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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는 더위를 무서워하지 않았으나, 몇 년 전부터는 더위를 타기 시작했다. 이때 물에 손을 넣으면 더위가 저절로 풀린다. 이로 미루어 생각하건대, 죄수가 감옥에 있으면, 더위 먹기 쉬워서 어떤 이는 사망에 이르기도 하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더운 때가 되거든 동이에 물을 담아 감옥 안에 두고 자주 물을 갈고, 죄수로 하여금 손을 씻게 한다든지 하여, 더위 먹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예전에 이러한 법이 있었는지 검토하여 아뢰라." (세종실록 30년 7월 2일)

때는 바야흐로 세종이 52세 되던 해입니다. 실록에는 날짜가 음력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양력으로 환산하면 8월 초 즈음이 되겠지요.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에, 불쾌지수가 높은 시기입니다. 이 한여름에 세종은 '더위 무서운 줄 모르고 살던 나도 나이를 먹으니 더위를 탄다'고 토로합니다. 아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과 같은 건강 상태에서도 훈민정음 창제와 그 후속 작업들에 매진하며 체력이 고갈된 탓인 듯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의료진의 레벨D 방호복만큼은 아니어도, 긴팔 옷을 여러 겹 껴입어 통기성이 떨어지는 복식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소박하게도 그는 더위 탈출 비법으로 얼음 깨먹기도 뱃놀이도 냉수마찰도 아닌, 물에 손 담그기가 최고라고 추천합니다. 이마저도 혼자 즐기기 미안했는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수감자 그러니까 사회 취약 계층에 해당되며, 고통을 호소해도 들어줄 데가 없는 이들입니다.

세종은 입으로만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교도소 안에 물동이를 두고 자주 물을 갈아주어, 손을 씻게 하자고 건의합니다. 죄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인권·복지 차원의 개선안 혹은 해결책을 제안한 후, 이것이 일시적 시혜가 아니라 정책으로서 상시 운영되도록 법제화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참조할 과거 사례가 있는지 검토하도록 전문연구기관인 집현전에 명을 내립니다.
 
 형사 행정에 대한 풍속화를 엮은 《형정도첩刑政圖帖》 중에서 감옥 내부를 그린 그림
 형사 행정에 대한 풍속화를 엮은 《형정도첩刑政圖帖》 중에서 감옥 내부를 그린 그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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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의 검토 기간을 갖고, 현재의 시·도지사에 해당하는 전국의 감사들에게 명을 내립니다.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이 무척 구체적입니다.

1. 매년 (음력) 4월부터 8월까지는 감옥 안에 새로 냉수를 길어다가 자주자주 바꿔 놓을 것.
2. 5월에서 7월까지는 희망자에 한해서 열흘에 한 번씩 목욕하게 할 것.
3. 매월 한 차례 희망자에게 머리를 감게 할 것.
4. 10월부터 1월까지는 감옥 안에 짚을 두텁게 깔아 보온에 신경 쓸 것.
5. 목욕할 때에는 관리와 옥졸(간수)이 직접 점검하고 살펴서 도주를 막을 것.


유교의 기본 경전인 <대학大學>에 '혈구지도絜矩之道'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絜'은 '재다'라는 뜻이며, '矩'는 '곱자' 곧 'ㄱ자 모양의 자'를 가리킵니다. 혈구지도를 직역하자면, 곱자로 무엇인가의 길이를 재는 방법이겠지요. 내 마음 속의 자로 다른 이의 마음을 재는 것, 즉 내 처지를 미루어서 남의 처지를 가늠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세종은 품속의 자를 수시로 꺼내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렸던 것 같습니다. 한쪽 눈이 실명에 가까운 상태에, 만사가 귀찮은 더위 속에서도 말이지요.
 
잠시라도 더위 식히며 서울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더운 날씨를 보인 11일 서울 양천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얼음팩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잠시라도 더위 식히며 서울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더운 날씨를 보인 11일 서울 양천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얼음팩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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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순인데도 낮에는 최고 체감 온도가 30도를 넘는 한여름 날씨를 보입니다. 급기야 지난 9일에는 기상청에서 서울에 폭염주의보를 발효하고, 강릉·양양에는 열대야가 찾아왔습니다.

이날 인천의 한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던 간호사 세 명이 탈진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방호복은 통기성이 낮은데다, 습기에 약해서 의료진은 더위에도 불구하고 얼음조끼조차 입을 수 없다고 합니다. 6월 11일자 YTN의 보도에 의하면, 레벨D 방호복의 내부 온도를 측정했더니, 평균 체온보다 높은 37.6도로 '1인용 사우나'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지경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 일로에 있습니다. 5개월간 고강도 근무를 이어온 의료진이 더위로 고생하는 기간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우리 개인은 위생에 주의해야겠습니다. 물론 마스크 착용은 더위를 가중시키지만, '1인용 사우나'를 입고 근무하는 분들을 떠올려야겠지요.

더위로 고통 받는 이들이 또 있습니다. 취약계층 어르신들입니다. 예년에는 동주민센터·복지관·경로당 등을 활용해 무더위 쉼터를 운영했으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휴관 내지 폐쇄된 상황입니다.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거리로 공원으로 지하철로 나서는 형편입니다.

이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에서는 대안을 제시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개개인도 곤궁한 처지에 있는 이웃들에게 '시원한 온정'을 보내면 어떨는지요? 품속의 큰 자를 꺼내서, 나의 고통에 미루어 남을 배려하는 세종의 마음을 떠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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