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음식의 역사 '성스러운 한끼'를 읽고

20.06.24 09:02l최종 업데이트 20.06.24 09:24l

나는 크로와상을 좋아한다. 달콤한 겉면의 감촉과 한입 물었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가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빵의 결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버터 향이다. 버터 향이 입안에서 코팅이 되어 있을 즈음 비집고 들어가는 커피는 또 어떤가. 그 조화는 그 시간 속에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유독 크로와상을 좋아하는 건 버터 때문이다. 나의 버터 사랑은 빵에 국한되지 않는다. 입맛 없을 때는 따뜻한 밥 사이에 버터를 뚝 잘라 넣는다. 거기에 계란과 간장을 넣어 비비면 근사한 한 끼가 된다. 통밀 식빵을 버터에 튀기듯 구워내면 크로와상 대용으로 손색이 없다.

주로 국내산 버터를 애용하지만 가끔, 버터의 세계를 탐닉하고 싶을 때면 무엇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프리차드 버터를 찾는다. 70년간 노르망디 지역에서 생산되는 버터 브랜드로 염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라 출출할 때 빵에 이 버터만 발라먹어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버터 타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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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스러운 한 끼" - 아라비아의 디저트부터 산사의 국수까지, 맛과 믿음의 음식인문학, 박경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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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에게 작은 행복을 안겨주는 이 노르망디 버터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다. <성스러운 한 끼>에 나오는 '루앙 대성당'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바리 부인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이 성당이 지어진 배경에 버터가 있었다. 이유인 즉, 가톨릭 교회가 프랑스인들이 주식으로 먹었던 버터를 일반 서민들에게는 금지시키고, 일부 부자들에게만 버터 섭취권을 판매한 것이다. 루앙 대성당은 이렇게 거둬들인 수익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5~16세기 유럽에서 버터는 아주 인기 있는 식품이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던 당시 사람들은 자유롭게 버터를 먹을 수 없었다. 교회는 사람들이 버터 먹는 것을 제한했다. 사순절이나 금식일에 동물성 지방을 섭취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고기는 물론이고 버터, 치즈, 우유와 같은 유제품이나 달걀도 먹을 수 없었다. (중략) 금식 기간에 정해진 규정을 어길 경우 가난한 신자는 무거운 벌금을 내거나 채찍을 맞았고 투옥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부자는 특혜를 누렸다. 바로 돈을 주고 버터를 섭취할 수 있는 권리를 산 것이다.

이로 인해 루앙 대성당은 '버터 타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음식사가인 일레인 코스로바는 이를 '영적 착취 시대의 기념물'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웅장한 건축물이 사실은 시민들의 한숨으로 지어진 것이라니... 장엄함에서 나오는 감탄사보다는 쓴 웃음을 짓게 만드는 건축물이다.

<성스러운 한 끼>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우리가 즐겨먹는 버터와 두부, 커피, 계란, 국수 등에 대한 음식의 역사를 종교와 짝을 이루어 소개한다. 작가는 눈 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면 이성 따위는 사라지곤 하는 '음식예찬론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신문사 종교담당 기자인 저자는 음식과 종교를 엮어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에서 소개된 종교와 음식 역사의 대부분은 종교가 절제라는 명목 하에 기본적 욕구와 '약한 본능'을 억제시켜 그들의 권력 유지로 사용된 이야기로 채워진다.

악마의 음료에게 세례를

크로와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16세기까지도 커피는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던 음료였다고 한다. 이것을 당시 베네치아 상인들이 오스만튀르크 왕국(지금의 터키)과 무역을 하면서 이탈리아에 들여온 것이 계기가 되어 유럽의 커피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카푸치노'나 '마키아토'라는 커피 용어가 이탈리어에서 유래한 것도 이러한 역사에 의한 것이다.

