그 정책이 공감을 얻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사민주의(정책)가 우리 정치사에 이제 제대로 진입했다, 사민주의가 우리 정치의 한 현실이 된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사민주의적인 거 맞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뭐, 족보를 따져 이름을 붙인다 하면 우리 당 정책을 '사민주의'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규정하는 게 적합한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념정당, 계급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내왔던 정책은 사민주의자만 내세울 수 있는 거 아니고, 만약에 사민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해서 얘기해도 된다면, 사회주의자도 특정 시기에는 사민주의적인 정책을 낼 수 있고 심지어 사민주의보다 더 낮은 단계의 정책도 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정책이 사민주의적 특성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정책들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사민주의당이라고 일반화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의 이런 정치지형, 역사와 배경 때문에 '사민주의조차 혁명적이다'는 견해에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긴장은 2004년 정운영과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183-185쪽).

정운영 : "민주노동당은 한마디로 '사민주의 정당'입니까?"
노회찬 : "1980년대 이전의 기준으로 민주노동당의 좌표를 매기기는 어렵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실패로 끝난 국가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한 사민주의는 민주노동당의 이념과 다릅니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이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즉 민주주의와 함께하는 사회주의를 일단 '민주사회주의'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설정되었으나 진테제(synthese)로서의 내용을 덜 갖추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에는 사민주의적인 것이 많고, 심지어는 사민주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이념적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 수준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지요."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구영식과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사민주의를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2014, 286쪽).

"나는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이 가장 잘 실현되는 것이 사민주의라고 본다. 이 이상으로 진도 나간 체제가 있는가? 현실 사회주의 국가보다 노동권이 더 많이 보장되고 있는 곳이 사민주의 국가다. 사민주의가 사회주의적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완결태는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앞서 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지향점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사민주의의 역사적 궤적
 

2005년 5월 27일, '비정규직권리보장과 건설플랜트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울산역 광장에서 7000여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을 당시. 집회에 참석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김창현 사무총장, 노회찬 의원, 조승수 의원(왼쪽부터).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민주의를 해석하는 견해는 다양하다. 또한 현실에서 폭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민주의는 각국의 특성에 맞게 각 정당의 역사적 경험과 정치적 선택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시대에 맞게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민주의는 이념적 완결성과 체계성이 약한 반면 유연성과 탄력성이 있다. 따라서 사민주의를 중심으로 사회연대와 사회개혁을 추진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는 장점을 지닌다.

"문제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던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되는 < The Primacy of Politics >(2006)에서 미국의 정치학자 셰리 버먼(Sheri Berman)은 "'역사의 종언론'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20세기의 승리자는 자유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였다"고 단언한다. 버먼이 착목하는 사민주의의 주된 특징은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과 더불어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있다. (…) 그에게 사회민주주의란, 국가와 정치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위에서 탄생한 적극적 민주주의자들의 비전이다(셰리 버먼, <정치가 우선한다: 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 후마니타스, 2010, 18쪽; 327쪽). 

버먼은 사민주의의 요체를 정치의 우선성과 계급교차적 협력론으로 규정한다. 정치의 우선성은 '사람들이 노력하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능동적인 정치관이다. 이는 주체의 정치적 역량을 소극적으로 다루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이나 자본주의의 자유시장론과 같은 경제중심주의와 대립된다. 그에 따르면 이런 사민주의의 요체를 성공적으로 실천한 정당만이 현실정치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웨덴의 사민당이다. 저자가 20세기의 승자로 묘사한 사회민주주의는 21세기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긍정적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본령은 정치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고, 정치의 힘은 가능성을 믿는 데서 나오는 까닭이다(<경향신문>, 2011.9.7.).

<정치가 우선한다>는 2013년 6월 진보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 김형탁 부소장(현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이해를 도와줄 책 6선'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은 책이자, 동시에 박철한 연구기획실장이 '정치/권력/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위한 책 6선' 가운데 하나로 꼽은 책이기도 하다.

