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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씨를 추모하고, 미국 BLM운동에 연대하는 행진 제안자 심지훈이 발언하고 있다.
▲ 추모평화행진 제안자 심지훈 조지 플로이드씨를 추모하고, 미국 BLM운동에 연대하는 행진 제안자 심지훈이 발언하고 있다.
ⓒ Jon Dun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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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을 이어온 미국 내 흑인 인종차별주의가 이미 '예견'했던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25일 백인 경찰 데릭 쇼빈에 의해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가 체포 과정에서 사고라고 하기에는 의도적이고 폭력적으로 목이 짓눌린 것이다. 그는 이내 사망했다. 미국 전역만이 아닌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했고 동시에 분노해 BLM(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확산됐다. 

당일 뉴스를 접하고 나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 큰 고뇌에 빠졌다. 멈춰지지 않는 이 인종차별의 폭력이 언젠가는 우리 목을 죄어올 것이며, 미국을 넘어 한국 땅과 아시아에서 누군가 연대하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정도 밤잠을 설쳐가면서 고민했다. 비흑인인 내가 한국에서 이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을까? 당사자인 흑인 분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미국에서 추모와 투쟁을 함께 이어가고 있는 BLM 운동에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크고 작은 집회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집회를 주최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집회를 '이끄는' 게 아니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추모 행진을 제안한다고 말이다. 누군가가 이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 누군가가 내가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진을 제안하기로 했다. (내가 제안하기 전 이미 국내 흑인 커뮤니티와 다른 시민단체에서 기자회견과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많이 부족하고 무지했다. 조직이나 단체로서가 아닌 개인으로서 행진을 제안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모행진을 준비하는 데 시간은 3일 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 친구 서너 명에게 함께 할 것도 제안했다. 친구들은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추모 행진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지지와 비판이 있었다. 또한 비난도 있었다. 여태 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에서 수백년간 이어진 흑인 인종차별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었다. 또 실제로 미국 BLM 운동의 중앙조직과 어떤 소통도 하지 않고 행진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국내 흑인 활동가 커뮤니티에서도 나의 이런 '나이브함'에 건설적인 비판과 문제를 제기해주었다. 비흑인으로서 당사자 운동이 아닌 '연대운동'에 대한 태도와 준비가 부족했다고 인정했고 비판 덕분에 많은 성찰과 공부도 하게 됐다. 

명동에서 200명과 함께 한 침묵 행진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흑인 인종차별철폐 메시지를 보내는 행진 참가자의 무릎꿇기 추모식
▲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행진 참가자들의 무릎꿇기 추모식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흑인 인종차별철폐 메시지를 보내는 행진 참가자의 무릎꿇기 추모식
ⓒ Jon Dun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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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경찰의 협조와 많은 언론사의 취재,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포함한 시민 200여 명이 함께 명동에서 모여 청계천 한빛공원까지 행진했다. 우리는 인종차별철폐와 조지 플로이드 추모 메시지를 외쳤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내 제안이 와닿았다는 사실은 벅찼지만 동시에 아프기도 했다. 

침묵 행진으로 구호를 외치지는 않았지만 미리 제작한 손피켓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손피켓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거나 "May George Floyd Rest In Peace(조지 플로이드를 애도합니다)"라고 적었다. 또 참가자들이 준비해온 손피켓으로 각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렇게 그날 행진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뉴욕에서 오신 흑인 분께서 이 행진을 주최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우리는 포옹을 했다. 흑인 당사자로서 이 행진에 참석해 준 것에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분께서 느끼셨을 많은 것들을 짧은 대화를 통해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메시지가 미국의 BLM 운동과 유가족들, 여전히 인종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흑인 당사자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감사했다.

왜 아시아인이 흑인 추모행진을 하냐고? 

이 행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의 말은 주로 이러했다. '아시아인인 우리는 최악의 인종차별을 받는다. 남의 나라, 다른 인종의 일에 왜 참견이냐. 순국선열을 추모해야 할 현충일에 왜 흑인을 추모하고 있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추모의 무게에 경중은 없고, 사람 목숨의 가치 또한 우열은 없다. 흑인을 추모한다고 해서,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에 대한 역인종차별이나 순국선열을 무시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우리는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종을 떠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 일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인종차별철폐운동에 연대해야 하며, 미국 흑인 차별과 억압의 역사 앞에 함께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이유다.

2016년 미국 프로풋볼선수인 콜린 캐퍼닉은 경기에 앞서 국민의례에 기립하지 않고, 백인 경찰의 폭력으로 인한 흑인 사망사건에 항의하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BLM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로 백인 경찰에 의해 사망한 고인을 추모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무릎꿇기로 연대와 투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콜로라도 주도 덴버에서 폴 파젠 덴버 경찰서장이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팔짱을 끼고 있다.
 1일(현지 시간) 미국 콜로라도 주도 덴버에서 폴 파젠 덴버 경찰서장이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팔짱을 끼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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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국경은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도 점점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지금, 과연 우리는 인종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 나라에는 수많은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유학생이 있다.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병을 퍼뜨리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비난, 한국에 와서 취업했다는 이유로 한국 청년이 취업 못하게 됐다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멸시 받는 동남아 이주노동자, 흑인이라는 이유로 희화화 되고 대상화돼 피부색으로 놀림받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인종차별이고, 이것이 정치와 폭력으로 발현되는 순간, 이번 사건과 똑같은 일이 대한민국 땅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나는 이런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앞으로 다양한 인종과 함께 살아감을 모색하고, 마음을 열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민족주의를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제 사회의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진국은 대기업이 돈을 잘 벌고, 아이돌 가수가 해외 나가서 공연하는 나라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제 사회 일원 한 명 한 명이, 이 땅에 발을 밟는 순간부터,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공동체로서 함께 나아갈 때 그것이 진정한 선진사회이자 문화의 진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지 플로이드님, 그리고 흑인 인종차별로 인해 역사적으로 억압받고 희생당한 모든 분들을 기립니다. 조지 플로이드님의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Black lives matter.

태그:#BLM, #조지 플로이드, #흑인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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