그 시대 맥주와 포도주의 양조장을 독점한 유럽의 기득권 세력들이 커피가 유럽에 전파되어 예술인들 사이에 유행하게 되자,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당할 것을 염려해 교황에게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금지할 것을 청원한다. 하지만 커피 맛에 반한 교황은 오히려 "우리가 그것에 세례를 주어 진정한 기독교도의 음료로 만들어 악마를 놀려주자"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교황의 이러한 지지가 유럽에서 커피 문화가 발달한 계기가 된 것이다. 교황이 커피를 '사탄의 음료'로 금지했다면 유럽의 카페에서 탄생한 경이롭고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은 그 싹을 틔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금기는 의외의 결과물을 낳는다. 음식의 역사와 유래를 살펴보면 종교적 금기가 낳았던 결과물이 꽤 많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인 덴푸라가 역시 그렇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종교적 금기로 발전한 음식이 있다.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에 가톨릭을 전할 때 고기 대신 생선을 튀겨먹는 전통을 함께 전해주었는데 이것이 일본식 덴푸라의 탄생이다. 덴푸라라는 용어도 가톨릭 종교 용어인 '구아토로 덴푸라시'에서 따온 것이다.

일본에서의 덴푸라는 포르투갈의 생선튀김을 능가할 만큼 발전하게 되었다. 저자는 일본의 유명한 덴푸라 집을 소개하면서 '새우, 파프리카, 가지, 양파 등을 튀겨낸 덴푸라는 흔히 생각하는 튀김이 아니었다'라고 덴푸라의 신비한 경험을 얘기한다. 음식의 금기가 낳은 필요에 의한 간절함이 어떤 감탄을 낳는지를 덴푸라의 생생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이어트의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남편은 요즈음 두부로 저녁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 섭취를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에 몰두해 있다. 두부 샐러드, 양념간장을 곁들인 생두부만으로 식사들 대신한 덕분에 어느덧 불룩해진 배가 제법 풀이 죽어있다고 만족해한다.

이제는 서민음식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부는 단백질 대용식으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출소한 사람들에게도 가장 먼저 입에 넣어주는 재료이다. 그러나 두부에도 불교라는 종교 안에서 고단한 세월이 있었다.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에 두부는 사찰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이유로 사찰에서 주로 두부를 만들었다. 당시 사찰은 많은 토지를 소유했고, 부가 집중해 있었기에 음식문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 자연히 두부 제조법도 사찰을 중심을 발전했다. (중략)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다 보니 자연히 스님은 두부를 제조하는 장이이었다. 콩을 구해 두부 룰 만드는 과정은 보통 번거로운 일 아니었다. 오죽하면 '전생에 지은 죄가 커서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까.

금기의 역사의 살아낸 음식들

앞서 소개한 '버터 타워'나 모양이 성적 욕망을 자아낸다고 해서 생긴 토마토의 금기, 군대에서 특정종교의 전도를 위해 장병들에게 나눠준 초코파이 등에 대한 글을 보며 생활의 척박함과 종교적 전통 아래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의 '약한 본능'이 얼마나 나약한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하더라도 금기는 인간의 음식을 향한 욕망을 막을 수 없었다. 고기를 금기시한 사찰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로 훌륭한 사찰 음식을 탄생시켰고, 술을 금기시한 서아시아 모슬렘들 사이에서는 달콤한 디저트인 '바클라바'가 발달하였다. '빵에 누룩을 넣느냐, 마느냐의'의 가톨릭와 정교회의 갈등이 오히려 다양한 빵을 탄생시켰다.

또한 정신과 마음의 수행으로서 당당하게 역할을 한 것도 있다. 성욕을 억제하기 위하여 탄생한 콘플레이크, 스님들의 특별식인 국수, 만수르가 좋아하는 대추야자 등 우리가 평소 무심하게 대했던 음식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시간은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견해에 다른 세계 하나를 얹어준다.

평소에 무심하게 대했던 음식의 고단한 세월과 억압의 역사 앞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음식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기본적인 욕구이며,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며, 생활과 문화이다. 인간과의 공생속에서 때로는 위안을 주고, 우리의 시련속에서 그 존재만으로 강인함을 안겨준 사실을 책에서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