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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후 인천 강화도 석모도의 대북물품 살포현장에서 경찰이 수거한 대북 살포물에는 쌀, 성경, 유인물 등이 들어 있다.
 16일 오후 인천 강화도 석모도의 대북물품 살포현장에서 경찰이 수거한 대북 살포물에는 쌀, 성경, 유인물 등이 들어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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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와 지난 10년의 공통점은 이북 출신 보수단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물론 해방 직후에 비해 지난 10년간은 활동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탈북민(탈북자) 단체들이 의욕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두 시기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해방 공간에서는 미군정과 친일·보수파의 지원을 받는 이북 청년단체들의 활약이 두각을 나타냈다.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이들은 친일 청산과 분단 반대를 외치는 남한 대중과 진보 진영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미군정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남한 경찰이 하기 힘든 '피 묻히는 일'을 수행한 결과로 객지인 38도선 이남에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세계 지배는 두 지역의 냉전에 기초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냉전 구도가 미국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는 1948년 제주 4·3 항쟁을 빌미로, 유럽에서는 1946년 그리스 내전을 빌미로 각각의 대륙에서 긴장 구도를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소련과의 양자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해방 정국에서 탈북민 단체들은 4·3을 비롯한 민중 운동을 폭력적으로 분쇄하고 좌우 이념대결을 부추기는 역할을 해냈다. 이들의 활동은 친일 청산과 분단 반대라는 이슈가 희석되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이 원하는 동아시아 냉전 구도의 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방 공간의 이북 출신 단체들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대표적인 탈북민 지원 단체이자 미 국무부의 입김을 받는 기구인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는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탈북민 단체나 대북 매체들에 쏟아붓고 있다.

미국의 힘을 추구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3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외형상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 확산을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패권 팽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거의 동유럽 공산권이나 티베트 등에서 이들은 반체제 혹은 반정부 활동을 지원했다.

NED가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는 BBC 뉴스의 보도도 있었다. 이 보도는 2014년 10월 30일자 <글로벌 이코노믹> 기사 'BBC, 홍콩 시위는 국외 비밀세력에 의한 계획적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NED가 탈북민 단체를 지원한다는 것은 해방 공간에서 두드러진 이북 출신 단체들의 '활약상'이 NED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별도 단체 꾸린 형제

오늘날 그런 수혜를 누리는 탈북민 단체 중 하나가 박상학씨로 대표되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다. 최근 대북전단 문제로 북한의 대남 압박에 빌미를 제공한 이 단체는 미국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살포 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 양혜왕 편에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가질 수 없다(若民,則無恆產,因無恆心)'는 구절이 있다. 이 말처럼, 안정된 재산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안정된 마음을 갖기가 유리하다. 이런 이치를 반영한 것이 민법상의 재단법인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단법인은 '회원들'의 모임에 법적 인격이 부여된 데 비해, 재단법인은 '재산' 자체를 중심으로 법인격이 부여되는 단체다. 사단법인은 회원들의 의견이 갈라지면 분열하고 해체할 수 있지만, 재단법인은 재산이 유지되고 그 재산의 관리자가 존재하는 한은 비교적 오랫동안 안정성을 이어나갈 수 있다.

봉고차 한두 대에 탑승한 소수의 사람들이 전방 지역에 내려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언론 인터뷰로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같은 탈북민 단체들의 경우에는, 사단법인보다는 재단법인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들을 관찰하는 것이 유용할 수도 있다. 통일부에 어떻게 등록돼 있든 간에, 이들을 분석할 때는 재단법인을 염두에 두고 관찰하는 게 실효적이다.

이들을 관찰할 때는 '회원들이 어떠한가'보다는 '자금이 어떠한가'에 주목해야 한다. 시민단체치고는 적지 않은 숫자인 10여 명이 전단을 살포하며 뉴스 화면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경우에는 상시적인 회원 숫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외부의 금전 지원이 확실하다면 대표자 1인이 그 자금을 갖고 위와 같은 활동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금이 들어오는 곳이 어디이며 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이들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박상학 대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홈페이지도 그를 중심으로 꾸려져 있다. 이 단체의 본령이 '회원들'이 아니라 '자금'이라는 점은 동생 박정오씨가 큰샘이라는 별도의 탈북자 단체를 운영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 형제는 각각의 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함께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객지에 와서 함께 활동하는 형제가 각각의 단체 명의로 활동하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이들의 단체가 '회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회원 1명이 아쉬운 시민단체에서 두 형제가 별도의 단체를 꾸리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금'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단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체에 지원되는 외부 자금을 기대하고 탈북자 단체를 만든 것이라면, 두 형제가 같은 단체 명의로 활동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단체 명의로 활동하는 게 더 실리적일 수 있을 것이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대북전단 및 북한인권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단을 들어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대북전단 및 북한인권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단을 들어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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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의 진짜 목적

박상학은 백두산을 끼고 있는 양강도에서 1968년 출생하고 김책공대를 중퇴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보도된 2007년 1월 2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탈북자 1만 명 시대, 정치적 목소리 커졌다'에 그의 프로필이 이렇게 소개돼 있다.
 
박씨는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김청동) 산하 속도전 지도국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근무하다가 99년 대남 공작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박씨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서 제네바에서 열린 UN 인권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명단을 전달하기도 했다.
 
