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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도쿠 게임을 즐기고 있다. 스도쿠는 가로세로 각각 9칸씩 총 81칸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에 1에서 9까지의 숫자를 가로세로 같은 줄에는 한 번만 넣어 완성하는 퍼즐 게임이다. 예전에는 스도쿠책을 사서 연필로 쓰고 지우면서 풀었는데, 이제 태블릿에 손가락 하나로 숫자를 쉽게 썼다 지웠다 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스도쿠 게임 앱은 5단계로 되어 있다. 초보-쉬운-일반-어려운-불가능. 스도쿠는 주어진 몇 개의 숫자를 단서로 하여 빈칸을 채워 간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제시된 숫자가 적어져 풀기가 어렵다.

나는 보통 수준인 '일반' 단계를 풀면서 시간 줄이는 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불가능 단계를 푸는 남편은 다음 단계를 권했다. "시간이 좀 걸려도 어려운 문제를 맞추면 성취감이 얼마나 큰데."

'불가능' 단계 문제를 푸는 스도쿠의 매력
 
스도쿠는 규칙이 단순하지만, 간단히 풀리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스도쿠는 규칙이 단순하지만, 간단히 풀리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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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설였다. 재밌으라고 하는 게임인데 머리 아픈 것도 싫고, 풀지 못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순간 평소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로 시작한 발레만 해도 그렇다.

유치원생 딸들이 다니던 발레학원에 성인반이 생겼다. 스트레칭 위주라고 해서 가볍게 시작했다가 발레의 매력에 빠졌다. 햇수로 오륙 년이 넘어가도 나는 늘 초급반을 고집했다. 제일 빠른 오전 시간대가 좋아서, 쉬다가 다시 나왔으니까,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니까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속마음은 어려운 테크닉을 배워야 하는 두려움이 더 크지 않았을까? 잘 하는 사람들과 비교될까봐 겁먹은 것은 아닐까? 발레를 잘하기 위해 살을 빼고, 고통스럽게 몸을 늘리고, 작품 개인 교습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취미 생활을 뭐 그렇게까지' 하며 빈정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더 높은 수준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이 얼마나 용기 있고 아름다운지. 부끄러웠다. 내 발레 실력은 당연히 같은 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싶었다. 스도쿠의 '어려운' 단계에 도전했다. 처음에 한 문제 푸는데 30분이 넘었는데, 점점 시간도 줄고, 새로운 요령도 터득했다. 지금은 '불가능' 단계를 풀고 있다. 쾌감이 짜릿하다. 만약 '일반' 단계만 머물렀다면 이 기쁨을 몰랐겠지.

스도쿠가 가르쳐 준 인생 규칙 두 가지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글쓰기에 적용해 본다. 평소에 글을 쓰자쓰자 하면서도, 한 달에 두 번 글쓰기 모임 숙제만 겨우 하고 있다. 앞으로는 투고나 다양한 공모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지 말고, 주어지는 낯선 주제에도 도전해보자. 떨어지면 어떻고 시간이 걸리면 좀 어떠랴. 그만큼 기쁨도 클 것이다. 스도쿠가 가르쳐 준 인생 규칙은 바로 '인생은 도전하는 것'.

스도쿠는 규칙이 단순하지만, 간단히 풀리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스도쿠는 어떤 알고리즘이나 수학 이론으로도 한 번에 풀 수 없는 일명 'NP-완전 문제'로 증명되었다. 다시 말해 가로 세로줄을 크로스 체크하여, 경우의 숫자를 일일이 넣어보면서 열심히 푸는 수밖에 없다. 그 과정이 스도쿠의 오묘한 매력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인생은 간단히 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다. 인생의 명제를 한 번에 풀 수 있는 명쾌한 공식도 없다. 나의 경험, 지식과 지혜로 당면한 문제에 적용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에 충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교의 방랑자 이야기를 떠올린다.

호랑이를 피해 달아나던 방랑자가 절벽 끝에 몰리게 됐다. 절벽 위에서는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밑은 낭떠러지다. 위기에 몰린 방랑자는 나무뿌리를 잡고 겨우 매달려 있는데, 근처 바위 틈에 자란 빨간 산딸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손을 뻗어 산딸기를 맛있게 먹었다.

이 이야기는 버전도 많고 해석도 다양하다. 나는 방랑자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현재라는 나무 뿌리에 매달려 있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였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해봐야 소용없다.

그렇다면 산딸기라도 따서 먹어야 하지 않을까? 손만 뻗으면 딸 수 있는 산딸기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바로 지금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스도쿠가 가르쳐 준 또 하나의 인생 규칙. '인생은 지금 살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 또한 길어지고 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지난 3월 스도쿠·퍼즐 분야 도서 판매량은 작년보다 500% 가까이 늘었고 5월 말까지 계속 늘고 있다 한다. 나 역시 모임을 취소하거나 무한 연기하면서, 잊고 있던 스도쿠에 다시 빠지게 됐다.

수학자 펠겐하우어(Bertram Felgehauer)와 자비스(Frazer Jarvis)에 따르면 스도쿠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는 54억 개가 넘는다. 풀 수 있는 스도쿠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 더 많은 사람이 스도쿠를 즐기면서 나와는 또 다른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기를!

태그:#코로나 19, #스도쿠, #인생, #퍼즐,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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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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