여운형의 조선인민당, 조봉암의 진보당, 4월혁명 공간에서의 사회대중당을 비롯한 여러 혁신정당 등 한국정치에도 해방 이후 사민주의를 표방하고 실현하려 했던 정치적 흐름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유럽과는 달리 사민주의는 한 번도 한국 진보정치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지 못했음은 물론, 제대로 된 정치적 입지를 갖춰본 적도 없다.

1980년 광주 이후 한국사회의 근본변혁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던 세대에게 사민주의는 아예 논의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다. 한국사회 전체의 총체적 변혁을 과학적 인식 위에 확립하려는 시대의 요청 앞에서 사민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투항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전두환 정권은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 사민주의 정당을 관제야당으로 만들어 극단적인 불신감만 키워놓았다. 이런 상황이 어우러져 한국 진보진영에게 사회민주주의는 한 번도 시행해본 경험도, 그 한계와 부작용을 겪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미 출발부터 '부르주아 개량주의'의 또 다른 형태, '진보성을 상실한 이념'으로 인식되었다(정승현, '한국 진보진영의 사회민주주의 논쟁: 1987년 이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사회과학연구>, vol.15, no.1, 2007).

사민주의에 대한 진보학계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87년 민주화와 소련과 동구의 국가사회주의가 붕괴의 조짐을 보이던 1990년대 초반부터였다. 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라 사민주의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전망, 호기심과 우려가 뒤섞이면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서유럽의 경험들을 이론적으로 소개하는 몇 편의 글이 고작이었던 국내 학계에서 사민주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 민중당 강령 작성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발전의 모습을 어떻게 설정하고 대중에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면서부터였다('사회민주주의 학계서 관심 부쩍', <한겨레>, 1991년 3월 7일). 이후 산업사회연구회, 한국정치연구회, 서울사회과학연구소 등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1990년 말부터 사민주의 연구팀을 구성하거나 내부 학습의 한 주제로 다뤘으며 한국정치연구회는 사민주의의 한국적 수용을 놓고 정기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인민노련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사민주의

노회찬이 인민노련 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 때 발표된 이른바 '신노선'(회사의 노동자정당 건설전략에 대해 재고를 요청함, 1991.9.29.)은 사민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맑스주의자든 사민주의자든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하여 공생을 도모해야 할 상황이다. ... 이것은 사민주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에 관한 문제인 바 우리는 당분간 공생을 전제로 한 선의의 경쟁을 위주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추상적인 이론논쟁보다는 실천에서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에서 제압하고 그들의 한계를 폭로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 중 일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합법 제도공간에서 선거정치에 참여해왔으며, 그 결과 현단계 한국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민주노동당으로 스스로를 정립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진보정치 세력, 진보정당을 대표한 민주노동당은 전위정당노선을 폐기한 합법적-진보적 대중정당 노선에 기초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 진보정치가 체제 내 합법정당으로서 선거를 통한 변혁을 추구하는 사민주의의 속성을 가지고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실천에서는 사민주의적 모습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회민주주의라고 규정한 적이 없으며, 당 내부의 공식 입장 또한 부정적이다.

예컨대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은 시대적 요청"임을 천명하면서 창당한 민주노동당의 강령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을 향하여'(2000.1.30.)를 보면,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과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 "남한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북한 사회주의의 경직성을 극복"한다고 돼 있다.

2004년 17대 총선 주요공약을 보면, 민주노동당의 정책노선은 기본적으로 유럽 사민주의, 특히 북유럽 사민주의를 역할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스웨덴 사민당의 '공동결정법(ML)', 독일 사민당의 노조 경영 참여 보장정책, 프랑스 사회당의 국립대학 평준화와 무상교육 정책 등이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유럽 사민주의의 전통을 받아들이되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룰라 대통령을 배출한 브라질의 집권 노동자당(PT)과도 강한 연대를 과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2004년 의회진출 이전까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사민주의를 내세우는 목소리는 소수였다. 사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며, 변혁의 전망을 상실한 자본주의 체제 유지의 이념에 불과하다는 논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2004년 이후 사민주의 논쟁은 의회진출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이 어떤 노선과 실천 방향 아래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의회 진출 이후에도 사민주의에 대한 당 안팎의 태도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2007년의 한 논문은 민주노동당이 사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날카로운 지적을 한다(정승현, '한국 진보진영의 사회민주주의 논쟁: 1987년 이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사회과학연구>, vol.15, no.1, 2007, 98~99쪽).