북에서 선전선동 활동을 하다가 남한에서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프로필이다. 그가 북한을 나온 해는 1999년(31세)이지만, 한국에 입경한 해는 2000년이다. 북에서 나온 그는 일본에 갔다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2004년 7월 30일자 <경향신문> 기사 '[탈북자 대거 입국] 4. 좌담'에 등장한 박상학은 "2000년 8월 (중국) 다롄에서 신분증을 위조해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왔다"고 말했다.

2002년 3월 19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남한 사람들 북한 몰라도 너무 모른다'에서 박상학은 '민국신문 기자'로 소개됐다. 그는 2004년에 나온 위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활동가로 소개됐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탈북민 단체 활동을 한 그는 2007년 1월에 나온 위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소개됐다.

박상학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를 맡을 당시인 2007년(39세) 중에 공금유용 문제로 이 단체에서 퇴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뒤에 그가 만든 단체가 지금의 자유북한운동연합이다.

그 후로 박상학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매우 적극적인 대북전단 활동으로 언론에 수시로 오르내렸다. 접경 지역 주민들의 염려 섞인 호소, 남한 정부의 제지, 북한 정부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대북전단을 살포해 국내외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상학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의 전형적인 활동 방식은 대북전단을 풍선에 담아 날리거나 물 위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 일례로 2014년 10월 10일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전단 20만 장을 대형 풍선 10개에 담아 날렸다. 지속적인 외부 지원이 없었다면 이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풍선에 매달린 전단처럼 '항산'에 매달린 이들의 처지가 지속적인 활동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탈북자단체, 대북전단 20만장 살포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회원들이 노동당 창건기념일이자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4주기인 1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을 날려보냈다.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 회원들이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20만장을 날려보냈다. 2014.10.10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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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벌이는 일들이 과연 '대북'활동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언론에도 수없이 보도되고 있듯이 이들이 하늘에 띄우는 대북 전단의 대부분은 그냥 남한 땅에 떨어진다. 이들이 강화군 앞바다에 띄우는 2ℓ짜리 쌀 페트병 역시 주민들의 진술에 의하면 거의 다 남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닌다.

2015년에 <동서철학연구> 제78호에 수록된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의 논문 '(남북 및) 남남 갈등의 또 하나의 진원지로서 탈북자 집단'은 "2015년 1월 19일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은 GPS를 장착하고 대북 전단 10만 장을 담은 대형 풍선 5개를 북한 지역으로 날려보내는 행사를 개최하였다"면서 "그런데 그러한 풍선 5개 중 1개는 남쪽 지역에 떨어졌고, 나머지 풍선 4개도 모두 남쪽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당시의 비판적 시선이었다"고 소개한다.

풍선 1개는 남한에 떨어졌고, 나머지 4개는 어디로 갔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 4개가 북으로 날아가지 않은 게 확실하기 때문에 '나머지도 모두 남쪽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를 두고 '대북 전단 살포는 실효성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관점을 바꿔놓고 보면 '실효성 있는 일'이라는 판단이 들 수도 있다. 북으로 간다는 보장도 없는 대북 전단 살포를 미국인들이 계속 지원한다는 사실은 이 퍼포먼스가 미국에 이익이 되고 있으리라는 판단을 하게 한다. 

북한 사람들이 읽어볼 기회도 거의 없고 받아볼 기회도 거의 없는 물건들을 지속해서 살포하는 것은 이 퍼포먼스의 진짜 목적이 다른 데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가지도 않는 물건을 오랫동안 띄우고 있다면, 그것은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을 겨냥한 행위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대북 전단이 아니라 대남 전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전단의 살포가 초래하는 정치적 효과에 관해 위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도 자유북한운동연합을 비롯한 일부 탈북자 단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대북 전단 살포와 같은 일종의 퍼포먼스는 남북한 관계의 급속한 냉각을 불러일으키는 등 남한 정부의 대내외적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남한 내 사회적·정치적 정세나 현안과 맞물려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 메이커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탈북민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살포한 것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다.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불기 시작한 뒤부터 이들이 미국인들의 지원 하에 이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인들이 2000년 이후로 대북 전단 살포를 지원하는 이유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북 전단 살포는 남한 보수세력을 고무시키고 남북관계를 냉각시킨다. 한반도 냉전을 고조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이는 6·15 선언 이후의 평화 기운에 역행한다.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 세력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인 것이다.

한반도에서 냉전이 계속될 경우 금전적 이익을 얻는 쪽이 있다. 미국 지배층인 군산복합체가 바로 그들이다. 미제 무기의 핵심 수입처인 한반도에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불면 그들의 곳간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게 된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미국의 금전 지원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유럽·티베트·홍콩 등에서 미국의 국익을 추구한 NED가 탈북민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곧 미국의 국익'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 공간의 탈북민 단체들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냉전 구도를 새로 생성하는 데 이용됐다. 오늘날의 탈북민 단체들은 다 녹아가는 냉전 구도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한반도 냉전 구도를 지속하는 일에 이용되고 있다.

박상학 대표와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살포하는 대북 전단은 북한 사람들이 아닌 남한 사람들의 평화 의식을 냉각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또 북한 사람들의 인권이 아니라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에 부응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는 실효성 없는 일이 아니라 냉전 세력에게 실효성이 매우 높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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