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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았던 6.15 남북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답답하고 위태롭기만 하다.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날선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 북한의 태도는 연일 강경해지고 있다. 지난 9일 남북 간 모든 연락선을 끊은데 이어, 4.27 판문점선언의 결과물인 남북연락사무소 폐쇄와 군사적 위협까지 언급하는 상황이다. 심각한 북한의 경제상황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김여정 부부장이 북한내 2인자로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사정과 맞물리면서 적대적인 대남 공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이런 도발에 우려와 경고를 표함과 동시에 한반도 정세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이나 남북정상회동 등의 긴급한 해결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특사 파견은 안철수 대표나 윤상현 의원 등 보수야권의 일부에서도 나온 의견이다.

그러나 한번 강하게 말을 뱉어버린 북한이 금세 입장을 바꾸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들의 실질적인 분노에는 '남한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그동안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강한 불신이 깔려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통일부장관)은 지난 1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4.27 판문점선언, 9.19 공동선언에서 남북 간에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는데 있어 그동안 미국이 발목을 잡은 면이 분명히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북한이 대화 제의에 호응해올 수 있을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남북 합의사항은 확실히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평양이 아닌 워싱턴으로 가야할 때다, 유엔규정 해석의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장관이나 상무장관 같은 실무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측 통일부 장관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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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6년에 출간되었던 <협상의 전략>(휴머니스트)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당시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였던 김연철 현 통일부 장관이다. 책은 20세기 국제정치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스무 건의 사건과 관련된 협상과정을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 깊게 봤던 파트는 독일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그의 참모였던 에곤 바르에 대한 이야기였다.
 
브란트와 바르는 먼저 동서독 관계를 미소 경쟁 구도에서 분리하고자 했다. 1969년 10월 1일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 보좌관이 바르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했을 때, 바르는 "외교정책을 독자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중략)

1970년 어느 날, 바르가 워싱턴을 방문해 키신저와 대화를 나누었다. 바르는 소련과 진행한 협상을 비롯해 동서독 관계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하고 미국의 이해를 구했다. 당시 키신저는 서독의 의도를 의심했다. 그러자 바르가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보하러 온 거요. 우리는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 <협상의 전략> 중에서
 
이 장면을 읽으며 통쾌했던 기억이 있기에, 김연철 교수가 통일교육원장을 거쳐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취임 후 김연철 장관의 존재감은 너무 미미하다. 하노이 협상 결렬 후 꼬여버린 한반도 정세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유엔제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들을 과감히 추진했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연초 기자회견을 통해 더 이상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막혀 진전하지 못하는 상황을 타계하겠다고 에둘러 표현한 바 있다. 북한의 저주에 가까운 막말과 도발 위협이 난무하는 지금, 국방부는 국방부대로, 외교부는 외교부대로, 통일부는 통일부대로 각각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통일부 장관은 경색된 국면을 풀기 위해 보다 창의적인 파열음을 만들어내야 하는 자리다. 그것은 미국의 불만과 한국의 보수야당, 언론의 십자포화를 받아내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통일부 장관의 숙명으로 감내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를 먼저 치고 나가면서 북미관계 및 한반도 정세를 순방향으로 끌고 나갔던 역사가 있다. 김대중 정부의 금강산 관광도, 노무현 정부의 개성공단도 미국의 동의를 다 받고 나서 시작한 사업들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의 결기 있는 선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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