"첫째, 다양한 당내 의견그룹들과 진보진영 전체의 결속력을 유지하려는 현실적 이유를 들 수 있다. 둘째, 현실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당의 공식노선을 사회민주주의라는 협소한 목표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이념적 이유도 지적할 수 있다. 셋째, 보수우익의 색깔논쟁이나 체제효율성 시비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사회민주주의는 개량주의이며, 개량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과거 진보진영의 이념적 관성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사실은 개량주의적 실천을 하고 있으면서도 개량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낡은 틀이 문제인 것이다. 겉과 속은 일치해야 한다."


'신노선'의 작성자로 노회찬과 함께 인민노련을 이끈, 민주노동당 활동도 함께한 주대환은 훗날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를 가슴을 열고 받아들여 탄생시킨 자식이다.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한 몸이 되었다.'

사회민주주의는 특정한 사회경제체제나 그를 구성하는 정책이나 제도의 다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대전제로 한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고, 또 할 수밖에 없다는 사상과 그 배경을 이루는 철학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사회경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리킨다고 해야 할 것이다."(주대환, '사민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레디앙>, 2008.11.27.).


진보신당과 사민주의

2008년 3월 16일 창당한 진보신당 강령을 보면 "우리는 인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온 다양한 진보 운동들을 계승한다"라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시대가 아무리 절망의 나락에 빠져도, 역사에서 자유는 더욱 성숙해왔고 만남은 확장되어왔다. 근대 시민혁명이 자유와 인권의 이념을 보편화시킨 이래, 사회주의 혁명이나 사회민주주의 개혁운동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 우리의 과제는 이 모든 진보적 운동의 역사에서 좋은 것을 배우고, 과오를 교정하며,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류 진보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일이다."

진보신당은 2008년 9월 25일부터 10월 3일까지 9일간 이메일을 통한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를 보면, '진보신당이 추구해야 할 정당의 상'과 관련해 56.6%가 '복지를 우선시 하는 유럽형 사민주의 정당'의 모델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계급에 기반한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정당'이 27.7%로 뒤를 이었고 '중산층의 이해를 도모하는 자유주의 개혁정당'이 6.3%로 3위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사회 현안 중 진보신당의 우선 과제'(2개 복수응답)에 대해 응답자의 60.7%가 '비정규직 등 노동문제 해결'을 꼽아 무엇보다 노동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민주주의 기본질서 파괴 등 반독재투쟁'이 27%로 뒤를 이었다. 교육, 언론장악, 공기업 민영화, 생태, 한미FTA 등이 이어졌다.

2009년 8월 1일 진보신당 내에서 '공개 정파'를 표방하고 활동했던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당원모임'이 준비모임 체제를 해소하고 본격적인 조직화를 위해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다(이후 '민주주의 복지사회연대'로 명칭 변경). 노회찬은 환영사에서 "우리나라 현실에서 더 이상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앞으로 어떤 내용을 채워나가야 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강조하고 "당원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진보신당이 역동적이고 현대적인 정당으로 발전"하도록 사민모임의 선도적인 역할을 주문하기도 한다.
 

2011년 8월 10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9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고문의 모습. ⓒ 유성호

 
한진중공업 사태로 30일간 단식농성(7.13.~8.11.)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8월 18일, 노회찬은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와의 '自由人' 인터뷰를 한다.

"초기 사회민주주의와 오늘날의 사회민주주의가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도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차이는 출발에 있어서는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극복할 것이냐, 아니면 점진적으로 극복할 것이냐였다.

사회민주주의의 출발은 점진적 방법에 의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의 출발할 때의 문제의식이 지속되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유럽을 가서 내가 생각이 든 것이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한 나라는 많지만 사민주의적 사회는 지구상에 몇 나라가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사민주의가 하나의 철학과 규범으로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린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기록으로 만나는 노회찬의 꿈과 길 ⑤-2] 진보정당 집권하면 어떤 세상 오나요?... 노회찬의 대답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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