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6 13:48최종 업데이트 20.06.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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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을 써는 김 사장님 김 사장님이 지키고 싶어했던 3~4평 공간. ⓒ 박김형준


서촌 궁중족발 김 사장님이 2년 복역하고 만기 출소했다. 그동안은 사장님이 출소하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사장님 마중하러 가는 길에 어쩐지 신이 났다. 친척이나 절친한 이웃이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사장님 나오시면 같이 소주 마셔야지,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2018년 9월에 열렸던 1심 국민참여재판 때가 기억난다. 사장님은 판사를 향해 울면서 말했다.


"저는 정말 장사하고 싶고 노동하고 싶습니다. 3~4평 되는, 내 일하는 공간에서 쫓겨났지만 그 공간에서 저는 여전히 노동을 하고 싶습니다."

사장님이 우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10번이 넘는 강제집행 때도 우신 적은 없었다. 사장님이 우는 모습이 낯설어서, 판사를 향해 하는 말인데 기도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날 밤엔 잠이 오지 않았다.

사실 나는 강제 철거로 쫓겨난 적이 없다. 원주민과 임차인의 동의 없이, 이들과의 합의 없이 이뤄지는 철거에 반대하며 저술 활동을 해 오긴 했지만 이론과 신념으로 '쫓겨남'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쫓겨난 사람이 가장 원하는 건 뭘까. 아마 원래대로 사는 것 아닐까. 원래대로 산다는 것에도 공간과 시간, 만나던 사람들, 유지해온 수입 등 수많은 결이 있다.

그런데 사장님이 그 많은 결 중 '노동'을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법의 허점이나 이를 이용한 건물주, 아니면 자신이 한 행동에 관한 이야길 하실 줄 알았다. 사장님이 한 말은 "일하고 싶습니다"였다. 그 말을 듣는데 서너 평의 주방, 노란 전구 밑에서 방금 삶아 뽀얀 김이 나는 족발을 썰던 사장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지난 토요일, 궁중족발 연대인 단톡방에 김 사장님의 아내인 윤 사장님이 김 사장님 사진을 올렸다. 족발을 썰고 있는 사진이었다. 윤 사장님이 말했다.

"오랜만에 칼을 잡았는데도 잘하네요."

'내 일하는 공간'에서 '노동을 하고' 싶다던 김 사장님이 진짜로 돌아왔다.
 

새로 연 가게에서. 작은거인 이모가 아현시장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 박김형준


4년 전 쫓겨난 아현포차의 작은거인 이모가 최근 새 식당을 열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마포구청이 30년 된 아현포차를 강제 철거한 후에는 경의선공유지에 둥지를 틀었었다. 하지만 마포구청이 공유지에 상업 시설을 지을 예정이라며,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나가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공유지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대부분 강제 철거로 집과 가게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작은거인 이모도 할 수 없이 공유지를 떠나야 했다. 더 머물렀다간 매일 벌금 폭탄을 맞게 될 상황이었다. 공유지를 떠나 어렵게 가게를 구했다.

작은거인 이모는 80대다. 중년의 자녀들과 초등학생 손주까지 먹여 살리는 가장이기도 하다. 이모는 손녀가 다 클 때까지 자신이 일을 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했다. 이모가 쉴 때는 일요일 아침에 교회 갈 때 뿐이다. 교회 갔다 와서 2시쯤 가게 문을 연다.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가게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이모네서 잔치국수나 한 그릇 하려고 들렀던 어느 날, 이모는 내게 약을 좀 사다 달라고 했다. 어디가 아프시냐 여쭈니 무릎이라고 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몸도 힘드신데 하루 쉬시라고 말했다. 이모는 말했다.

"일해야지. 문을 열어놔야 손님이 오지."

문을 열어놔도 손님이 안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모는 손님에게 '우리 가게는 언제나 열려 있어서 어느 때든 와서 식사할 수 있는 집'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손님에게 잊히면 안 된다는, 사장님으로서의 판단인 듯했다. 그래서 더는 쉬시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작은거인 이모가 새 식당을 연 곳은 아현시장이다. 아현시장 바로 옆에 옛 아현포차 거리가 있다. 결국 이모는 자신의 원래 일터로 돌아온 셈이다. 아현포차 거리에서 한 번, 경의선공유지에서 한 번, 총 두 번을 쫓겨났지만 다시 돌아왔다.

개업 첫 날, 내가 몸 담은 '옥바라지선교센터(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에 연대하는 기독교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개업 예배를 드렸다. 이모에게 특송을 부탁드렸더니 찬송가 301장을 불렀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일하며 살아아겠다는 성실함.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책임감. 사랑 없는 거리의 돈과 힘은 김 사장님과 작은거인 이모를 쫓아냈지만 이들의 성실함과 책임감과 삶은 무너지지 않았다. 꿋꿋하게 싸웠고 꼿꼿하게 버텼다. 다시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해서 가족을 건사하는 노동자의 삶은 언제나 그래왔다. 김 사장님과 작은거인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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