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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은 한반도에서 일곱 번 째로 긴 강으로 길이가 254킬로미터나 됩니다. 북녘 땅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산맥에서 시작된 강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파주 땅의 오두산 전망대 근처에서 한강과 만나 황해로 흘러들어갑니다.

임진강은 한반도의 허리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의 한가운데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대립하고 있던 삼국시대부터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국경을 확장하기 위한 각축전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갈 때, 임진강 인근에 있던 백제의 관미성을 차지한 후에 이곳은 고구려 남진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신라는 진흥왕때 임진강의 남쪽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경계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임진강 유역은 치열한 전장이었습니다. 지금도 임진강은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가운데 있습니다.

임진강은 우리에게 분단과 비무장지대로 다가옵니다. 또 남과 북의 대립과 대치로도 연상됩니다. 임진강은 그 자체로 민간인통제선 역할을 해서 아무나 건널 수 없는 금단의 강으로도 인식됩니다.
 
자유의 다리
 자유의 다리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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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에는 통일대교와 전진교 등 남북을 잇는 다리가 여럿 있지만 현재 일반인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다리는 없습니다. 임진각국민관광지에 있는 '자유의 다리'는 관광전시용일 뿐 실제로 임진강을 건너기 위한 용도는 아닙니다. 임진강을 건너자면 관할 군부대의 검문검색을 거쳐야 합니다. 특별한 용무가 있을 경우가 아니면 임진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임진강을 건너가 본 적이 있습니다. 파주시 장단의 해마루촌에 살고 있는 남편 친구의 아버님께서 편찮으셔서 지난 2017년 봄 병문안차 찾아갔습니다. 해마루촌은 전진교를 건너 약 4킬로 정도 가면 있습니다. 전진교는 아무나 건널 수 없습니다. 강 건너 이북 지역이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인근 군부대의 검문을 거쳐야 합니다.

제 남편의 친구 김충현(59)씨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외가는 임진강 건너인 파주시 장단면에 있습니다. 충현씨 어머니의 고향이 바로 장단이었던 겁니다. 장단은 개성과 가까워 어머니는 어릴 때 개성에도 많이 가봤다고 합니다. 오빠들이 모두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6.25 전쟁 때 민간인 소개 작전으로 가족과 함께 강제 이주를 당했던 어머니는 전쟁이 멈춰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임진강만 건너면 바로 고향 땅인데,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장단면은 1953년의 휴전선 설정으로 군사완충지대가 되었고, 오랫동안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이 없는 무인지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빛정책 덕분에 해마루촌이 만들어졌습니다. 장단면 출신 사람들은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충현씨의 어머니도 2001년도에 해마루촌에 집을 짓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5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열여덟 살 꽃다운 처자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어서야 그리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신의주까지 가는 1번국도는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사실상 파주시에서 끝난다.
 신의주까지 가는 1번국도는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사실상 파주시에서 끝난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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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씨의 친구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 내 집처럼 충현씨의 서울 집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들을 친자식인 양 거두어 먹였습니다. 한창 먹성 좋을 고등학생들이었으니 오죽 했겠습니까. 음식을 해내면 금방 빈 그릇이 되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키웠던 아들들이 임진강 건너 해마루촌으로 어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미리 일러준 대로 전진교 검문소에서 기다리니 충현씨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 무렵 충현씨는 편찮으신 아버님을 돌봐드리기 위해 해마루촌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임진강을 건너 해마루촌을 향해 갈 때였습니다. 도로 옆으로 철책이 처져있고 군데군데 지뢰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역삼각형의 그 표지판은 붉은색 바탕에 '지뢰'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해골 그림까지 있어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림이 다 말해 주었습니다. '들어가면 죽는다'라고 말하는 듯한 그 표지판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강렬해서 감히 근처에 갈 엄두조차도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그곳을 지났습니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이북 지역에는 아직도 미확인 지뢰 지대가 많다고 합니다. 미확인 지뢰는 과거 한국전쟁 때 살포되거나 매설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뢰의 종류나 수량, 위치 등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미확인 지뢰지대를 알리는 경고판
 미확인 지뢰지대를 알리는 경고판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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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한가운데 있었던 임진강 유역은 오죽할까요. 차가 다니는 길 가 야산에도 지뢰 표지판이 있습니다. 그러니 임진강 너머 동네에서는 아무데나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임진강 건너 산과 들은 옛 풍경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도로들하며 사람의 손이 많이 가지 않은 논과 밭을 보니 어릴 때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개발의 바람이 민통선 안에는 채 미치지 못해 자연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분단은 우리 민족에게 족쇄이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생태계 보존이라는 가능성도 보여 줍니다.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비무장지대의 철책은 자연 생태계를 되돌렸습니다. DMZ 일원은 매우 다양한 생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식물의 40% 이상이 발견될 정도로 비무장지대 일원은 생물 다양성이 높다고 합니다.

민통선 안의 지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규제가 많아 개발이 덜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 환경은 잘 보존되었지만 그러나 마음 한 편이 무겁습니다. 지뢰 표지판이 있는 산을 보니 두렵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은 원시의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해야 할까요. 생태계가 복원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래도 철책은 걷어내야 합니다. 분단의 사슬을 풀어야 합니다.

충현씨의 어머니는 그리던 고향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50년 동안 실향민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실향민이 아닙니다. 실향민 중에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아직도 수많은 실향민들은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운 마음을 삭힙니다. 
 
미확인 지뢰지대
 미확인 지뢰지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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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땅을 9차례나 여행하고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재미교포 신은미 작가는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도서출판 말, 201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국가의 허락 없이는 만날 수 없다거나,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이며 가장 근본적인 인권유린이다. 북한의 인권을 비판하는 남한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산가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 또한 엄청난 인권 유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혈육이 서로 만나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것을 막는 것은 인간으로써 할 짓이 아닙니다. 이산가족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인권 유린에 동참하고 있는 셈입니다.

초(楚)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은 '새는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여우는 죽으면 머리를 언덕으로 향한다(鳥飛反故鄕兮, 狐死必首丘)'고 했습니다. 짐승도 죽을 때는 머리를 자기 굴 쪽으로 두고 죽는다고 하는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누구나 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립니다.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자 하는 게 우리네 본성입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더 이상 고향 없는 무향(無鄕)자가 되게 해선 안 됩니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고 통일입니다.

오늘도 임진강은 말없이 흐릅니다. 우리 민족의 눈물이 보태어진 강물입니다. 그 눈물이 마를 날은 언제쯤일까요.
 
망배단
 망배단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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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임진강, #비무장지대, #민통선, #해마루촌, #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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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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